민중

송용민 회화展   2001_0921 ▶︎ 2001_0929

송용민_윤옥순_골판지에 아크릴채색_79×110cm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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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신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3층 Tel. 02_733_7076

골판지 위에 그려진 이 땅, 바닥 사람들 ● 화사한 초 여름날, 나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창 밖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을 즐기면서, 송용민의 작업실을 찾았다. 반가이 맞아주는 그와 함께 그의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곳에는 뜻밖의 작품들이 있었다. 사람, 사람의 얼굴, 골판지에 그려진 이 땅, 바닥 사람들의 사연 많은 얼굴들... 마치 마찌꼬바(영세 사업장)에 들어선 듯 하였다. ●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품 속의 사람, 한 명 한 명을 대면하면서, 슬픔이 천천히 져며 들었다. 그리고 나는 세월을 건너뛰어 과거로,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1978년 겨울의 구로공단, 전태일의 일기, YH에 처음 갔던 날, 원풍모방의 누나 동생들, 영등포 산업선교회 집회장, 김경숙의 죽음을 접하던 날, 주안 공단, 노동자 문화야학, 부평공단의 병원... 내 의식 속 깊숙이 꾹꾹 눌러 두었던 옛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나고 있었다. ● 나는 정색을 하고, 작가 송용민을 다시 보았다. 내가 알기론 화가 송용민은 노동미술을 비롯한 민중미술 일반에 대해 거리를 두며, 비판적 시각과 입장을 견지하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지난 시대 민중미술 화가들이 하듯, 정공법으로 민중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애환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민중미술 화가라고 일컫고 있지 않았다. 다만 민중미술 화가들이 발걸음을 돌린 현장에 그 스스로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 화가 송용민은 한 때, 작은 공장에서 일하며, 정들었던 사람들-"루나", "몽나", "아리얄", "아줌마", "반장님" -을 그의 마음 한 가운데에서 떠올리며, 그의 맘 속에 새겨진 그대로, 꾸미지 않고 잔잔히 그려냈다. 물류 상자를 만들 때 쓰는 골판지 위에 땀방울이 스미듯, 눈물과 한숨이 배이듯, 웃음과 정이 번지듯, 그렇게 그리고 또 그렸다. ● 그리고 그 위에 쌓여가는 사연들을 녹아내리기라도 할 듯 그리고 또 덧 그렸다. 이 땅의 민중들은 이 땅에서 난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다민족적 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 화가 송용민은 이해할 수 없다하였다. 아직도 생존을 위해 분신을 해야 하고,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 땅의 사회 복지제도는 허술하기 그지 없는데,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던 작가들을 좀처럼 만나기가 힘드니, 무엇이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 없다하였다. 모두가 자본주의 시장에 포섭되어 속화하였는지? 아니면 무력감에 젖어들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였는지? ● 화가 송용민은 민중미술에 대해 거리를 두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민중미술 화가들과 한 시대를 함께 하였지만, 민중미술이 시대정신과 작가혼을 증발시키고 한국현대미술사 속의 민중미술표 미술로 박제화되는 것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 화가 송용민은 몇해동안 꾸준히 노동자 집회에 나갔으며, 낯익은 노동자들을 보면 내심 반가웠다한다. 그들의 눈 속에 담긴 삶의 희비와 분노 그리고 소망을 맘속에 담아와, 화폭 위에 하나씩 되살리며, 침묵 속에 대화를 하여 왔다한다. "고용안정", "선봉투쟁", "단결투쟁", "신자유주의 반대", "살아오는 전태일"이 그렇게 그려졌다.

송용민_반장님_골판지에 아크릴채색_110×79cm_2001

나는 이같은 작가가 있다는 것이 한편으론 반가웠고, 한편으론 안스러웠다. 왜냐하면, 살아 역동하는 작가정신을 갖고 있는 화가를 만나기가 나 또한 쉽지않은 이 시대에 이같은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기쁨이지만, 그가 갖고 있는 역사와 인간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혹 짝사랑으로 그칠까봐 염려되었다. ●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민중의 벗, 노동자의 벗이었던 화가들을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이 고락을 함께 하였다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챙겨준 경우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대기업 노동조합 단 한 곳에서라도 노동미술을 위해 헌신했던 노동자 출신 화가 단 한 명이라도 공개적으로 위무하여 주었다면, 이 땅의 노동미술이 이렇게 황폐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노동미술 화가들이 댓가를 바라고 노동미술을 일군 것은 아니지만... ● 화가 송용민이 한쪽 어깨가 처진 "나"와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던 "어머니(윤옥순)"의 마지막을 화폭에 담았다. 아들 송용민과 눈길이 마주친 죽음 그늘진 어머니!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그림이었다. 화가인 아들이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안고, 어머니께 용서를 구하며 그린 그림, 어머니는 아들에게 마지막 불꽃을 살으며, 눈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그의 아들만이 알아들어 한 생을 두고 새길 수 있는 것을... ● "잊혀진 사람들",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이다. 잊고 싶으나 차마 잊을 수 없는 사람, 마음 깊숙이 묻어둔 사람, 화가 송용민이 그린 또 하나의 송용민, 그녀는 말없이 늘 그 곁에, 그 속에 있었다. ● 우리는 늘 그랬다.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형제자매이며, 누구의 벗이며. 누구의 선후배며, 누구의 연인이며, 누구의 아비, 애미였다. 한 꼴 속에 이렇게 많은 우리가 있었다. 나는 곧 우리였다. 우리는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였다. 한때, 나는 우리 때문에 울고 웃으며, 살맛과 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우리 때문에 힘겹다. ● 화가 송용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이 앞선다. 스승 가운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었다. " 잊어라, 그러면 얻나니. 잠이오면 자라, 그러면 깰테니 " ● 화가 송용민이 그린 사람그림은 사람의 꼴을 보이는 그대로 옮겨 논 그림이 아니다. 사람의 얼과 넋을 사람의 꼴에 담아, 마치 수묵으로 이형사신 (以形寫神)하듯 그려낸 그림이다. 그래서 그의 인물화는 말없는 가운데 전하는 것이 옹골지다. 그는 묵묵히 민중들의 삶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하였다. 현장의 작가는 믿음과 열정이 지속될 때, 아름답다. 올곧게 빛나는 작가정신 만큼 귀한 것은 없다. 그를 통해 투혼으로 빛나던 작가들의 정신이 계승되기를... ■ 라원식

Vol.20010927a | 송용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