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에 대하여

이일호 조각展   2001_1128 ▶︎ 2001_1211

이일호_생과사_대리석_50×30×45cm_2001

초대일시_2001_1128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02_736_1020

환상과 구조적 표현의 에로티즘 조각 ● "예술을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축약시킨다면 그것은 사랑이다."_앙드레 브르통 ●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닌가? 이일호의 에로티즘 조각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이번 근작을 중심으로 개인전을 갖는 그의 작품세계를 보면서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억압시키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제기와 함께 먼저 그 바탕이 되는 초현실주의 '자유'와 '에로티즘'을 생각해 본다. ● 원시적 상태의 자유로운 인간은 점차 사회적 규범과 종교, 도덕에 의해 스스로를 구속하기 시작한다. 자유는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가치로 선언되면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속시키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신체적 자유를 잃어버린다면 끝없는 반항과 저항을 계속하여 자유를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자발적 개인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꿈과 무의식 속에서 자유의 억압은 어떠한 저항이 이루어질까? 자유에 대한 무의식의 억압이나 투쟁은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는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자유여,"라는 시(詩)로 초현실주의 「자유(自由)」를 이야기하고 있다. ● 서구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자유의지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초현실주의이다. 특히 이들은 성(性)에 의해 억압과 해방의 인간 이미지 탐구에 몰두하여 왔다. 그 대표적 예로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디즘의 창시자인 사드를 "인간의 총체적인 실현의 징표로서 성의 완벽한 자유 위에 새로운 성 모럴을 이룩한 선구자"라고 추대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사드는 숭고한 사랑의 이면에 도사린 짐승과 같은 관능적 쾌락에 매달렸으며, 성에 관한 인간의 양면성을 가차없이 폭로하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도 없이 변태성욕을 통해 인간 내부의 가장 은밀한 어두운 면을 파헤침으로 진정한 자유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결과적으로 예술에서 자유는 성적(性的)인 주제와 모티브를 연결시키며, '에로티즘' 을 언급하게 된다. 에로티즘이란 무엇인가? 초현실주의자들은 에로티즘을 "성에서 해방된 인간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은 분리될 수 없으며, 운명의 사슬을 만들어 나가는 절대적 사랑으로 해석된다.

이일호_혼혼돈돈_대리석_40×50×65cm_2001

모더니즘 이후 오늘날 역시 에로티즘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욕망의 호사스런 잔치처럼, 무의식을 폭로하는 예술사조로 전개되고 있다. 독선적 이성의 지배와 종교, 사회적 윤리는 성을 억압하여 왔으며, 원초적 생명의 상징인 리비도는 자유롭지 못하고, 건강한 생명력을 잃어 자유로운 삶의 추진력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통해 이러한 문제 제기와 해결을 꿈꾸어 왔다. 결국 에로티즘은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사항의 횡포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모든 예술 역시 유희적 특성을 바탕으로 전통적 관념과 규범 등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에로티즘의 예술은 관습적 억압에서 인간의 해방을 생각하며, 무의식의 세계까지 넓혀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일호의 작품세계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의 경우는 조각이라는 3차원의 공간에 환상과 구조의 조형적 실험을 지속시키고 있다. 환상적인 요소로 "설화적이며 신화적인 동시에 풍경적이다."(오광수 평론)라는 것이 그의 작업 내용이었다. 특히 잠재된 인간의 성적 충동과 나르시시즘 이에 의한 에로티즘 형상들은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들로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양성의 변형된 누드 조각을 비롯하여, 둘이 하나가된 남녀의 성애(性愛) 형상 조각,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풍경과 인체의 복합 구조 조각, 그리고 단순한 형태의 유기적 추상형태의 조각 등 작가자신의 자유의지를 무엇보다 중요시한 작품들이다. ● 자연과 화해를 이루며, 에로티즘 속에 시적 영감과 같은 사랑의 이야기로 그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유희적 성격이 강한 그의 조각을 다음과 같은 이미지 분류와 조형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이일호의 에로티즘 조각에 접근하고자 한다. ● 먼저 그의 근작에 나타난 중심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다. 이러한 주제로 작가는 1)성적(性的) 이미지와 2)주술적 이미지를 찾아 나서며, 독자적 구조의 조각 방법론으로 조형적 특성을 모색하고 있다. 사랑과 죽음의 조형적 표현으로 지적되는 것은 1)왜곡되고 변형된 인체 형태와 2)데페이즈망, 3)상상의 구조 공간이다. 이러한 분류는 오래 전부터 제작된 그의 에로티즘 조각에 뿌리를 둔다.

이일호_한반중_대리석_50×40×70cm_2001

첫 번째 주제인 사랑은 성적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한다. 왜곡되고 변형된 신체 표현이 특징이다. 자유로운 에로틱한 표현과 솔직한 성적 이미지 묘사를 바탕으로 상상하기 힘든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대부분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성적 이미지는 남녀의 섹스 행위를 비롯하여, 여성의 성기묘사 등 에로틱한 모티브가 강조되고 확대되어 나간다. 사회적 도덕 규범에서 벗어난 본능과 원초적 표현으로 작가는 본능으로의 회귀와 에로티즘을 예찬하는 사랑의 의미를 담는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을 성적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현실과 현실 저편의 또 다른 환상세계로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두 번째 주제로 '죽음'의 이미지는 해골로 나타나며, 젊음이나 여인의 아르다움과 대비된다. 또한 근작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죽음은 사랑과 병행시키면서 주술적 이미지 조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젊은 여인의 얼굴과 같이 붙어있는 해골의 조각이나, 비명을 지르는 여인의 누드와 결합된 전신상의 해골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 온 날보다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라는 작가의 독백 속에서 이미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 이처럼 해골이 등장하는 죽음의 상징적 표현은 원시조각과 같은 주술성을 갖는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그 사랑을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토템처럼 보이는 그의 주술적 조각은 무섭고 흉측하게 보인다. 곤충과 같은 얼굴에 관능적 여인의 신체를 지닌 전신상이나 여인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조각은 마치 토템처럼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다. 원시 종족이 믿었던 태양의 신처럼 작가는 사랑의 신을 죽음과 연결시켜 삶의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

이일호_사랑의 묵시록_청동_450×1200×1400cm_2001

이일호의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제작된 근작의 조형적 특성은 무엇보다 형태의 왜곡과 데페이즈망, 상상력의 공간 구축에서 나온다. 첫 번째 사랑의 성(性)을 주제로 나타난 조형적 표현은 형태의 왜곡과 변형이다. 신체의 부분들이 확대되고 왜곡, 변형되면서 에로티즘의 극치가 나타난다. 몸통이 없는 얼굴과 다리만이 있는 형태의 조각이나 얼굴과 성기가 붙어있는 조각, 또는 얼굴도 없이 성기를 드러내면서 물구나무서는 하반신과 상반신의 결합 등, 그의 형태 왜곡과 단순화는 조각의 독창적 구조로 돋보인다. ● 두 번째 조형적 특성은 데페이즈망이다. 테페이즈망은 로트레아몽의 시(詩)처럼 "해부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처럼 의외의 대상이 결합되어 구축되는 것을 말한다. 누드의 여인과 신라시대의 불교 석탑이 공존하는 설치미술과 같은 조각, 그리고 물고기와 소년, 올빼미나 소라껍질에 붙어 있는 누드의 여인 등 등, 뜻밖의 만남으로 감상자를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되며,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 세 번째 특성으로 근작에서 강조되는 단순화시킨 추상형태 조각이다. 이는 주로 남녀의 모습을 원통이나 입방체 등 기하학적 추상의 단순한 형태로 신체의 부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조각 형태에 가까운 단순화시킨 추상조각으로의 변화는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작품으로 변모한다. 구체적 이미지를 제거한 상징적 기호와 같은 작품들은 순수 조형의 미적 탐구이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이처럼 작가는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형적 특성을 탐구하고,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데페이즈망이라는 사물과 사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한 독특한 구조의 조각이라든지, 또한 신체의 크기를 변형시키고 왜곡하는 억압된 의식의 자유로운 표현은 감상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자신의 내부 속에 또 다른 자기자신을 찾아내듯 이중 구조의 조각적 표현은 매우 개성 있는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실과 환상 속에서의 자기발견, 자유로운 의지, 그리고 사랑을 통한 삶의 풍요로움을 그리는 작가의 초현실적 방법론에 감탄하게 된다. ● 이일호의 환상과 다양한 구조의 초현실적 조각은 우리 현대조각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30여년 넘게 환상과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조형적 구조로 초현실 조각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작에 이르러 성적 이미지의 풍부함과 인체의 왜곡이나 데페이즈망 기법의 독특한 조형적 구조는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더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환상을 바탕으로 명석한 조형적 방법론과 주제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아울러 그의 근작 「사랑과 죽음, 그리고 조각에 관한 것」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지난 30여년 '에로티즘 조각'이라는 일관된 성격의 작품을 제작한 이일호의 작가적 역량과 원숙한 방법론에 깊은 공감을 표하게 된다. ■ 유재길

Vol.20011129a | 이일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