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꽃도둑

백은하展   2001_1128 ▶︎ 2001_1204

백은하_혼합재료_2001

관훈갤러리 특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7

제비꽃, 분꽃, 부레옥잠, 수선화, 팬지, 파꽃, 붓꽃.... 이는 지나간 어느 봄과 여름 혹은 가을의 한때, 잠시 이 세상에 머물렀다가 떠나간 작은 꽃들의 이름이다. 놀랍게도 그 꽃들이 우리들 안부를 물으며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한층 더 깊어진 얼굴을 들고서. ● 마른꽃들을 가지고 이런 상상력을 펼치다니, 백은하라는 작가, 참 연구해볼만한 사람이다. 내가 아는 백은하는 정녕 그렇다. 백은하에게 모든 삶은 알뜰하게 체험되었다가 마음 속으로 즙을 내린 후에야 물러나는 무엇이다. 그는 작은 어떤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그런 다음 한번 더 그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그것들을 향유한다. 백은하가 낭비하는 세상 징후는 없다. 하물며 꽃이 보내는 신호를 그가 놓칠 리 있겠는가.

백은하_혼합재료_2001

백은하의 꽃 그림들은 압축의 절정이다. ●"꽃"이라는 자연의 일부가 모든 것을 다 보여줄 것이므로 작가는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아주 간결한 선 몇 개를 조심스럽게 그려 넣는다. 그러면 작은 우주가 하나 태어난다. 그 다음 우리들이 할 일은 한 가지 뿐이다. 그 작디 작은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그러고 나면 꽃도둑은 바로 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신기한 일은, 정말이지, 없다. ■ 양귀자

Vol.20011130a | 백은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