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김주호_2002년 새해 아침 연하장 판화_2001

이미지 속닥속닥의 속닥속닥

"80년대라는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뾰족한 펜으로 기름종이를 긁어 틀에 걸고 시커먼 잉크를 묻힌 로울러를 문질렀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여 독해 불가능할 정도로 깨어진 문건들을 한자한자 복원시키며 세상을 읽었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시끄럽게 돌아가는 마스터 인쇄기와 전동타자기 덕분에 예전에 비해 훨씬 손쉬운 방식의 프로파겐더가 진행되었다. 이 즈음 미술운동에서는 목판화, 만화, 걸개그림들이 그려졌으며, 좀더 여유가 있었던 집단에서는 8mm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 모두 팩시밀리, 캠코더 등이 나오기 한참 전의 일들이다. ● 올컬러 옵셋 인쇄물들이 서점을 장식하고 워드프로세서라는 이상한 기계가 전동타자기를 몰아내고 메모리칩이라는 시커먼 조각이 그 의미를 키워갈 즈음에 갑자기 시커먼 화면에 초록색 불빛이 반짝이는 인류가 만든 가장 진보적인 컴퓨터 XT가 시판되었다. 위 아래로 커다란 디스켓을 머금고 있는 XT 앞에 앉아 DIR을 치면서 창밖에서 허옇게 터져 들어오는 최루탄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모니터는 알록달록 해졌으며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낯설은 살색이 수많은 눈들을 충혈시켰다." 「남한 시각 이미지의 그물망 만들기」,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01123a

도서관에 없다. 그리고 서점에도 없다. ● 시각문화의 입장에서 인터넷이 바로 전의 통신수단이었던 피씨통신과 팩스 또는 케이블티비와 달랐던 가장 큰 차이점은 고밀도의 화상전송이 실시간으로 가능했졌다는 것이다. 아마 이로부터 사이버 갤러리니 뭐니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남한에 사이버는 없다. 다만 온라인이 있을 뿐이다. ● '이미지 속닥속닥'은 사이버가 아닌 철저한 온라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온라인의 장점과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다만 온라인이기 때문에 도서관에도 없고 서점에도 없는 데이터를 축적시킬 수 있었다. 항상 전시를 하게되면 남게되는 '찌개받침용' 도록들. 그것들의 물질성을 제거시키고 온라인 상에 정보만을 축적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이미지 속닥속닥'이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이제 너저분한 책꽂이 또는 박스에서 색바랜 도록을 찾는 것보다는 몇 번의 검색과 클릭으로 과거의 전시정보를 찾는 것이 더 빠른 시점이 되었다. 물론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정보에는 제한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모든 정보를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온라인 비물질 정보의 유통은 원작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미지 속닥속닥'으로 보내지는 전시행사들을 모두 관람할 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미지 속닥속닥'은 또 하나의 부가서비스일 따름이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비물질 정보이기 때문에 벤야민의 아우라의 상실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것은 시각 이미지 생산자의 상상력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것 같아 낯이 간지럽다. 차라리 온라인 전시 홍보물 발송대행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맘이 편하다.

블랙홀이 아니라 화이트홀이어야 한다. ● 대안공간을 생각했었다. 물론 오프라인이면 더 좋았겠지만 없는 형편에 온라인에서나마 대안공간을 마련해보고자 하였다. 온라인상의 대안공간은 오프라인과 달리 블랙홀이 아니라 화이트홀이어야 한다. 어떤 성격이 계속 머무르며 위계를 형성해 나가는 특정집단의 대안공간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대안공간을 구상했었다. 웅덩이의 물처럼 고여서 썩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격이 유지되는 묘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 그러기 위해 제일 걱정되었던 것은 매체 스스로 덩치가 커지면 공허한 권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 처방이 내려졌다. 이제 '이미지 속닥속닥'이라는 매체는 스스로 성장하여 무성격의 괴물로 변해버렸다. 운영자 neo는 힘이 없다. 실질적인 운영자는 neo가 아니라 1만4천여명의 독자들인 까닭이다. 화이트홀이 된 '이미지 속닥속닥'에서 '입김' '채희석' '백기영' '백종옥' '김용님' '포럼A' '독자' '제곱' '장경호' '이태호' '아우라백작' '아트피디' '문화연대' '공동행동' '정보통쉰부' '사이미대' '푸른살이' '한수진' '성난 미술인' '게으른피' '미메시스' '바람의꿈' '보헤미안' '등급보류' '빈산' '말고기닷컴' '개고기닷컴' '주황빛 골드' '혁명군쇠고기' '채식주의자' '지나가는이' '약발선 쟌다르크' '이창준' 등등이 로그인과 아웃을 번복했다. 다들 머물지 않고 다른 시각문화를 위해 자신의 입장을 지켜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neo는 이들이 버겁지만 고맙다.

온라인 시각 이미지의 과거 돌이키기 ● 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95년부터라고는 하나 시각 이미지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것은 99년 즈음의 일이다. '다림미술' '아띠' '김정곤갤러리' '컬쳐코리아' '스폰지' '피바다학생공작실' '인사동' 등 지금은 잠시 쉬고 있거나 도메인을 잃어버렸지만 당시 수준에서 유용한 인터넷 시각 이미지 사이트였다. 그리고 '블라인드 사운드' '푸른사람들' '늦바람' '미술로 만드는 세상' 등 오래된 사이트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90년대 이후의 남한이다. 그래서 '이미지 속닥속닥'을 운영하는 '이미지올로기연구소'에서는 2002년 사업으로 과거 시각 이미지 돌이키기 작업에 들어간다. 도서관에도 없고 서점에도 없는 과거의 도록 데이터들을 다시 온라인 상에서 복원시키는 작업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1983년이나 1988년이 될 수도 있으며, 1945년이 될 수도 있다. 미래로 발행되는 것이 '이미지 속닥속닥'이라면 과거로 발행되는 것이 '이미지올로기'가 될 것이다. 물론 둘 다의 발행목적은 다른 시각문화를 위한 것이며 효과는 남한 시각 이미지의 시각적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 최금수·neolook.com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Vol.20020101a | 이미지 속닥속닥의 속닥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