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나르는 시간

배석빈 회화展   2002_0122 ▶︎ 2002_0131 / 일요일 휴관

배석빈_사라지다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1

초대일시_2002_0122_화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1

4차원에 두 개의 축이 있다. 시간과 공간이다. 3차원인 공간은 영화필름의 각 프레임과 같다. 시간은 프레임들을 각각의 칸에 싣고 가는 열차이다. 공간은 부피와 질량을 지녔다. 질량을 지닌 물질을 운반하는 일은 역시 질량을 지닌 운반매개입자(boson)만이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빛은 입자로 구성된 물질이나, 질량이 없으므로 다른 질량 있는 물질을 운반 할 수 없다.

배석빈_물고기 죽다_종이에 콘테와 수채_30.5×45.5cm_2000

시간은 입자도 아니고 질량도 없다. 물질이 아니다. 물질을 운반할 수 있는 실체가 없다. 시간을 느끼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이나 쎄슘 원자의 진동을 계산하는 정도로 시간의 몸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시간이다. 공간이 담긴 프레임을 실은 열차의 속도를 증가시킴으로 뒤따르는 열차가 앞선 열차를 추월할 수 있다. 여덟 시간 동안 백만 광년을 갔다가 돌아오는 일도 생각할 수 있다. 변화를 멈추거나 변화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물리적 변화의 무력을 잠재울 수 있다.

배석빈_근대화의 교훈_종이에 연필과 수채_200×140cm_2001

나는 내 작업을 계속하면서 이제까지의 어떠한 형식과 화법(畵法)에 따르는 일이나, 내 표현이 사람들이 알고있는 범위에 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 점점 더 분명 해 진다. 예술작품이란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 건축이든 혹은 음악이든 그것을 읽는 방식이 작품 안에 자율적으로 새로이 형성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예술가는 동종부류나 과거의 관습을 기준으로 삼는 일체의 존재를 위해 봉사하지 말아야겠다는 책임 또한 확고해 진다. 이것은 저항이나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껏 있어 본적이 없는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존재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이다. ■ 배석빈

Vol.20020121a | 배석빈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