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communication

김홍식 회화展   2002_0130 ▶ 2002_0209

김홍식_Non-communicationⅢ_알루미늄에 에칭과 컴퓨터 프린트_40×100cm_2001_부분

초대일시_2002_0130_수요일_05: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몰입과 관조 사이-그녀의 시선 ● 김홍식의 작품 속에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는 작가의 얼굴과 대응했을 때 짧은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첫 번째는 자화상이라는 전제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에서 노골적인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읽었을 때 느껴질 수 있는 당혹감.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는 용기에 대한 호기심. ●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김홍식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집요함은 의식적인 단절과 옆으로 비껴가기를 통해 한 걸음 유보되어 있다. 사진, 실크스크린, 포토에칭, 포지티브 플레이트 등 몇 단계의 판화공정과 재료들을 거치면서 본래의 이미지는 한 단계씩 더 시공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리얼리티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는 의미 없는 추억의 사진이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그 중성적인 리얼리티는 대상에 대한 분명하고도 의식적인 거리 설정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는 나르시스 적으로 읽힐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차단되어 있다. 낭만적인 자아도취의 느낌이 배제된 채 가능한 한 무표정하게 자신을 객체화하는 작가적 시선이 읽혀질 뿐이다. 이 시선을 통해 나는 모호한 경계선 상에서 약간의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는 작가의 다소 쿨한 자기애(自己愛)를 느끼게 된다.

김홍식_Non-communication_알루미늄에 에칭_40×60cm_2001

김홍식은 사물을 찍으면서 '나의 앵글, 나의 프레임'이라는 것에 담긴 '나의 시선', 그것에서부터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가 시도하는 '나의 흔적'에 대한 추적은 카메라를 집요하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되는 하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앵글의 흔들림과도 같은 모습이다. 존재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몰입도 관조도 아닌 채 순간을 포착하고는 다시 비껴간다. 그것은 주변의 사물들과의 부유하는 관계 속에서 언 듯 스치는 모습, 거울이나 쇼 윈도우에 흘깃 비친 자신의 모습과도 같이 하나의 씬(scene)처럼 잠시 고정되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존재들을 이야기한다.

김홍식_The door_혼합재료_각각 30×42cm_2001

김홍식은 스스로 "나는 명확함이 주는 트릭에 걸려들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 선명함이 낮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심상을 가리기를 원치않는다는 의미로 흐려 보이는 화면을 선택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불명확함'은 결코 분명하게 형상화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은유이다. 종종 인물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흔들린 컴퓨터 폰트들의 자취는 전달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무의미한 일상의 대화들을 상기시킨다. 흐트러진 말의 편린들과 우연히 포착된 '나'의 이미지는 바로 위태로운 일상의 혼란 속에서 흘깃 모습을 드러내고는 다시 수면 깊이 잠수해버리는 실체들의 흔적인 것이다.

김홍식_Non-communication: Ennui_혼합재료_120×180cm_2001

끊임없이 움직이는 외적 표상들은 한 순간 실체와 만나고는 또 다시 분리된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두 개의 자의적(恣意的)인 세계 사이의 간극이 주는 부조리와 잠시의 눈부신 일치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 일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은 늘 흔들거리는 카메라 앵글처럼 혹은 의미화되지 못한 단어들처럼, 코앞에 숨겨져있는 암호를 찾아서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김홍식이 흔적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도 이 불확실한 세계와 흔들리는 의미 속에서 그래도 실체와 만났던 한 순간의 기억들을 수집하고 싶어서일까? 이 모든 피상적이고 공허한 움직임들 속에서 명확하게 각인된 진실의 흔적을 찾고싶은 것이 어쩌면 존재의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우리 모두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 이은주

Vol.20020127a | 김홍식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