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쉬다 Urban Paradise

책임기획_원형준   2002_0220 ▶︎ 2002_0407 / 월요일 휴관

주명덕_2001년 광화문_종이에 옵셋 프린트_70×100cm_2001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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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주명덕 최진욱 김호석 황인기 정세라 염은경 정연두 한계륜

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사람들은 도시를 교향곡과 시에 자주 비유하는데, 내게는 이런 비유가 아주 당연해 보인다. 사실 이들은 같은 종류에 속한다. 아마 도시는 자연과 인공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소중한 것으로 평가될는지 모른다. 도시란 그 생물학적 역사를 도시의 경계 안에 가두고 있는 동물들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입장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에 따라 도시는 빚어지고 있다. 그 유래와 같이 형태에 있어서도 도시는 생물학적 번식, 유기적 진화 및 미적 창조의 요소를 모두 간직한다. 도시는 자연히 주어진 것임과 동시에 가꾸어야 할 대상이며, 개체인 동시에 집합체이고, 경험된 것임과 동시에 꿈꾸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시는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 _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중에서.

한계륜_2002년 도시일기_멀티비전 비디오 영상_00:06:00_2002

16세기의 영국인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저서를 '유토피아'라 명명한다. 그는 그리스어의 오우토포스(없는 곳)과 이우토포스(아름다운 곳)이라는 단어를 결합해서 신조어를 만들어냈는데, 그래서 '유토피아'란 아름답기는 하지만 세상에 없는 곳이란 뜻이다. ● 오늘날에 과거와 가장 구별되는 풍경은 도시일 것이다. 물론 도시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5천년경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 그리스와 로마, 중세의 유럽에도 도시는 있었다. 인간은 언어를 만들고 정착하고 농사를 짓고 점차 잉여생산물을 갖게 되었으며,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도시에서의 일상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였다. 따라서 외부의 카오스적인 세계와 구분되는 경계선인 성벽이 세워지고, 그 중심엔 종교적 공간들이 들어선다. 그곳은 풍요로운 미래의 삶에 대한 도시인들의 바람과 기원을 안고 있다. 도시는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도시의 시원과 속성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간의 거대한 미메시스와 다름 아니었다.

정연두_내사랑 지니_컬러인화_200×160cm_2001

모던(modern) 도시에는 "현실과 영원의 축이 교차하는 점에 자리한" 예술작품들이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우연한 성격을 지니는 '현재'들이 모여 모던이라는 하나의 시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상대적인 미를 예술적 차원에 포함하면서 "모더니티"를 주장한 바 있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독창적 움직임의 뒤안에는 당시 유럽 대도시의 드러나지 않은 신비로운 매력을 알아차린 '모던 생활을 하는 화가'의 특별함을 지적하기 위해 필요했던 '모더니티' 개념의 역할이 존재하였다. ● '모더니티' 이전까지만 해도 도시의 예술가들은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의 신화와 전설, 역사에 관심을 가져온 것이다. 그들이 찬양하고 감탄한 것들은 호메로스나 고대 비극의 신들과 영웅의 업적이었다. 보들레르의 눈에 비친 당시 도시의 풍경은 역사화나 신화 등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고 집착하는 아카데미즘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근대기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상징적 장(場)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도시적 공간은 자본주의 맹아기의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소비적, 시각적 주체를 이루는 새로운 계층으로 대두하였고, 대로와 바, 카페를 거니는 산보자(fl?eur)가 등장하였다.

김호석_서울 2001 가을_한지에 먹_170×247cm_2001_부분

이렇듯 당시의 모더니티를 가장 분명히 살펴볼 수 있는 장소는 '도시'였고, 19세기 파리라는 세계 최고 최대 도시의 거리는 순간적이면서도 무한하게 열려있는 공간 그 자체였다. 도시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이 펼쳐지는 장소로서 그곳을 거닐며 관찰하는 예술가에게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공간이다. 이런 이유로 보들레르는 모던 예술가가 군중과 결합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군중과 결합하여 자신의 열정을 펼치고 전문성을 가진 완벽한 산보자이자 정열적인 관찰자(observateur)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기도 했다. ● 그래서 모던 도시의 대표적 화가들의 시선은 찰나적인 도시풍경을 놓치지 않았으며 낙천적이며 유쾌한 도시인의 삶을 화폭에 담았다. 사진가들은 번화한 광장의 모습, 공원의 회전목마, 말없는 상점의 쇼윈도를 담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나 회화나 사진에서 보인 인물의 시선, 분산된 포커스, 엇나간 프레임 등은 모던 도시 건축의 형식적 요소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황인기_서울동네_레고 블록_230×230cm_2001

한편 20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의 도시는 역동성과 고독, 낙천과 이탈이 혼재되는 세기말의 모습을 보인다. 기하학적 도시풍경의 몬드리안, 도시의 활력과 기계의 금속성을 찬양한 페르랑 레제, 도시의 우수(憂愁)와 고독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와 데 키리코, 그리고 평범한 도시인이 일상공간에 던져진 채 소외되고 고독한 모습을 보여주는 조지 시걸의 작품 등은 19세기의 도시적 단상을 지나 현대로 치닫는 도시인의 상황을 드러내었던 미술사의 모습들이다. ● 20세기 초, 뉴욕을 방문했던 문필가들은 마천루와 휘황찬란한 브로드웨이에 매혹되어 그 현란함과 북적거림, 편리함과 즐거움을 감탄했다. 현대 도시는 산업혁명을 모태로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 - 대도시를 거쳐 거대도시, 급기야는 도시권으로의 규모 확대 - 로 진입하면서 현대인에게 도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염은경_햇빛속의 산책_컬러/흑백인화, 비디오 영상, 새털 등 설치_270×600×500cm_2001

실상 도시의 피상적인 변모보다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도시가 삶의 내용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꾸었다는데 있다. "현대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일상성이란 단순한 일상의 현대 사회의 도시적 특징"이라는 앙리 르페브르의 말처럼,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일상의 공간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현대 도시와 그 생활에 대한 이미지는 자신이 도시 이전의 다른 공간에서의 삶과 뚜렷하게 구별시켜주는 경계선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경계선에 속한 삶은 일상이라는 시공간에서 이루어진다. ●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긴 시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응축은 도시 일상과 그 일상 속의 생활인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자본과 정보의 순환과 집적이 가속화되면서 공간적 일상은 자본주의적 도시공간으로 대변되며, 인간은 이때 도구로 전락한다. ● 그렇기에 현대의 도시에서 예술가들은 현대 사회의 억압에 대항하면서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일상공간의 변화를 주시하고, 구체적인 삶의 장(場)으로서의 도시의 일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정세라_빛과 속도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6.7×90cm_2001

사실상 현대 도시인들의 일상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환경과 주관의 의지, 그 둘의 상호조율의 과정인 것이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 형성이 아닌가.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아무리 걸어다녀 보아도 흙을 밟을 수 없는 거리 속에 묻혀있다. 삭막하고 계산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닭장 같은 아파트와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에 숨막혀하면서도 쉽게 현대인,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 도대체 도시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 전통과 혁신, 세련미와 어눌함, 젊음과 노년, 빠름과 느림, 과거와 미래가 살아 숨쉬며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엮어지는 도시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것이 아무리 모순된 욕망을 증식시키는 생존의 장이며 화폐자본이 변신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도시야말로 동시대적인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장이다. ● 또한 도시에는 다양한 개체들 간의 결합과 혼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풍광들이 있으며, 그 안에서 숨쉬는 도시인은 고향을 떠나 궁극적으로 도시에 삶의 터전을 다진 이들이다. 인공의 '도시'는 무엇보다 일터로서, 또한 안락과 평온을 주는 쉼터·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욕망과 시선, 어둠이 교차하는 공간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젖어있는 터전이다. 따라서 본 전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미술가들이 이러한 도시의 일상과 속도를 어떤 식으로 포착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 이제 현대의 도시가 강요하는 고통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Urban Paradise'가 펼쳐진다.

최진욱_위대한 휴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9×259.1cm_2001

『도시에서 쉬다』展은 밀란 쿤데라가 말한 '속도의 엑스터시'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가쁜 숨을 추스릴 소중한 '쉼'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빠름의 시대에 태어나 자신도 모르게 과속질주하는 우리 현대인은 어찌 보면 다시는 그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미술관은 맹목의 속도의 거리에서 조용히 발걸음을 멈춰 이마에 맺힌 땀방울 닦아낼 수 있는, 도시민의 여유를 찾아낼 수 있는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평면,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미술을 통해 이번 전시에 참가한 예술가 8인이 보여주는 도시 풍경들은 일상에 묻혀 무심코 지나쳤던 보석같은 부분들, 혹은 치열한 삶의 투쟁의 동력을 보여준다. 이들 8인의 표현 방식과 제작 방식은 상이하더라도 '도시'라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목을 통해 도시 속에 인위적인 도시를 재현, 설치하고 있다. 나아가 그들이 담은 풍경이 무미건조한 삶 그 자체에 담긴 작은 유희의 가능성에 불과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쉼터를 찾은 현대인들에게 그들을 지치게 만들고 맘을 닫아걸게 한 도시의 어두운 풍경이 아닌, 성찰의 미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다. ■ 원형준

Vol.20020218a | 도시에 쉬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