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간다

이갑철 사진展   2002_0222 ▶︎ 2002_0314

초대일시_2002_0222_금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2층 제3전시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이갑철의 사진은 풍경이다. 그러나 이갑철의 풍경은 그냥 흔히 보는 풍경이 아니라, 우리들이 사는 풍경의 이면을 찍어낸 또 다른 삶의 풍경이다. 이갑철의 사진 한 장을 집어드는 순간, 사람들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될 때가 있다. '이 사진 속의 장면을 어디서 보았더라…… 그래, 이 장면은 우리 아버지 탈상 때 본 장면이야.' 우리 형제들이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상복을 던져 태울 때 아우들의 얼굴 표정이야. 그러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언젠가, 그 언제 어디선가 보았던, 또는 살아왔던, 또는 느꼈던 그 어느 순간이나 자기 내면 깊이 잠들어 있는 풍경에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겉모습을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보며 그 사진 속에 내가 빠져들진 않는다. 아름답고 곱고 예쁜 사진들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고통과 기쁨을 들여다볼 순 없다. 우린 그 사진이 보여준 삶만큼만 감동한다. 예쁜 강의 풍경 사진들을 보며 우리들은 그 강변을 그냥 차 타고 스쳐 지나가듯 지나갈 뿐이다. 그런 예쁜 사진들에서는 우리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고통과 슬픔, 괴로움, 절망과 희망의 순간을 찾기 힘들다. ● 그러나 이갑철의 사진 한 장을 집어드는 순간, 우리들은 그 사진 속의 풍경에 압도당한다. 풍경 속에 담겨진 사람이나 사물들이 사진을 보는 사람을 갑자기 긴장시키는 것이다. 사진을 보는 사람을 사진 속으로 주술처럼 불러들이고, 사진 속으로 불려 들어간 사람들은 그 사진 속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사진 속의 사물과 대면하기도 한다. 이갑철의 사진은 주술에 가깝다. 그런 충격과 감동은 삶의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사진은 흔히 빛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사물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들은 빛의 방향과 명암들에 의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의 강도나, 감동의 크고 작음들도 실은 이 빛에 의해서 전해진다. 그러나 이갑철은 어쩐지 빛을 무시한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당연하게도 이갑철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형식뿐인 삶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정서를 그는 카메라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의 눈으로 도려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보라고, 이게 우리들 어딘가에 감추어지고 숨겨진 한스러운 삶이라고. 그의 어떤 작품 앞에서 때로 전율하고, 어떤 작품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또 어떤 작품 앞에서 통곡하고 싶은 것은 그 작품들이 우리의 한스러운 정서를 빼어나게 도려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 한 장의 그림에는 그 작가의 생명이 고스란히 옮겨져서 우리에게 전해져 온다.

그의 작품들은 또렷한 형상이 드물다. 또렷한 형상이 없다는 것은 그가 빛을 무시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싸우고 싶은 것은 빛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리라. 일상의 그 어떤 순간을 영원히 살게 하고 싶은 이갑철의 치열한 작가정신은, 그래서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이다. ● 나는 그의 작품 한 장을 내가 근무하는 학교 벽에 붙여두고 날마다 보고 있다. 멀리서, 때로 가까이 다가가서, 때로는 그냥 상상으로 그 작품을 떠올리곤 한다. 벚꽃이 피었는지, 또는 그냥 그 어떤 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전형적인 흑백의 모습을 한 우리 어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은 밭이나 논 같다. 어머니들의 모습을 이리저리 가리는 나뭇가지가 카메라 가까이에 있으므로 그 나뭇가지들은 희미하게 뭉개져 있는데, 마치 흐린 달빛을 받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들 같다. 그 나뭇가지 그림자 저쪽에 흰 수건을 쓴 아낙네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수건을 쓴 모습과 검정치마에다 흰 저고리를 입은 아낙네들의 모습은 보이는데, 얼굴이 똑똑하게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도대체 저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 중일까. 종잡을 수 없는 장면이지만 우린 그 작품 앞에 서면 아연 긴장하고 호흡이 가빠옴을 느낀다. 분명 저기 저 아낙네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급박한 그 무엇이 말이다. 그 모든 작품 앞에 서 있으면 긴장의 강도가 점점 고조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것은 그 작품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 검은 머리통이 얼굴 같고, 어떻게 보면 수건이 얼굴 같다. 모두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 작품은 볼수록 신비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신비함은 이것이 우리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환한 대낮의 밝음 속에 보이는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의 고운 풍경이 아니라, 빛 속에 숨어 있는 보다 복잡하고 설명하기 힘든 삶의 숨가쁜 내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살아갈수록 더럽고 추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진 어려움 투성이다. 인생살이란 살아갈수록 쉽고 간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래 살수록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어려운 게 인생이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큰 공포인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인간 세상의 저 잡다한 얼굴은 그 얼마나 불가사의하게 어려운가.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 그루의 나무 같은 해탈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삶의 이 험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삶은 죽음을 껴안고 있을 때만 삶이다. 어둠과 밝음도 서로 껴안고 있으며, 고통과 기쁨도 서로 이웃이다. 이갑철의 사진은 삶을 입체적으로 다룬, 우리가 가진 독특한 사진작가이다. 그가 일구어낸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는 그래서 개성이 강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사진을 보다가 다시 세상의 풍경을 보면 세상이 낯설어 보인다. 그냥 서 있는 나무, 저기 가는 사람, 그냥 묵묵히 서 있는 건물과 달리는 자동차들,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 세상은 때로 이렇게 낯선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낯설게 해주는 것, 다시 말해 세상을, 나를 다시 보게 해주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사진은 정지다. 정지, 그리고 인생은 다시 지나가는 것이다. 이갑철은 그걸 아는 작가이다. ■ 김용택

Vol.20020224a | 이갑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