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ARTON

환경 퍼포먼스-소비되는 생명   2002_0212

책임기획_김윤환

출연_김현숙_전용희_하서린_테라오 토모야_모찌즈키 나나코 나문희_김이경_이지연_김상희_이영주_마경_오야 레이코 사진_김윤환∥비디오_흐슈 쭝찌에 스텝_최주현_크리스텔르∥번역_송미자_김현숙

프랑스 쁘와띠에 법원 앞 광장

카니발과 환경 퍼포먼스 ● 2002년 2월12일은 한국의 설날이자 쁘와띠에에서 1년에 한번 밖에 없는 봄맞이 축제날이었다. 온갖 종류의 가장 행렬들이 조용하던 시내도심을 행진하고, 일상을 지겨워 하던 시민들은 형형색색의 분장으로 이 도시는 그 날 하루 북적북적 술렁거린다. 길거리에 밀가루가 날아다니고, 꽃종이와 미끈덩한 눈송이 스프레이 세례를 낯선이들로부터 받은 사람도 그날 만큼은 관대하다. 밤이 되면 150평 남짓한 시청앞광장의 모닥불이 밴들의 음악에 맞추어 불을 내뿜고 시민들은 절로 어깨춤을 들써 거리며, 그렇게 한해의 봄을 맞이한다. 우리네 봄맞이 축제와는 생경하게 다른 티브속 지구촌 기행쯤에서나 보았음 직한 그런 카니발의 장에서 한국 예술가 김윤환이 환경 퍼포먼스 판을 벌렸다. ● 모두들 즐겁고, 모든 근심을 털어버리는 날인 듯한 표정들에 우리들의 세기의 화두, 환경문제를 던진 것이다. 그가 기획한 퍼포먼스는 채 10분을 넘지 못한다. 그의 배우이기를 자청한 한국, 일본의 유학생들은 스스로 상자로 만든 옷과 가면을 쓰고, 그의 큐 싸인에 맞추어 행진을 했다가, 쓰러지기도 했다가, 또 서로 몸을 부댖끼기도 했다. 상자옷을 입지 않은 2명의 여성은 인간이 쓰레기를 만들고, 결국 인간 자신도 쓰레기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상자로 만들어진 김윤환의 반가사유상이 의미심장하게 상자맨들을 내려다 보던 곳은 법원 앞 광장이다. 또다른 김윤환의 작품인 지구를 뜯어 먹는 사람 주위로 상자맨들이 2명의 인간과 함께 쓰레기 더미로 화하는 장면을 대만출신 디자이너 쭝찌에는 연신 비디오로 담아내고 있다. ● 김윤환은 이 퍼포먼스로 생명과 환경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 짧은 퍼포먼스를 마치고, 상자맨들은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쁘와띠에의 나무에 '나는 언제 상자가 되나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말풍선을 걸었다. 온갖 즐거운 쓰레기들로 도심 전체가 더러워지는 축제날, 그의 메시지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에게 조금은 전달되었나 보다. 라 누벨 뤼퍼블릭크(La Nouvelle Republique) 라는 신문은 그의 퍼포먼스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가 앞으로 환경이라는 화두를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갈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3월중순의 그룹전과 4월의 개인전을 준비해 가는 그 자신속에 그것이 들어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 김현숙

시나리오 ● 광장에는 박스로 만든 「반가사유상」이 앞에 설치된 박스더미(지구를 뜯어먹는 사람과 그 주변에 설치된 박스들)를 응시하고 있다. (반가사유상은 동양식 생각하는 사람이다) 잠시 후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쇼핑백 가득히 빈 상자를 담은 여인 두명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지구를 뜯어먹는 사람의 주위를 돌면서 빈상자들을 던져, 쓰레기를 더해간다. 그후 긴 노끈을 손에 쥔 박스맨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지구를 뜯어먹는 사람」 과 두명의 여인주변을 돌면서 신음소리를 낸다. 으-흐 으-흐 (노끈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다.) 그러면서 박스맨들은 말한다. "나는 상자입니다." "나를 사용해 주세요."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줘요." 노끈이 조각상에 다 감기면 그 길로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보이는 나무마다 푯말을 부착한다. 그 푯말에는 '나는 언제 상자가 되나요? '라는 반어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2002년 2월 12일 ● 축제와 놀이의 공간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짓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움의 한 마당에 불쑥 데모 비슷한 행위를 한다거나 의외의 도발적인 행위 같은 것들은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고 생경한 풍경이 되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마치 허가받은 행사처럼 뻔뻔스럽게 불법적으로 좌판을 벌이고 있었을 때 근처에 있던 사복(한국의 사복경찰하고 행색이 비슷하다. 잠바에 청바지, 운동화나 구두, 손에는 예의 그 큼직한 무전기를 들고 있다.)들이 와서 묻는다. "당신들 뭐하는 거냐?" 우리는 늘상 한국에서 그랬던 처럼 뻔뻔스러웠다. 우리는 쁘와띠에 축제를 위해서 예술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아침에는 시청에도 갈 것이다.(원래 갔다 왔다고 말해야 했었는에 우리의 불어 실력상 막 그렇게 말이 나와 버렸다. 그래도 걔들은 알아먹는다. 우리는 외국인이니까)그리고 축제의 주최측에도 갔다 왔고 신문사에도 갔다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복들은 별 말없이 가버린다. ● 기실 우리가 퍼포먼스를 했던 광장은 다름아닌 법원광장이었다. 불어로는 La Place du Palais de Justice(라 쁠라스 뒤 빨레 드 쥐스티스)번역하면 이름그대로 법원광장이다. 다른 길거리도 아니고 재판에 관련된 죄수 또는 피의자, 검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법원 앞마당에서 판을 벌렸으니 경찰들이 물어 온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은 법원광장 한 모퉁이에 내 작업실이 있어서 준비하기가 편리한 탓도 있었고, 마침 축제행렬이 지나다니는 대중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우리가 퍼포먼스를 위해 설치하는 중간 중간에 피의자를 실은 호송차량이 왔다 갔다 했다. ● 이 퍼포먼스에는 3명의 일본인과 1명의 대만인 그리고 약 8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참여했다. 물론 작업동지 김현숙이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만삭의 무거운 배를 이끌며 쓰레기 생산자인 인간의 역할을 내가 보기에 훌륭히 해냈다. 또한 나의 프랑스어 선생 크리스텔르도 팔벗고 나서서 같이 준비했거니와 고맙게도 이번 퍼포먼스를 위한 불어 홍보 물을 교정해 주었다. 나는 퍼포먼스의 전체 맥락을 고민하면서 주로 대중의 쉬운 참여방식과 시민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을 구상하였다. 여기서 좀더 욕심을 낸다면 내가 구상하여 대중이 함께 준비한 행위가 예술성과 사회 참여적 성격을 같이 챙기면서 진행되기를 바랬다. 또 행위 중에 생길수 있는 우연적 효과와 사회적 반향 등을 고려하였다. ● 퍼포먼스의 시작은 예정보다 20분 늦어진 4시 20분에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첫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해냈다. 신호가 떨어졌을 때 우선 두 사람이 작업실에서 걸어나오면서 작은 상자와 쓰레기들을 버리면서(소비를 상징한다) 미리 설치된 조각(반가사유상과 지구를 뜯어먹는 사람) 주위를 돈다. 그들은 현대사회의 일상적 생활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상복을 입었고 과장된 액션없이 연기하였다. 그 다음 상자맨들이 역시 작업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작은 종이상자들로 이루어진 길다란 띠를 가지고 있다. 곧 그들은 설치된 조각과 앞의 두 사람을 모두 에워싸면서 더 큰 원을 그리며 돈다. 그리고 그들은 으허 으허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Je suis carton. Je veux que m'utilise. Jetez-moi la poubelle" 나는 상자입니다. 나는 사용해주세요.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주세요. 라는 말을 뇌까리며 점점 조여들어 갔고 마침내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지구를 뜯어먹는 조각과 그 주변의 상자들 그리고 그 주변을 돌던 두 사람, 그리고 상자인간들과 상자로 만들어진 띠가 얽히고 섥혀 커다란 한덩이의 쓰레기가 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5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명료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통제할 수 없는 소비의 시스템이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며 나아가서는 인간까지도 소비시켜버리는 일련의 스토리이다. 그후 박스맨들은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박스를 잘라 만든 말풍선을 나무에 부착하였다. ● "Quand est-ce que je deviendrai le carton?" "나는 언제 종이상자로 만들어지나요?" ■ 김윤환

Vol.20020302a | 환경 퍼포먼스-소비되는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