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권제_父權制·不權制

김성미 조각展   2002_0306 ▶︎ 2002_0312

김성미_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2_핸디코트_45×80×15cm_2002

초대일시_2002_0306_수요일_05:0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부권제'라는 단어에는 '아버지의 법, 권력'의 夫權制와 '권력의 부재'라는 不權制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의미가 들어 있다. 즉, 아버지의 권력과 그 권력의 절대성에 대한 부정을 언급함으로써 가장 본질적인 상태, 그 있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다하는 현상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 '아버지의 법, 권력'이라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대적 사고를 의미한다. 유럽인, 중산층, 그리고 남성이 기준이 되었던 사회는 자연과 이성, 여성과 남성, 부드러움과 견고함 등등의 이분법적인 상황을 설정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남성 우월 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권력의 부재'라는 것은 절대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건, 사회 질서를 위해서 건, 누군가에 의해 선제되고 규정되었던 절대적 권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김성미_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1_켄트지_79×79×20cm_2002

근대사회를 지배하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절대적인 권력으로 자리잡기에는 그 허구가 너무나도 많이 드러났다.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줄 알았던 과학에 대한 맹신은 자연에 대한 파괴와 인간성 말살, 인류를 파괴할 위험요소가 가득함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남성적 패권주의가 더 이상 지속적인 지배의 당위성을 내세우지 못함을 의미한다. 더 이상의 절대권력은 없었다. 절대적인 가치 기준도 없었고, 절대적인 정의도, 이성도, 질서도 그리고 절대적인 중심도 없었다. ● 중심적인 주체에 의해 규정되었던 그 주변적인 타자조차도 더 이상 존재하지는 않으며, '제1의 성'에 의한 부수적인 존재였던 '제2의 성'의 존재도 이제는 무의미하다. 중심과 주변의 대치 상황에서 더 이상 영원한 주체도 없고, 영원한 타자도 없는, 단지 그 자리에 있음 즉 '존재 자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 '부권제'라는 것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아버지의 권력인 이성중심의 모순과 한계가 담긴 사고와 더불어 그 사고는 더 이상 권력으로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성미_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1_켄트지_가변크기 설치_2002

나는 하얀 켄트지에 정 십자가를 그리고, 또 오려 내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 오려 낸 십자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인지, 오려진 십자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인지, 또는 오려진 십자가와 오린 십자가가 동시에 존재했을 때 오려진 십자가가 기준인지, 십자가가 오려진 사각종이가 기준인지... 내 개인적인 의도는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 무엇이 주主이고 무엇이 객客인지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고, 기준을 정하지 않는다. 단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보여질 뿐. 가장 절제된 색채의 종이 위에 가장 절제된 형태가 칼로 새겨지는 것이다. 나는 단지 단순 작업만을 반복 할 뿐이다. ● 이러한 행위로 인해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혹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는 것', 안과 밖', '밖과 안' '음과 양, 양과 음' 등 그 대립적인 두 가지는 동등한 가치와 평가를 지닐 수 있다. ● 어느 한쪽이 우위를 누리지 않고, 어느 한쪽이 중심이 되지도 않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동등한 비중으로 제시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실존이다. 또한 가장 순결하며 평등한 상태, 고로 가장 아름다운 수평을 의미하는 것이다. ■ 김성미

Vol.20020306a | 김성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