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양현정 회화展   2002_0313 ▶︎ 2002_0317

양현정_Tunning(조율)·사람사이Ⅰ_장지에 혼합재료_65×80.5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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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3층 제3전시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612

조화와 균형의 청각적인 화면 ● 전통 회화에 있어서 수묵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같은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근, 현대라는 사회적 변천 과정과 더불어 급격한 심미관의 변화는 수묵을 비롯한 전통적인 가치와 조형 체계 등 전반적인 내용들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과 점검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욕구와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은 단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청년 세대들의 작품들에서 일 것이다. 기성 세대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발랄하고 주관적이며 능동적인 가치관을 지닌 이들은 이른바 전통이라는 기성적인 가치에 대하여 때에 따라서는 파괴자의 모양으로, 또 경우에 따라서는 개척자의 모양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들이 진행하고 있는 실험과 모색은 바로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집적일 것이며, 이는 오늘의 우리 그림이 자리하고 있는 솔직한 현 주소일 뿐 아니라 내일을 자리 메김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좌표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양현정_Tunning(조율)·들어보기Ⅰ_장지에 혼합재료_41×64cm_2002

작가 양현정 역시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신진작가라 할 수 있다. 작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수묵의 기운은 작가 자신이 전통적인 수묵에 대한 학습과 이해가 전제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수묵은 전통적인 수묵의 덕목들, 예를 들자면 유려한 운필의 묘나 묵운의 구사, 번짐과 스밈 등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다. 두터운 한지를 물에 불리고 이를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긁거나 밀어내어 독특한 화면 질을 구축하고 여기에 담묵으로 깊이감을 형성해 나아가는 작가의 화면은 일종의 물성의 파괴, 혹은 물성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작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묵, 혹은 한지를 위주로 작업을 하는 신세대 작가들의 작업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양태들이다. 즉 이들은 수묵, 한지와 같은 전통적인 재료들이 가지는 심미적 내용, 혹은 도구적 기능 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오로지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조형 언어를 표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이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물성 자체를 자신에 맞게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이러한 변화 자체를 작업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는 것이다. ● 이렇게 구축되어 진 두텁고 무거우며 깊이 있는 바탕 위에 흰색과 검은 색의 피아노 건반, 혹은 현악기의 유려한 곡선들이 나타나는 작가의 화면은 다분히 감각적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번잡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경직되거나 생경하지 않은 것은 장점이다. 이는 작가 자신의 조형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의 작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분방하고 거침없으되 이를 일정한 질서의 틀 속으로 귀납할 수 있음은 바로 재료 자체에 대한 장악 능력과 이의 조형적 운용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현정_Tunning(조율)·막힌 귀를 위하여_장지에 혼합재료_38×45.5cm_2002

악기, 혹은 이와 연계되어지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작가의 화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주로 「Tunning」, 「눈감고 들어보기」, 「막힌 귀를 위한 연주」와 같은 명제들을 통하여 볼 때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악기의 이미지들은 단순히 조형적 요소로서만 차용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일종의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가는 회화라는 시각적 표현 방식을 빌어 청각적 메시지, 혹은 이미지를 표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악기의 이미지들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본적인 부호이자 이를 읽어 낼 수 있는 키워드인 셈이다. ● 이른바 Tunning(조율)이란 부조화한 음과 소리들을 고르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성질의 소리와 음을 고르고 걸러 이들을 조화롭게 자리잡게 하는 것이 바로 조율인 것이다. 조율은 개개의 소리가 가지는 개성의 가치보다는 이웃한 음과의 관계가 기본이 된다. 이는 바로 조화이자 화합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부조화로부터의 조화, 불협화음으로부터의 화음 찾기와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작가의 화면 바탕에 언뜻 언뜻 드러나고 있는 세계 지도의 단상들은 바로 다름 아닌 작가의 꺛뗌쾭이 이루어질 대상인 셈이다. 비록 설명적이고 피상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이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할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이러한 꺛뗌쾭이 어떠한 내용들을 적시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것은 아마 인간사에서 발생되는 온갖 복잡 다단한 갈등과 불합리, 부조리 등과 같은 내용들을 포괄하는 것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양현정_Tunning(조율)·사이사이_장지에 혼합재료_35×55cm_2001

보기보다는 듣고 느끼는 청각적인 미감을 강조하는 작가의 화면은 일종의 리듬과도 같은 율동감들이 산재해 있다. 음반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곡선이나 오선에 의한 화면의 분할, 그리고 여실하게 드러나는 악기들의 상징적인 형상들은 바로 이러한 듣고 느끼는 것으로서의 그림이라는 특징적인 내용들을 담보하는 장치들이다. 근작에 이르러 이와 같은 특징적인 부호와 형상들은 점차 단순, 간략화 될 뿐 아니라 관념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화면은 대비를 바탕으로 한 이중적인 구조로 전환되고, 형상은 극히 절제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또 하나의 변화를 예시하는 단서일 뿐 아니라 연륜에 따라 변화해 가는 삶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반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 전반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재료에 대한 해석력과 조형성의 구축에 있어서 일정한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화면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과 조형적 처리는 작업에 대한 작가의 재능과 의욕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점차 단순화되어 가는 화면에서 상대적으로 직설적인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미지들을 여하히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바탕 질과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닌 강한 형상들의 조화는 목전의 작가의 작업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라 할 것이다. 조형에 대한 재치 있는 감각과 작업에 대한 열정에 기대어 그 해결의 방법을 주목해 본다. ■ 김상철

Vol.20020319a | 양현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