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천국 Paradise Among Us

2002 한국현대미술신세대흐름展   2002_0322 ▶︎ 2002_0414

김기라_Return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1

초대일시_2002_0322_금요일_05:00pm

책임기획_김혜경 어시스턴트_강성은_김형미_안현주

참여작가 고승욱_권기수_김기라_김기수_김옥선 박형근_손성진_양혜규_윤아진_이미혜 장지희_정성윤_주은희_조해준_한진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우리들 가운데에서 찾아야 할 천국의 단편들 ● 기나긴 인류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상호 소통의 문제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제대로 된'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는 그 부재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무엇이든 그 대상이나 현상이 부재 혹은 악화될수록 그것에 대한 현존은 더욱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물이나 공기의 청정이 악화되면서 그 현존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강조되는 것은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재의 강렬한 현존'은 물질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의 영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승욱_조오련은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했지만, 고승욱은 금호동에서 겨우 5m 횡단했다_컬러인화_2002

인간은 역사 이래로 물질문명의 발전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충족 뿐 아니라 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충족이 추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인간사회의 다양한 관계망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인간행복의 달성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해 가면서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 영향을 받으면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최근 개인들의 주변과의 내면적 소통은 문명과 기술이 발전, 발달하면서 오히려 제한되고 단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구의 증가, 세계경제체제로의 전환, 국경의 붕괴, 경제발전에 따른 직업의 다양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촉수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의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시켜 다양한 사회관계 망들을 한층 조밀하게 해주고 있지만, 인간은 역시 육체의 한계에 갇혀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이 최근에는 여러 가지 증후로 증명되고 있다.

김옥선_옥선과 랄프_컬러인화_2001

종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가 소통되고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깊이 있게 소화되고 있다는 증후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대량의 정보쓰레기가 사이버 공간을 떠돌아다니며 필요한 정보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정보화사회의 역기능들이 신세대 문화의 저변에서 발견되고, 더욱 바빠진 개인 삶의 질적 하락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황폐화가 의학적 임상실험을 통해 속속 증명되고 있다. 사실 동시다발적 접속과 임의적 단절이 가능해진 사이버 세상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그것에 비해 현란하게 빨라지고 세련되어진 만큼 믿음과 깊이와 지속성이 사라져 가는 부정적 징후를 노정시키기도 한다.

권기수_사람들_한지에 먹_가변크기 설치_2002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간 행동 및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율하는 제도라든지 규율과 같은 보이지 않는 권력과 관련해서도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주로 자본과 결탁하여 행사되며,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온갖 종류의 차이에 의해 거의 자동적으로 권력이 행사된다. 예컨대, 전문지식이 있는 자의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지능이 높은 자의 지능이 낮은 자에 대한, 능력이 있는 자의 능력이 없는 자에 대한, 건강한 자의 약한 자에 대한, 목소리가 큰 자의 목소리가 작은 자에 대한,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그리고 사랑을 받는 자의 사랑하는 자에 대한 권력행사는 은밀히 감추어져있는 만큼 인간의 삶 깊숙이 더 치명적인 상처와 흉터를 남기게 된다.

장지희_늪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2

사실 이러한 관점들을 바탕으로 한 삶에서의 소통, 또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회복의 문제는 미술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루어지던 주제이다. 최근에는 소위 회화의 순수성을 모토로 하여 형식 이외에 그 어떠한 불순물도 거부하며 삶과의 단절을 주장한 모더니즘 회화에 대해 반발하는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다양한 매체와 언어를 무기로 명백히 존재하는 삶과 일상을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한진수_공중_플라스틱 입체 픽토그램_가변크기 설치_2001

이러한 맥락에서 도출된 이번 신세대흐름전의 주제개념인 '우리 안의 천국'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제대로 된 관계가 바로 유토피아의 이상임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안'은 개개인의 내면을 뜻하는 'in'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 곧 'amo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국을 개인적 만족이나 내적 평화의 한계 내에서 찾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처럼 '관계'에 대한 관심은 곧 나를 둘러싼 외계로의 시선 이동을 의미하며, 이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지형에 대한 탐색으로 연결된다.

정성윤_hello cursor_넷아트_2001

이번 전시주제는 미시적인 인간관계에서부터 거시적인 인간관계까지 담아내며, 작가들의 '현실 속 인간관계를 보는 냉정한 시선'에서부터 '타자에 대한 이해' 및 '타자간의 갈등해소' 같은 적극적인 소통에의 의지까지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이 전시회를 단순히 표피적이고 스펙타클한 작업성향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언어와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아 감각적이면서도 지적인 태도로 작업하는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주로 구성하게 해준다. 삶과 일상, 역사, 그리고 세계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반응하는 신세대작가들의 이번 전시는 젊은 세대들의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과 그 시각들의 다양한 편차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전시기획팀

Vol.20020326a | 우리 안의 천국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