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아 놀자~~~!!!

신촌 에스쁘리展   2002_0410 ▶︎ 2002_0416

오수현_손오공_컴퓨터 프린트_각 84.1×59.4cm_2002

초대일시_2002_0410_수요일_05:00pm

책임기획_곽민경

참여작가 천영진_조상원_김상희_이승수_안은영 백미영_오수현_두혜정_오진욱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이 전시에서는 젊은 작가 9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장르에서 수없이 많이 반복되어 온 서유기를 2002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눈'을 통해 각각 다양한 방법들로 재해석해낸다. 최근까지도 '서유기'의 손오공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게 다가온다. 우선 쉽게 일본의 애니메이션 『드래곤 볼』과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서유기를 근거해 만든 장편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새롭게 각색해 홍콩의 유명스타군단이 등장하는 서유기를 얼핏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서유기'는 중국 당 태종의 이야기지만,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새롭게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가들이 서유기의 아주 복잡한 요소들 - 풍자, 해학, 웃음, 교훈, 종교....-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어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한 것을 볼 것이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대중에게 친숙하고도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 서유기의 손오공이라는 대중적인 캐릭터를 생각해냈고, 무거운 전시회의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놀자(play)'라는 개념을 끌어왔다. ● 그렇다면 『오공아 놀자~~~!!!』라는 제목에서 '놀자(Play)'라는 부분에 주목해보자. 논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중 하나이며, 모든 작업에 동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끄적 끄적 놀면서 그린 낙서들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낙서화가인 키스 해링(Kieth Haring)이나 쟝-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iat)의 아이들의 그림같은, 혹은 길거리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낙서 같은 작품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놀자'라는 개념은 단순히 우리가 유희하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작업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진욱_極樂往生(극락왕생)하소서_판넬에 실크스크린과 아크릴채색_190×220㎝_2002

또한 우리는 'play'의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작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과 관객과의 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서구나 동양이나 전통적으로 그림(작품)은 관객과 거리를 유지해왔다. 관객은 그림을 보고 "오! 대단한 작품이야...."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지만, 작품에 손을 대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그 작품을 파괴하거나 손상시키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 - 작품을 손상시키거나 파괴하거나 작품 속으로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 은 또 다른 작업행위의 한 형태이다. 즉, 더 이상 미술작품과 관객과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객은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심지어는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조차도 작업의 일부일 때도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로 접어들면서 작품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작업의 과정(Process) 또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 일례로 'Process Art'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Play'의 개념을 도입. 작가와 관객과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고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각각의 작가의 작업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 우선, 쟝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작업에 끌어들인 작가는 김상희와 조상원이다. 김상희는 정사각형의 거울조각을 삼면으로 배치하여 그 위에 수많은 원숭이들을 찍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찾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한다. 우리가 보는 실재는 자신이 반영된 환영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한다. 하지만 반영된 환영(형상)이 만들어낸 것이 실제의 이미지보다 더 실제 같고 실제로서 취급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며, 이러한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를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허다하게 발생한다.

조상원_손오공되기- 오행산에서_혼합재료, 설치_230×200cm_2002

손오공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자신의 형상을 무수히 많이 만든다. 그것은 손오공의 실제을 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허상인가? 손오공은 실제가 아닌 자신을 만들었지만 사실,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자신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쟝 보들리아르의 '시뮬라크라(simulacra)'와 '시물라시옹(simulation)'을 바로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없는 수많은 복제와 반복. 여기에서 더 이상 'Originality'는 없다. 쟝 보들리아르는 '실제는 무한정 재생산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시뮬라시옹은 이제 실제를 압도하고,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것이 된다. 실재가 허상이 되고 허상이 실제가 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지점을 이용한 또 한명의 작가는 조상원이다. 자신들의 본질을 잃은 채, 보편화된 삶의 기준을 강요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손오공(본질)과 분신(가상의 자신)의 관계에 빗대고 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본질을 찾는 작업을 윤동주 시인이 산골의 외딴 우물에서 찾은 자화상의 형식을 빌어 설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서유기』는 불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구법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따라서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이러한 종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한 3명의 작가-천영진, 두혜정, 오진욱-들이 있다.

천영진_108_천, 나무_260×150cm_2002

우선, 천영진은 손오공 일행이 여행을 하면서 겪는 온갖 세상의 악, 진실, 고통, 분노....을 겪는 것을 백팔번뇌(百八煩惱)를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백팔번뇌는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과거(過去), 현재(現在),미래(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煩惱)이다. 육관〔(六官 : 耳(소리), 目(색깔), 口(맛), 鼻(냄새), 心(뜻), 體(감각)〕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不好不惡)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가지의 번뇌가 된다. 거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어 18 ×2=36가지가 되고, 이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즉 전생(前 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3世에 36×3=108이 되어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한다. 작가는 이러한 백팔번뇌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현대인의 여러 고통을 계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혜정_만다라-손오공의 꿈_혼합재료_150×300cm_2002

두혜정은 「만다라」를 통하여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며, 그 안에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하고 있다. 만다라의 형상은 중심과 본질을 얻는 깨달음의 세계이며, 무한공간과 시간을 포함하는 영원성의 상징으로 표현되기에 인간이 갈망하는 욕망과도 그 궤를 같이하며 우리시대의 나약함은 손오공의 허황된 꿈을 대변한다. ● 우리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아집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이기보다 죽어서도 '극락왕생'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작가는 현대인의 이와 같은 모순된 행동을 비꼬면서 「'극락왕생'하소서」라는 제목을 붙인 대문을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오랫동안 지나간 흔적이 없다는 듯이 부식되어 있다. 작가의 그의 작업을 통해 삶의 밝은 면만을 고집스럽게 의지하며, 나머지 부분을 거부하려는 현대인의 모순을 '서유기'의 '불교'라는 종교적 측면을 이용해 풍자하고 있다.

이승수_누구에게 쥐어 줄 것인가?_실크스크린, 혼합재료_2002

이승수는 'Power'의 문제를 손오공의 여의봉을 이용하여 표출하고 있다. 가운데 크게 확대되어 기둥으로 서 있는 여의봉은 '힘(power)'의 상징이다. 그리고, 손오공과 함께 힘을 가졌던 독재자나 정치가들을 함께 배치하여 Power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과연 우리는, 또는 관객은 이 힘(권력)의 상징인 여의봉을 누구에게 쥐어줄 것인가? 만약 이 여의봉(power)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 쥐어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과연 정당한 것이가? 꼭 그들에게 쥐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작가가 선택한 인물들 외에 다른 인물에게 쥐어질 가능성은 없는가? 혹은 그냥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가? 우리는 이러한 의문들을 통해 Power란 무엇이며, 힘 있는 자에게 쥐어졌을 때 항상 정당화되고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하면서, '힘(power)'의 문제를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백미영_돈=손오공_혼합재료_160×80cm_2002

한편, 게임(Game)을 이용하여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2명의 작가들-백미영, 안은영-이 있다. 백미영은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해보았을만한 주사위 놀이의 놀이판을 응용하여 작품을 하고 있다. 작가는 천의무봉하고 난폭한 손오공, 둔중하고 음식물과 여자에 눈이 먼 저팔계, 무뚝뚝한 귀를 잘 듣지 못하는 사오정, 명색뿐이고 무능한 삼장법사을 권력과 돈에 눈이 먼 사람, 무능한 지식인들,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정치인들, 난폭하고 앞 뒤 안 가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인간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특징이 되는 손오공-돈, 사오정-귀, 저팔계-입, 삼장법사- 뇌(머리),...를 오브제로 이용하여 게임 속에 넣어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작과 끝이라는 이 주사위 게임의 속성과 같이 우리의 생 또한 태어남과 죽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인간들은 제 각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한 번 돌아볼 수 있다.

안은영_부처님 손바닥 안_120×66×70cm_2002

안은영은 우리가 흔히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두더지 게임'을 전시공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서 관객을 억압의 주체이자 억압을 당하는 존재로 만든다. 두더지 오락의 두더지들은 8명의 요마로 대체며, 관객은 고리테를 쓰고 여의봉으로 분한 방망이로 이 8며의 요마를 내려친다. 이 여덟 요마들 - 황금 호랑이 요괴, 지네 요괴, 흑요괴 ( 손오공의 분신으로 변장한 오공정), 계정 (닭요괴), 우주성 요괴, 복 요괴, 한줄머리 요괴, 온통눈 요괴 - 은 각기 손오공과 그의 일행의 여정 속에서 괴롭힘을 주는 압박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악의 응징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손오공 역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요마들과 대적하면서 동시에 고리테에 의해서 삼장법사에 의해 행동의 제약과 조율을 받는 존재이다. 이들 모두가 서로 얽히고 묶여 진정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작가는 관객이 승부를 벌이는 순간 여의봉을 내려쳐 억압의 주체가 되지만, 고리테에 의해 억압당하는 우리 존재를 발견하게 한다. ● 'Originality'가 부재하는 현사회 속에서, 미술이라는 쟝르 속에서도 '복제'가 난무하며, 동시에 Originality를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하는 '패러디(Parady)'가 적극 사용되고 있다. 오수현은 이러한 패러디를 적절하게 이용하며, 우리시대에 과대하게 팽창된 '소비욕구'를 자극하여 전시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능력과 힘을 가진 손오공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인사나 광고등-손오공 학교편, 손오공 제품편, 손오공 영화편, 손오공 정치인편, 손오공 게임편, 손오공 아티스트편-으로 패러디하여 풍자하고 있다.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각각 9명의 작가들은 『서유기』라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각자가 취할 수 있는 부분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론들을 적극 수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각각 작가들은 시뮬라시옹, 종교적측면, Power의 측면, 게임(Game), 패러디(Parady)를 사용하고 있다. 작가들은 『오공아, 놀자~~~!!!』라는 공통된 주제 하에, 말 그대로 작품과 관객이 서로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전시에서 보여지는 『서유기』에 빗대어 표현된 작품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곽민경

Vol.20020416a | 오공아 놀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