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와 '그리기'

서용선 입체작품展   2002_0410 ▶︎ 2002_0426

서용선_여자 속의 남자_육송판재에 아크릴채색_177.5×109.7×25.7cm_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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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410_수요일_05:00pm

노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3번지 Tel. 02_732_3558

'만들기'와 '그리기'-창작의 즐거움을 엿보며 ● 작가 서용선의 작업실, 선명한 원색의 회화작품 너머 한쪽 구석에서 작은 입체작품들을 처음으로 발견한 시기는 지난 1987년이었다. 스티로폼이나 작은 나무토막으로 사람 형태를 만들어 아크릴로 채색한 소품들이었는데 당시에는 스케치 작업의 일환으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나서 이듬해, 그는 수 십년 동안 기거해온 옛 한옥을 해체하고 새집을 짓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옥의 자재였던 해묵은 나무들을 작업실에 들여놓고 목재 및 여러 공구를 가까이 하면서 입체제작을 위한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에 연장을 다룬 경험은 향후 지속적으로 입체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설계과정에의 참여는 '공간(空間)'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합판들이 복잡한 구조를 이루어 집이라는 건축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건축 자재인 평평한 합판을 가지고 서 있는 사람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정제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한 표현'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 한편 1995년에는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에서 3개월 간 자유롭게 창작할 기회를 가졌다. 그 지역의 매끈한 단풍나무를 사람 형상으로 잘라내고, 이들을 서로 엇갈리게 붙였다. 「남자+1」, 「남자와 여자1」 등 이 시기의 작품들은 다소 추상화된 형상의 사람들이 무언가 분출해내는 듯한 강렬하고도 힘있는 인상을 드러내고 있다.

서용선_걸어가는 남자,여자 두명_육송판재에 크레용과 아크릴채색_158.4×83.5×64cm_2002

그리고 작년에 그의 작업실에 다시 들렀을 때, 이번에는 양수리 작업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판을 여러 형태로 잘라 채색한 조형물들, 해묵은 목재를 이용한 크고 작은 사람 형태의 입체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전보다 견고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최근의 드로잉 작업과 더불어 그간의 서사적인 회화작업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신선한 흥미를 가지게 했다. 강원도에서 직접 구해 온 거칠거칠한 질감의 육송(肉松)으로 제작한 「여자 속의 남자」와 같은 최근작들은 공간의 해석에 치중하였으며 스케일도 커졌다. 이들은 그간의 입체작업에서 얻은 자신감과 조형공간에 대한 탐구가 더해진 작품들로써 여러 형태의 나무판들이 대상을 이루고 이에 선명한 채색이 입혀졌다. 여기서의 조형적 요소들은 회화작업에서 읽혀지는 정서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평면작업에서의 원색들이 다양한 색면을 이루면서 공간 속에서 새로운 미감(美減)들을 획득하였다. 회화작업에서 부단히 추구해 온 평면적인 색채의 테두리를 훌쩍 벗어나는 듯 상쾌해 보이고, 색면공간을 꾸려 나가면서 작가가 '그리고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에 몰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용선_남자 세명_육송판재에 압축목탄과 아크릴채색_158.4×83.5×64cm_2002

지금까지 서용선의 회화작업은 과거와 현재, 사회와 개인을 넘나들었다. 지난 15년 간 단종애사(端宗哀史)라는 역사적 사건 속 인물들과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을 격렬하면서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 긴장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서사적 사건 속의 인물의 고통, 번뇌를 오늘날 우리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 이를 통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하였다. 이는 역사를 읽어내는 방법을 시각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역사에서 오늘날을 해석해 낼 단서, 혹은 희망을 찾는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자화상 소묘 드로잉전」(이콘갤러리, 1996년) 이후의 드로잉은 점차 과거나 현재의 실제 사건 보다는 작가 개인의 내면 표출에 치중하고 있으며 이번에 발표하는 드로잉 역시 이러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용선_악쓰는 여자_하드보드에 색연필채색_44×22cm_1988 서용선_남자4_종이에 아크릴채색_57.5×41.8cm_2001

2002년 4월 노화랑에서 전시되는 『서용선 입체작품』전에서는 앞서 언급한 87년 이후의 입체 조형물들과 이의 근간이 되었던 드로잉 작품들, 그리고 최근의 드로잉들이 전시된다. 이들은 역사적 주제의 회화작품과 비교할 때 주제보다 그 제작과정에 충실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회화작업을 해오던 작가가 보여주는 조각은 어떤 것일까'하는 호기심은 이 전시를 통해 창작의 즐거움이 그 동기였음을 알게 해준다. ● 최근 급격하게 다양한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미술과 다른 예술분야와의 구분, 미술 내에서의 장르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재료개념으로 작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에 적절한 매체를 작가의 역량에 따라 선택해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는 중진작가가 자신의 평소 작업과 다른 장르나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작가 서용선의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1년 간 진행해 온 『비자 프로젝트(VISA Project)』라는 웹(web) 상에서의 공동작업,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인 철암이라는 폐광촌으로 찾아가서 스케치하여 그 결과물을 전시하는 『철암 그리기』 활동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체되지 않는 작가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뜻 깊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가 우리사회에서 보다 자유롭고 풍성한 문화적 토양을 다지는 데에 방향을 제시하리라고 기대한다. ■ 김유숙

Vol.20020417a | 서용선 입체작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