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풍경·자화상

주명덕_구본창_민병헌 사진展   2002_0411 ▶︎ 2002_0523 / 월요일 휴관

민병헌_BODY_2001

초대일시_2002_0411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모든 예술은 크게 보아 '물질주의'와 '정신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인류의 문화는 이 두가지 사상이 교차되거나 대립, 혹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한때는 어느 한쪽 사상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어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다. 예를 들면 중세의 미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이 중세를 일컬을 때 '암흑기'라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헤브라이즘)이 가장 강한 시기에 문화가 암흑기를 맞이한 것은 바로 어느 한쪽의 사상만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종교의 시녀가 되었고. 문학, 음악, 미술 등은 거의 동일한 주제를 갖게 되어 그 본질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르네상스가 일어났던 것이다. ● 우리는 지금 '물질주의'에 압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문화를 경제관념으로 해석할려는 '어떤 이념의 집중화 현상'과 영리추구에만 목적을 둔 상업주의 문화가 범람하게 되어 정신의 참된 양식이 되는 소중한 문화는 거의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 근대의 소산으로 1839년 최초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진'은 이제 회화의 대치장르가 아닌 독자적인 창작예술장르로서 시사사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과 형태를 다루며 사진 고유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회화나 조각이 현대에 와서 장르해체를 부르짓듯이 마찬가지로 사진도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확장되고 변형되어 지고 있다. ● 『주명덕·구본창·민병헌』사진전은 예술분야에서 사진이 갖는 역할과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신적 양식이 될 수 있는 사진들만을 엄선하여 진정한 사진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한다. ● 『주명덕·구본창·민병헌』의 사진전은 모두 3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 풍경, 그리고 자화상이 그것이다.

주명덕_오수미_1992
구본창_조재현_1992

인물 ● 흔히 인간의 신체는 동양에서 '우주'로 상징된다. 명당도가 땅의 기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로도 표현되듯 인간은 하늘에 도를 본받아 땅을 살핀다. 따라서 인간은 단지 인간으로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그리고 땅과 더불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을 '천·지·인'이라 부르고자 한다. ● 진선미가 삼위일체가 되기 위하여서는 미가 진과 선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 미를 아름답게 여기고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추한 것마저도 돌이켜보면 이 추함이야말로 얼마나 불운한 탄생이겠는가. 그러니 더욱 아름답게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미를 보는 우리들의 눈은 그렇지가 않다. 이성적인 눈이 아니라 감성적인 눈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가 하면 미운 것을 싫어하는데 이는 진선의 눈이 될 수는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취사선택을 할 수 있을지언정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그럴 수가 없다. ● 마치 죽음을 예비한 듯 죽기 한달 전 주명덕을 찾아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는 오수미의 길게 늘어뜨린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바라보는 그녀의 신비로운 표정은 마치 부활의 카튜사에서 느끼는 새로운 차원의 여성미를 볼 수 있다. 주명덕이 보여준 오수미는 인물을 그릴때 인물의 정신을 표현해야 하므로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진욱(陣郁)의 사심론(寫心論)을 생각하게 한다. 신비스러운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넋을 잃었던 단테의 황홀경도 아마 이렇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 여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모르나 갸날픈 얼굴엔 여성미의 극치인 성찰과 참회와 체념의 미가 충만해 있었다. 사진을 자주 찍는 여성의 마음, 자기의 본체를 보기 위해서일까. 아무리 찍어도 아쉬운 마음이여. ●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현대사진의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한 구본창의 사진중 인기스타들의 사진은 빼놓을 수 없다. 인기스타들의 이미지 속의 화려함 보다는 절제되고 단순화 된 작가의 섬세함이 극도로 표현된 작품들이다. 구본창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만들어진 스타들의 포즈와 화면구성은 단순한 모델에 대한 표현보다는 자연스러움에서 표현된 절제된 내재미이다.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와 내적미가 보이는 심은하, 항거며 투쟁이며 강인한 윤리를 포함하고 있는 차승원, 가없이 아름다운 자연미가 표현된 강수연, '카오스'같이 어두우나 백광같이 밝은 안성기 등 작가와 스타들의 공동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까마득한 태고적, 우주가 태어나기 위하여 성운체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던 그 오묘한 움직임, 마치 회오리 바람이, 왈츠이며 나무들의 자연무용이듯 구본창의 인물사진은 기막힌 훌라댄스를 보는 듯 설레인다. ● 민병헌의 인물은 가장 본질적인 누드에서 출발한다. 너무나 노골적이며 너무나 수줍은 성적 매력을 접목하여 보여주는 그의 누드는 지나칠만큼 동물적이고 인간적이다. 성교를 하는 남녀의 섹스장면과 서로 뒤엉켜 있는 몸의 미학을 부드러움과 수줍음으로 처리하고 있다. 발레의 화신 니진스키도 감히 겨룰 수 없는 신기. 과감하고 노골적인 장면들을 조명과 인화작업으로 추상적 처리를 하고 있는 작가는 혼돈된 성적 욕망을 새로운 질서로 보여주고 있다. 흡사 샤갈의 그림속의 환상과도 같이 오묘하게. 음악에의 노스텔지어를 자아내는 민병헌의 사진은 생명의 율동이 아닌가 싶다. 열려있는 듯하면서 닫혀 있는 우리의 성적 욕망을 과감하게 그리고 서정적 추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누드는 인간의 몸이 가지는 극대의 아름다움을 가장 성스러운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비와 우아와 청초를 일으키는 민병헌의 사진. 그러고 보니 민병헌은 가장 멋진 연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병헌_FALL_2001
주명덕_강화_2001
주명덕_금강산_2001
구본창_Ocean 8_1999

풍경 ● 흔히 사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풍경을 재현한 것으로 '실경(實景)'의 대명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삼인의 풍경을 '진경(眞景)'이라고 말하고 싶다. ●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와 도시 주변을 '마음의 눈'으로 표현한 '진경산수'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종병(宗炳)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법을 통해 자연의 풍경을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 한 것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풍경이 아닌 산수'는 바로 조선후기에 등장한 진경을 뜻한다. ● 시간과 공간의 이위일체란 지극히 미묘하다. 이들은 서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는 하이데커적인 생각인데 이 시간과 공간은 영원히 실재하기는 하지만 스스로가 포괄한 만물에 대하여 아무런 권능을 지니지도 못한다. 이들은 다만 무한대의 '흐름'과 '있음'을 지닐 뿐이다. ● 그리고 이들은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히 흐르고 있었던 과거와 같이 영원히 흐르고 있어야 할 조물주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어느날 저녁 숲속을 거닐다가 이 지상에서 가장 찬란한 보석들을 보았는가! 신비스럽게 물든 저녁 햇빛을 받고 나뭇잎이며 풀에 수없이 매달린 물방울이 무지개 빛으로 아롱져서 빛나고 있다. 그것은 사파이어나 루비보다도 더 아름다운 환상속의 보석이었다. 푸른 하늘, 새하얀 구름, 아름다운 무지개, 붉게 지는 저녁놀,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들을 쳐다볼 양이면 이 회화적인 우주미가 고스란히 원초적인 성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연 예찬 때문에 호수에 비친 달을 붙잡으려고 빠져죽은 이태백과 자기 도취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붙들려다가 역시 호수에 빠져죽은 나르시스소년, 이는 동,서양의 대조적인 상황속에서 표현된 자연예찬론의 동질감이다. ● 짙푸른 하늘에는 천사의 의상마냥 새하얀 구름떼들이 떠다니고 비너스의 눈썹이랄까, 오색무늬 아롱진 무지개가 뜨며 자연의 기막힌 조명이라 할 붉은 노을이 진다. 지구의 하늘이 까만 빛깔이었다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해 졌을까 싫증과 권태를 주지 않은 이 영원의 하늘빛을 보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늘빛에 대해 새삼스레 감사와 경탄을 보낸다. ● 전위 음악가인 존케이지의 「우연성의 음악」처럼 하늘의 여러 계층에서 나는 갖가지 구름떼들에게서 전위미술이라 할 「우연성의 미술」을 발견할 수 있다. ● 주명덕은 1981년 그가 즐겨찾던 설악산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으로 시작하여 1993년에는 일본에서 '잃어버린 풍경(Lost Landscapes)' 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20여년간 한국의 아름다움과 서정을 앵글에 담아오고 있는 작가는 사진의 역할과 논리적 근거보다는 그저 직감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삶을 보여주며 인간을 바라본다. 무심하게 길어올린 정령적인 산, 숲, 꽃들은 한결같이 어둡고 짙은 톤이며 그것은 그림에서의 그리기와 지우기와도 흡사하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듯 움직이지 않는 듯 그러나 예리하고 섬세하게 조율해 내고 있는 생명의 음들은 올 오버 포토그래피(all-over photography) 형식으로 어느 곳 하나 소홀함 없이 대등하고 균질하게 보여주고 있다. ● 우연히 배 위에서 바라본 물결들의 움직임에서 거대한 생명체를 느꼈다는 구본창은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에서 자아낼 수 있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의 생명체를 보여주고 있다. 간결하고 섬세하게 물결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는 작가는 지극히 단순화되고 절제된 표현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정확한 포착 보다는 아련한 느낌으로 그가 고민하는 생명의 윤회를 물결의 강하고 섬세함 속에 담고 있다.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진 그의 물결은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가벼우면서도 깊게 표현되고 있다. 결국 그가 오랜시간을 통해 달려온 다양한 사진적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라 생각된다. ● 민병헌의 풍경은 추상적이다. 안개 낀 도시, 다리, 언덕위의 경계선, 산능선, 이름모를 풀잎들이 검정과 회색톤으로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다. 정확한 장면, 시간과 빛 보다는 우리가 호흡하는 장소, 공간, 시각들을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것을 다시 작가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드러난 듯 숨은듯, 부드러우면서도 다소곳한 그의 풍경은 과거-현재-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미묘한 신비로움을 제시한다.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맑고 깊게 표현되어진 민병헌의 풍경은 고요하고 잔잔한 우리의 산하를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여주고 있다.

민병헌_SELF_2002
주명덕_나의 작업실_2002
구본창_빛을 찾아서_1982

자화상 ● 반 고흐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는 없을 것이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는 것은 자기에 대해 궁금해서 일 것이다. 그의 가지가지 자화상을 보면 다양한 광적인 성격을 볼 수 있는데 심지어 고갱과 싸우고 홧김에 귀를 자른 다음에도 그 아픔을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가. 이같이 수많은 자화상을 그린 것은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얼굴 한구석엔 어딘가 놓친 곳이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보는 얼굴은 남들이 봐주는 것처럼 사실적이 아니라는 것이 또한 야릇한 사실이다. 자기의 얼굴은 영원한 미지수이다. 마치 모나리자의 그 신비의 미소를 알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날마다 들여다 보아도 육안으로서는 통찰하지 못할 그 무엇이 깃들여 보인다. 말하자면 심안으로 밖엔 볼 수 없는 나의 또 하나의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본체의 얼굴을 찾기 위하여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 얼굴은 표지다. 그래서 사람(과거, 현재, 미래)의 얼굴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단순해 보이는 얼굴과 눈과 코들의 위치와 양상이 저렇게 갖가지로 다르다는 것이 미묘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 모양이 그대로 그들의 심리적인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가 숙명의 아들, 딸인 셈이다. 그래서 나 역시 못생긴 내 얼굴을 미워하지 못한다. ● 기가 막히게 남의 얼굴을 잘 표현해 내는 삼인의 작가들의 자화상을 보자.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을까! ■ 신정아

Vol.20020420a | 주명덕·구본창·민병헌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