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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BY 디지털 영상展   2002_0417 ▶︎ 2002_0423

KISEBY_There are_비디오 영상 설치_2002_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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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417_수요일_05:00pm

KISEBY는 기존의 그룹 작업이 아닌 임상빈, 강은영의 이니셜을 조합하여 만든 하나의 가상주체로서 서로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하나의 작업을 진행시킵니다.

갤러리 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음직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많은 에피소드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하루는 엘리스가 하트왕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속에서 하트왕은 자신을 꿈꾸고 있는 엘리스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속의 엘리스는 자신을 꿈꾸는 하트왕을 꿈꾸었고, 그 꿈속의 하트왕은 다시 자신의 꿈을 꾸는 엘리스를 꿈꾸었고…. 그렇다면 누가 누구의 꿈을 꾸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엘리스의 꿈은 장자의 유명한 '호접몽' 일화를 상기시키는데, 꿈과 현실, 자아와 사물의 구분을 유예시키고 초월하는 상황에 대한 뫼비우스적 상상이라 할 것이다. ● 현대의 과학기술은 현실과 가상을 전복하고 통합하는 강력하고 새로운 가상현실을 고안하였으니 고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판단유예의 영역은 이제 더 이상 이야기가 아닌 실제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사실이며, 그러한 실제는 가상실제란 존재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받고 공격당하게 되었다. 실제와 가상이 인식의 범주를 넘어선 또 다른 현실일 수 있을 때 작가들은 어떤 상상을 하게 될 것인가.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주장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예술의 창작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KISEBY_There are_비디오 영상 설치_2002_cut

임상빈과 강은영은 2인전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를 불확실하고 그릇되고 언제든 조작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모호함 속에 몰아 세운다. 그들은 '기서비(kiseby)'라는 새로운 가상주체를 만들고 그 기서비라는 존재의 개인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기서비라는 실체는 선언적 언급일 뿐 두 사람이 갖고 있는 내용적 공감과 작업의 긴밀성을 드러내는데 한정되어 나타난다. 이는 작가 주체의 전이 내지는 소거를 염두에 둔 것일텐데, 사실 기서비의 정체를 찾는다는 것은 엘리스나 장자의 꿈처럼 모호하고 구분하기 어려운 사안일 터이다. ● 이들의 작업 이미지 합성에 의한 컴퓨터 출력, 비디오, 웹 에서 내가 재미있게 본 것은 실제 신체 일부를 스캐닝하여 떠낸 이미지 소스를 이용한 합성 작업이다. 신체 스캐닝은 일종의 충실한 복제이면서도 원본의 기억을 소거하기에 충분한 왜곡되고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조립되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눈썹眉, 머리카락毛, 눈目, 손手, 귀耳, 코鼻, 입口, 발足의 부분을 스캐닝하고 크로핑한 다음 각각을 단일한 이미지 단위로 만들고 그것을 개별 장면에 맞추어 복제 재조립하였다. 조립의 기교도 정교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좀더 흥미로운 점은 신체 부분들이 만들어 내는 그럴싸하면서도 거짓스런 장면, 기대를 유발시키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좌절시키는 경험과 맞닿아 있다는데 있다. 그것은 유머러스하면서도 환상적이며 추(醜)와 쾌(快) 사이를 진동하는 파장이다.

KISEBY_Nose_디지털 프린트_42×210cm_2002_part

임상빈과 강은영이 자신들의 신체로 보여 주는 것은 하나의 풍경이다. 마치 오로라같은 배경에 촘촘히 자리잡고 있는 기이한 유기체들로 가득한 풍경은 모두가 자신들의 신체로부터 기원하지만 그 출처로부터 이탈하며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추적하다보면 발신지를 알 수 없는 상대와의 교신처럼 흥미와 위험이 공존하는 경험을 갖게 한다. 또한 신체 유사성의 풍경이 지닌 익숙함과 진부함을 낯설고 세련되게 바꿔 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으로부터 기원한 것을 지각할 수 없는 경험, 역으로 자신의 위치를 상실한 채 무한 공간이라는 미로 속에 갇히는 공포감을 환기시킨다.

KISEBY_Eye_디지털 프린트_42×210cm_2002_part

그것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체험과 흡사하다. 발신지의 부재, 익명성, 무한 개방과 접속에도 불구하고 출처와 정체, 개성의 표현에 연연하는 모순된 상황을 발생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바타는 이러한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과 자신을 드러내려는 표현성 사이의 모순된 욕망에서 탄생하였으며 임상빈과 강은영이 함께 합성하고 있는 '기서비'도 그 아바타의 계보이다. 아바타는 탈육체화된 인간이면서도 그들의 분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신은 피그말리온적 동경과 자기 복원을 통한 나르시시즘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평판 스캐너의 유리면 위에 올려진 실제 신체는 스캐너의 빔과 함께 움직이거나 웨이브를 줌으로써 시간의 지연의 포착을 동시에 잡아낸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압력에 따라 변형되는 신체의 데이터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디지털 복제시대의 익명성으로부터 구원하려는 주체의 욕망처럼 극대화된 정교함으로 스캐닝된 신체는 수집되고 집적되어 복제와 재조립을 통해 가공된다. 여기서 신체는 더 이상 유기적 신체가 아닌 단절적 디지털의 신체이다.

KISEBY_Hair_디지털 프린트_42×210cm_2002_part

임상빈 강은영의 아바타에서 신체는 더 이상 온전한 모습이 아니며 부품이거나 데이터일 뿐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 재편된 그들의 '기서비'는 모체의 근원적인 불안과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들의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고 물리적 거리가 벌어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오히려 개인의 심리적 거리와 내면적 욕망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역설을 발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신체, 그것은 새로운 우주일수도 있지만 길 잃은 욕망의 미로일 수 있는 것이다. ■ 안인기

Vol.20020425a | KISEBY 디지털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