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Alone

김지애 회화展   2002_0404 ▶︎ 2002_0425 / 일요일 휴관

김지애_Left and Crying_캔버스에 한지와 혼합재료_144.5×85cm_2002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그리운 시간, 그리움 그리기 ●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향기로움, 부드러움, 그리고 몽환적인 느낌...... 이처럼 신비롭고 강한 힘이 또 존재할까? ●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급속하게 발전한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속도를 강요하고, 생각을 벗어버리게 한다. 빠르지 않으면 뒤쳐짐으로, 진지하면 고루함이 되는 상황들은 사랑이란 감정조차 빛을 잃은 채, 가벼운 유희로 전락하게 했다. 무엇이든 '상품성'을 지향하는 경제논리에 맞지 않으면 가치부재선고를 받게 되는 지금, 김지애는 사랑의 담론과 행위가, 지독히 세속적이고 저급화되어 가는 현 시대에 태초의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었던 그 순백의 의미를 다시 말하고 싶어한다. ● '가장 마지막 날에 지음 당한 남자, 그리고 그 독처(獨處)함이 안타까워 여자를 만들어준 신의 배려'라는 성서내용을 인용한 작가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행위로 이어지는 사랑의 언어들이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선물임을 그림에 담아 사랑의 서정성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김지애의 그림은 따뜻함으로 다가오고, 편안함으로 느껴진다. 마치 아랫목에 들이민 손끝으로 따뜻함이 전해져 그 온기가 퍼지고, 비로소 포근함 안으로 들어가 편안해지는 것처럼... ● 김지애의 그림엔 늘 하얀 셔츠차림의 남자와 그에 비해 약간은 화려한 의상에 복숭아 빛 피부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담한 공간까지 빼놓지 않는다. 그것은 하얀색이 주는 순수함과 깨끗함으로 상징성을 부여하고 그 사랑의 완성에 한 걸음 물러선 수동적 입장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의 수줍지만 행복한 여자를 표현하는 것이다. 거기에 간혹 들어오는 햇살, 블라인드나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창, 폭신한 베개, 침대... 우리가 늘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것들의 표현으로 지극히 사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공간임을 관람객들에게 느끼게 함으로써, 그림 속의 주인공으로 초대한다. 더 나아가 어떤 표정도 정해지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형상에 관람자가 그들이 되어 행복한 꿈꿔 보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김지애는 작품 전체에 걸쳐, 보는 이의 자리를 만들어 두고 몰입의 시간을 끌어낸다. ● 화려하고 장식적인 배경과 동양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채의 여백... 다양한 색상이 주는 생동감, 움직임, 아름다움 등은 달콤한 시간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갖게 하고, 계속되는 여운을 무한대의 빈 공간에 자유롭게 채색하게 한다. 자칫, 이 시대의 혼람함과 맥을 갖이 해 통속적인 측면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작품들이 오히려 관람객들에게 경쾌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담아내려고 하는 순수성의 발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 작가는 가볍기를 원한다. 애써 어려운 의미 강요나, 표현으로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작품 이면의 어떤 곳까지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스틸사진처럼 포착된 한 순간의 상황에 관람객의 시선이 닿아 있기를 원하고 그 신비로운 대화를 듣기를 원한다. ● "내가 꿈꾸는 것은 사람을 불안케 한다든지 마음을 무겁게 하는 따위의 주제를 갖지 않는다. 균형과 순수함과 고요함의 예술,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하나의 진정제와 같은 예술, 그 육체적인 피로를 풀어 주는 것이 편안한 안락의자라고 한다면 예술은 바로 그 안락의자에 해당할 만한 것이다." ● 마티스의 이 사상을 동경한다고 말하는 김지애는 그적 자신의 그림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얘기한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주고싶어 하는 궁극의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녀의 작품 속에 사랑은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되려는 설레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설레임이 우리에게 사랑의 순백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도 다녀가지 않는 희디흰 설원(雪原)처럼... ■ 원금옥

김지애_The Sea in her Dream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cm_2002
김지애_She is lying in the sea with butterfly fishes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cm_2002
김지애_Familiar Vacancy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7cm_2002

그는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안락의자 같은 그림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외에,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설명도 하기를 싫어했다. 단지 자신의 그림이, 보는 이에게 안락의자를 앉은 듯한 편안함을 주기를 바란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 그래서 그는 무거운 의미보다는 즐거운 기억을 그린다. 묵직한 현실이 넘쳐나는 요즈음에, 자신의 그림이 잠깐 즐거운 시절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시대는 가벼움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돌아서면 쓴웃음을 짓게 하는 대중문화의 가벼움. 그것들도 내 동료와 마찬가지로 가벼움을 표방하지만, 그것들의 관심은 나의 '안락'이 아니라 그것들에 길들여진 내 호주머니인 듯 하기에, 돌아서면 씁쓸하고 무겁다. 이른바 고급문화의 경우에도, 그런 무거움의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거운 의미는 무거운 대로, 가벼운 의미는 가벼운 대로 의미해석을 요구하며, 종종 대중문화의 의도를 모방함으로써 더욱 현실을 무겁게 만든다. 내 동료가 바라는 건, 어떠한 종류의 자극도 아니며 해석을 요구하는 의미가 아닌, 단지 안락의자로 가는 시이다. 하지만, 시대가 만든 냉소와 소외감은 내 동료의 올곧은 작업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든다. 습관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 찾아야만 할 것 같은 의도 혹은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는 가벼움에의 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아 보인다. 표현되어 지는 안락의자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지만, 받아들여지는 안락의자는 보는 이에게도 몫이 있다. ● 그는 불숭하지 않은, 난해하지 않은 안락의자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지만, 그 대가로는 가벼운 시선을 바란다. ■ 감성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좀 새로운 게 있지 않아?" "소재나 표현이 너무 진부하지 않아?" ● 나는 그림이 재미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림이 재미있어 그림을 그리고, 보기에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의 웃음, 내 주변의 소박한 꿈들. 그 재미가 씁쓸한, 무언가 알려하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환하게,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웃음이길 바란다. ● 이번에 제시한 두 가지 스타일의 작업은 내가 요즈음 그리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있는 달콤한 꿈의 화면 한 가지. 그리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그림. 한번은 그런 작은 그림들만 가지고 전시를 하고 싶다. 하나하나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전시를... 후후... ● 그림이 전달하는 편안함, 뜨뜻함 외엔 그다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 내가 요즘은 새롭다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 싶어졌다. 새로움에 저항하는 진부한 새로움. 회화의 진정성의 회복이라고나 할까. 나의 '새로움에 저항하는 진부한 새로움'이라는 무기를 들고 소위 새롭다는 것들에게 맞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나는 또 예쁜 사랑, 예쁜 꿈들을 그린다. ■ 김지애

Vol.20020427a | 김지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