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scene

노하나 회화展   2002_0522 ▶︎ 2002_0528

노하나_#20020302_나무에 아크릴채색_45×40×12cm_2002

초대일시_2002_0522_수요일_05:3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메멘토 스페이스_A Scenes of Memento ● 한 젊은 작가의 첫 전시에 쓰여진 평론가의 고백이 떠오른다. "참고 도록이 없다는 건 글 쓰는 이에게 자유로움을 주지만, 책임감 또한 무겁다." 노하나의 첫 개인전에서 필자 역시 글 쓰는 즐거움보다 책임감과 부담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글쓰기의 어려움인가 보다. 각자의 작업실에서 온갖 고민에 보대끼며 '창조'해 낸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이는 일은 젊은 작가들에겐 녹녹치 않은 긴장과 초조,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 대학원 시절 그가 관심을 갖고 시도한 것은 새로운 '공간 해석'의 가능성이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수학적, 물리적 공간, 뫼비우스의 띠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인 오로보로스(Ouroboros)처럼 안과 밖, 시작과 끝이 없으며 경계가 모호한 공간, 무한 공간에 대한 실험이었다. "상하·전후·좌우 3방향으로 퍼져 있는 빈 곳."을 지칭하는 사전(辭典)속 정의는 명확하지만 심리학자와 수학자, 물리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공간(Space)'은 영원히 풀 수 없는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가득 찬 '미지의 개척지'였다. 그는 안과 밖, 닫힘과 열림이 공존하는 모호한 공간을 해체하여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실제적으로 자각되는 릴리프 구조와 그 위에 드로잉 된 환영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서 무한 공간으로의 확장을 시도하였다. 2차원과 3차원이 혼재하는 기하학적인 선과 색면으로 이루어진 입체 구조는 추상 조각에 결여된 회화적인 색채와 바로크적인 박진감을 결합시키며 획기적인 공간해석을 시도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릴리프(Relief) 회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노하나_#19990323 배반_나무에 아크릴채색_65×90cm_2002

이번 전시에서 노하나는 이전까지 시도했던 순수 기하학적 입체의 공간 구성과 함께 좀 더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개념을 작품에 투영하며,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한 새로운 공간을 선보인다. 벽면 위를 부유하는 기하학적 이미지의 파편들은 화면을 벗어난 자유로운 선 드로잉으로 연결되어지며 서로간에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전체를 구성하는 조각들은 작가의 기억 속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추상적 이미지들이다. ● 개인의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시의 무한 공간이며 불완전하고 모호한 존재이다. 대부분의 기억들은 완결된 구조가 아닌 조각난 파편들로 이루어져있다. 기억의 틀 속에서 조각난 이미지들은 날카로운 모서리가 깎여나가며 흐릿하고 뭉글해진다.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깊이 숨어버린 기억의 편린(片鱗)들은 뚜렷한 형상을 갖지 못하고 언제나 모호하다. 이후, 가끔씩 향수(鄕愁)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기억들은 이성을 무디게 하고 감성을 자극함으로서 자칫 지나친 낭만으로 흐르게 한다. 그러나 기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개인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영화 속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에게 세상은 온통 의심과 불안의 대상이다. 자신의 존재근거를 뒤흔드는 것은 무의식 속으로 완전히 소멸해 버린 잡히지 않는 기억이었다. ● 기억의 조각들을 작품 속에 끌어온 노하나의 작업은 자기 확인에 대한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의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영원히 과거형일 수밖에 없는 기억이다. 무엇인지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낼 순 없지만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며 단단한 지반(地盤)과도 같은 무엇이다.

노하나_#020922 죽음_나무에 아크릴채색_65×90cm_2002

발터 벤야민(Water Benjamin)은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에서 영화와 회화에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미지를 선택하는 영화는 화가의 영상과 같이 하나의 전체적인 것이 아니며 시공을 초월하여 여러 개로 쪼개져 있는 단편들로서 다시 새로운 규칙에 따라서 조립된 것이다. 이는 기억의 조각들을 형상화하고 조립하는 노하나의 작업방식과 유사하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파악하듯 무의식과 의식이 혼합된 기억의 저장고에서 과거의 영상과 이미지들을 취한다. 그 이미지들은 이미 형상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추상화되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기하학적인 파편들이며 독립된 구조를 갖지 못한 불완전한 부분들이다. 이러한 파편들을 편집하여 실제 공간 속의 완결된 전체 구조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몫이다. ●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기억의 수많은 장면(Scene)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구성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형식의 리릭(Lyric) 다큐멘터리이며, 관람 포인트는 한 개인의 기억의 조각에 나타난 세밀하고 잔 생채기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개별형태를 지니고 있는 다각형의 파편들은 기하학적인 선과 채색된 면의 분할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름의 구조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언뜻 대량생산된 매끈한 플라스틱 재질의 조립으로 이루어진 듯한 구조는 작가의 '흔적 더듬기'에 의해 재생된 다양한 선과 색채들, 붓의 흔적들로 꼼꼼하게 이루어진 수공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 작업들은 작가 자신에게는 과거를 통한 현재의 확인이며, 내일의 새로운 시도를 위한 정지작업(整地作業)이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는 관객은 작가의 존재를 공증(公證)하는 증인이 된다. ■ 이추영

Vol.20020602a | 노하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