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야기:한일현대미술展

2002_0524 ▶︎ 2002_0714 / 월요일 휴관

박화영_별일없지?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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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0523_목요일_03:00pm

일본전 / 2002_0801 ▶︎ 2002_0910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참여작가 김서니_김유선_마츠오 후지요_마츠이 치에_박화영 부부 드 라 마들렌느 사카가미 치유키_우순옥_윤애영 이와키 나오미_장영혜_키무라 유키

전시설명회 (제2전시실 입구) 2002_0608_토요일_02:00pm~03:00pm / 학예연구관 강승완 2002_0706_토요일_02:00pm~03:00pm / 학예연구사 박미화

작가와의 대화 2002_0525_토요일_02:00pm~03:00pm_제2전시실작가코너_김유선 2002_0615_토요일_02:00pm~03:00pm_제2전시실작가코너_우순옥 2002_0629_토요일_02:00pm~03:00pm_제2전시실작가코너_김서니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_2188_6000

"누구나 자기가 길들인 것 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사람들은 이미 무얼 알 만한 시간 조차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상점에서 산단다.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여우가 말했다. _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김서니_그룹핑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200×152cm_2002

1. 길들이기 ●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서로 길들여지면서 서로 의사소통의 관계를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여우의 대사는 새삼 나를 감동시켜주었는데 그 부분은 바로 길들인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길들인 것 밖에는 알 수 없다'는 여우의 대사는 '소통으로서의 현대미술'이라는 정의에 대한 등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거대한 모더니즘의 물결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이 해결하고자 했던 예술이 대중과 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던 많은 방법론 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이 전통적인 구상성을 벗어나면서부터 추상과 다양한 전위미술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는 대중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거리감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이제 중고등학생의 미술교과서에 실려야 할 시점에 와 있지만, 일반 대중은 이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피카소의 일그러진 형상들이 왜 중요한지를 과거의 「모나리자」나 김홍도의 「씨름」에서와 같은 완벽한 이해의 세계를 갖기란 불가능하다. ● 이러한 추상적인 현대미술과 대중과의 거리감은 서로 길들여졌을 때 거리를 좁히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길들이기'는 일방적인 의사소통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상호 이해하기 위한 자세가 성립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린 왕자를 매일 기다리는 여우와 여우를 매일 찾아가는 어린 왕자와 같은 기본 관계가 성립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상호 이해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신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다. 여기 12명의 한일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길들여져 있고, 작품은 다시 전시장에서 대중과 서로 길들여지려고 한다. 대중은 자신도 미처 의식하기 못하고 있던 세계를 미술과 작가의 작품을 통해 찾아가고, 작가는 작품을 중간매개로 대중과 간접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대중은 단순히 작품 앞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다양한 현대미술을 수용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은 작품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길들여진 대중은 미술작품이라는 간접적인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의 한 단면을 직시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할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 여기에 나의 텍스트를'여우 길들이기'라는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 상호 이해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서로 길들여져야 하고,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소통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의 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본 필자는 길들이기를 택하였다. 이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바로 이것이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린 왕자를 매일 가슴 설레면서 기다리는 여우의 자세를 유도하고자 한다. ● 작가와 작품, 작품과 관람객 그리고 다시 관람객과 작가와의 간접적인 경험의 공유관계를 통해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세계를 깨달아 감으로써 직접적인 대화나 언어에 의한 1차적인 의사소통에서 나아가 다양한 간접적인 또 다른 이야기들을 전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린 왕자의 여우 길들이기를 이 전시의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

부부 드 라 마들렌느_즐거운 인생_비디오 영상설치_2001

2. 거리 좁히기 ● 길들이고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거리를 좁혀 가면서 관찰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참을성 있게 조금씩 자기에게 다가오기를 제의한다. 현대 미술은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면서 자신들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에 관람객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작품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작품에게 맘의 문을 열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작품을 통해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타자에 의한 가상의 세계에 자극 받았을 때 작품에 관람객은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사카가미 치유키_내가 찾고 있는 것-실루리아기 바다에서 놀자_혼합재료_20×31.5×26cm_1995~9

이러한 길들여지는 과정이 없는 단순한 바라봄은 그 이해의 깊이가 매우 얕아 좋은 의사소통의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알기 위해 서로 길들여져야 하며 이를 통해 관계가 맺어져야만 한다. 관계를 맺기 위한 거리 좁히기는 서로를 기다리고 관심을 가지면서 조금씩 한발자국씩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며 이는 결코 상호 이해 없이 완전한 의사소통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현대미술은 보다 적극적인 관람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작가에 의해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면서 상호 거리를 좁혀들어가는데 관심을 가진다. 결국 미술을 중간 매개로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보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관계를 성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순옥_빛 이전의 빛, 빛 이후의 빛_슬라이드 프로젝션_2001

3. 관계 맺기 ●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의사소통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 12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한 관람객과의 관계맺기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회화와 미디어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는 순수회화 작가들에게 붓을 대신하는 도구로 부상된 지 이미 오래이며 컴퓨터, DVD, 비디오, 프로젝터 등 점점 다양한 기자재들이 작품에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대중과 작품과의 관계 맺기에 사실상 새로운 어려움을 준다. 그러나 미디어 매체는 그것이 갖고 있는 내용보다는 파급효과와 그 자체가 갖는 힘이 더 크다. 즉 영화, 통신, 등의 미디어로 인한 정보의 세계적 공급은 이제 우리의 앞세대가 행사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앞지르고 있으며 서툰 선조들의 손에 의해서 형성되었던 기성 사회는 수많은 익명의 정보제공자들에 의해 그 힘이 약화되었다. 또한'시간'과 '공간'의 체계를 허물어뜨렸고 우리들에게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쏟아 붓는다. 대화를 하나의 지구 규모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현재 고도의 미디어 매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획제도를 종식시키는 총체적 변화를 뜻하며, 종래의 개념인 도시와 주 그리고 국가의 구획은 이제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는 미디어와 우리는 관계 맺기에 노력을 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의 종착점은 전통적인 회화에 대한 접근 거리와 비슷한 정도까지 좁혀져야 할 것이다.

윤애영_비밀 정원_비디오 영상과 공간설치_2001

한국의 박화영, 윤애영, 장영혜, 우순옥 그리고 일본의 마츠이 치에, 부부 드 라 마들렌느, 키무라 유키 등이 미디어를 통한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물론 우순옥의 경우는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이용하고 있어 다른 작가들과 변별성을 가지나, 붓이 아닌 영상 기자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맥락에 선다. ● 박화영의 「별일 없지?」는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서울 근교를 다니면서 버려진 것들을 하나씩 줍는다. 줍는 행동에 연이어 주인공은 신체의 일부를 무심히 잘리면서 다음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장소를 옮기면서 집어드는 물건들은 모두 자해가능한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주인공의 신체와 계속 서로 교환이 되면서 매우 암시적인 분위기로 유도된다. 최후에는 몸으로부터 목도 잘려나가게 되는 매우 무심하고 냉정한 화면으로 결론지어지면서 다시 처음의 완전한 몸으로 돌아가 10분 간격으로 영상들이 반복된다. 작가는 실제로 어느 아침에 어머니로부터 간밤 꿈에 너의 눈알이 빠지는 꿈을 꾸었다며"별일 없지?"라고 걱정을 듣게 되는데 미지의 발생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과 인간의 온전하지 않음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작가는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으로 얽혀져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 매우 무미건조하고 자신의 세계에 보다 철두 철미하여 사실은 매우 냉정한 인간관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 그러나 본 필자는 이 작가의 이러한 무미 건조하고 냉정한 인간상에 대한 표현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인간의 본성에 깔려있는 무심함과 이타적인 상태에 대한 강한 표현과 지적은 오히려 인간의 감성에 더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의 또 다른 표현인 것처럼 강한 긍정 또한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내면의 심리를 반영한다. 이러한 박화영의 작품세계를 통해 개인의 심리를 근저로 한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는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는 의사소통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다. ● 박화영의 작품과는 대조되는 작가로 일본의 유키 키무라(Yuki Kimura)를 들 수 있다. 이 작가는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각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제시하고 있다. 비디오와 사진작품을 제작하는 이 작가는 4명의 실제 형제들에게 같은 옷과 같은 가발을 씌운 후 서로 섞어서 총 8쌍의 비슷한 형제 자매를 만듦으로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과정을 연출하였다. 작품 제목 또한 매우 서술적으로 명명되어져 있는데 「누가 이중 진짜 형제 자매인지 헤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태어난 것은 부모님이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이다. 이 작가는 사회적인 제약이 가하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와 제도권 내에 속한 우리들을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즉 언뜻 보기에 같은 8쌍의 형제 자매들로 구성된 듯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닮지 않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같은 머리모양과 옷에 의해 우리의 눈은 진실을 알아보기 매우 힘들어지고 세세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재치에 흥미가 유도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영상작업 또한 끊임없이 이상하고 기묘한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어두움, 엄청난 수의 개미떼, 고소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에서부터 머리를 당겼을 때 벗겨지는 가발에 의해 허탈해지면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을씨년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김유선_벚꽃(부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수채_194×130cm_2002

박화영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무미건조한 인간의 불안전성에 대한 표현은 유키 키무라의 이러한 공포의 매우 유사함이 발견된다. 즉 수 많은 벌레들, 긴 복도 등 우리가 접할 수 있고, 때로는 상상하던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의 공포는 신체가 절단되고 그에 대한 인간의 메마른 정서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우리를 섬뜻하게 하는 두려움을 준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으로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키 키무라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부터 상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모든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들을 환기시킨다. ● 한국작가 써니 킴(본 전시에서는 한국인의 이름의 형식에 맞추기 위해 김서니로 쓰여졌으나, 본 필자는 현재 작가가 불려지는 이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써니 킴(Sunny Kim)으로 쓰고자 함.)은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고 최근 고국으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이다. 80년대 한국을 떠날 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미국에서의 성장기간 동안 항상 완벽함에 대한 추구를 꿈꿔 온 이 작가는 교복 입은 여학생의 모습에서 자신의 기억과 완벽함을 그리고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룹별로 모여 다니면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순수한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작가는'그룹핑(grouping)'이라는 10대들만이 갖는 의사소통의 방법들을 발견하였고, 당시로는 중요한 사건들이었으나 이제는 빛 바랜 잊혀진 기억들로 사진에 묻혀져 버린 일련의 이야기들을 작가는 그림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 실재로 존재하진 않는 완벽함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지나간 과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작가의 자신과의 이야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상황 속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들도 시간을 동반한 과거의 일들은 그 나름의 완벽성을 가진다는 것을 작가는 무의식중에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써니 킴과 상응되는 일본작가로 나오미 이와키(Naomi Iwaki)를 들 수 있는데 써니 킴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몇 안되는 평면 회화작가이다. 매우 단순한 모노 톤 색조의 풍경들을 그려내고 있는 이와키의 작품들은 과거 기억의 단편들을 소재로 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들을 연상시킨다. 수직과 수평을 기본으로 하지만 결코 일직선이 아닌 선들에 의한 창문과 커튼을 그린 꽤나 단순한 구도의 풍경들은 작가가 어릴적 할머니가 만들던 키모노 옷을 펼쳤을 때의 구도와 자연스럽게 일치하기도 한다. 어릴 적 순수한 마음으로 간직하였던 할머니와 관련된 키모노에 대한 무의식의 기억들이 성장후 자연스럽게 작가의 내면에 스며들어 작품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재의 모습은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부인(否認)할 수 없는 것인데 설사 우리들 자신이 부정한다 손치더라도 잠재의식은 우리의 과거 기억과 철저하게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우리는 여기서 써니 킴과 나오미 이와키를 비교함으로써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써니 킴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상당부분 의식적인(ego) 측면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머니의 고교시절 사진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나오미는 주변 풍경을 묘사하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람객 또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는다. 직접적인 의사소통관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간접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전달되고 소통되어짐을 알 수 있다.

키무라 유키_담배#2 크고 작은 산_컬러프린트_120×354cm_1999

4. 맺음말 ● 인간관계는 서로 길들여지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단체와 단체들이 서로 어우러져 형성되는 모든 관계들에서 길들여지면서 언어에 의해 가장 기본적이고 1차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의하고, 이끌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언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의사소통을 전적으로 언어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소통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고, 그 중 시대를 앞서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미술에 의해 우리는 다양한 선험적인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읽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을 통한 길들이기와 서로에 대한 의사소통관계는 결코 일방통행으로는 불가능하다. 미디어를 이해하고, 작품에 대한 기본정보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내면 심리에 집중함으로써 가슴 두근거리면서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의 자세가 되는 것이다. 길들여지는 과정을 가지면서 서로를 아는 진정한 이해를 전제로 했을 때만이 자아의 정체성 발견을 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 박미화

Vol.20020604a | 또 다른 이야기:한일현대미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