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sent

엄정순_양승무_정헌이 공동작업展   2002_0607 ▶︎ 2002_0621

엄정순·양승무·정헌이_Love Letter_2002

초대일시_2002_0607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엄정순_양승무_정헌이

갤러리 인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02_732_4677 www.galleryihn.com

이 전시는 화가 엄정순, 건축가 양승무, 평론가 정헌이 3인의 공동작업이다. 각자의 성과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종래의 3인전과 달리, 세 사람이 하나의 '혼성주체'가 되어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서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함께 소통했던 흔적을 담고 있다. ● 세사람은 '동시대의 예술 언저리에서 함께 사는 인간'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서로 갈등하고 때로는 공감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루되어있는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향해 조금씩 움직여갔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이 전시의 주제, 구성, 이미지의 윤곽을 함께 만들어냈다. ● 이 전시에서 관람자는 여러 전문 분야가 얼마나 잘 협력(cooperation)했느냐가 아니라 각자의 경계를 얼마나 많이 허물고 서로가 하나로 혼합(mingle)되었느냐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의 제목인 『The Present』는 "지금 현재의 자신이 곧 선물"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타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 전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간격에서 소통이 비롯된다는 의미로 세 개의 '간(間)', 즉 시간(時間), 인간(人間), 공간(空間)을 기본 축으로 구성되고 있다.

엄정순·양승무·정헌이_인간-그림자_2002

선물 ● 이 전시는 작년 가을 엄정순의 생일파티에서 시작되었다. 그 파티에는 가을에 생일을 맞은 친구들이 초대되었고 엄정순은 친구들을 위한 생일 선물로, 함께 한 시간의 흔적들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선물'이 준 감동과 함께 우리는 그 하루 저녁을 웃고 떠들면서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즐겼다. 엄정순이 말했다. "작업이 이런 것이면 좋겠어. 이렇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또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면...."

엄정순·양승무·정헌이_인간-花飛(술래잡기)_2002

함께 ● 그 겨울 엄정순은 정헌이와 양승무에게 다음 전시를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어차피 '나'란 것이 수많은 타자들로 구성되거나 구조지워지는 것이라면 '타자'를 통해서 다시 '나'를 만나고 싶고 그 '나'의 정체성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우리는 벌써 40대라고, 나도 지쳤고 그대들도 지쳐보인다고, 잠깐만 '함께' 재미있게 '놀다' 가자고, '그(녀)'는 마치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듯이 '우리'를 그녀의 전시로 유혹하였다. ● 그런데, 과연 '나'는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이고 '그(녀)'는 누구이고 '타자'는 또 무엇이었던가?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 '함께'에의 유혹이 애초에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일어난 것인지조차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애초에 왜 이런 프로젝트가 꿈꾸어지고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엄정순·양승무·정헌이_공간-비행_2002

우리는 분명 40대라는 삶의 시간대가 가져다 준 막연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한 난데없는 의심에서부터 어쨌든 여기까지 오기 위해 유보시켜야만 했던 것들에 대한 쓸데없는 미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망연자실한 방향감각.... 뭔가 이제 새롭게 나를 추스리고 다시 출발해야할 것만 같은데, 과연 재구성될 '나'가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불안. 공자께서 40에 불혹(不惑)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오히려 40대에 새삼스러운 의혹과 흔들림이 있었으며, 그것을 어떻게든 견디어 내야만 했다는 것을 토로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50대에 지천명(知天命)하여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긍정하고, 자신과 화해할 수 있을 때까지 40대 내내 의심스러웠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 '지금, 여기'에 이렇게 마치 타자처럼 머물러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나? 그 빛의 느낌으로 어쨌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였던 '예술'이란 진정 이 세계에 실존하는 목적지였던가? ● 우리 중의 화가는 자신의 꿈이자 권력으로서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꾸 "이제 날아가자"고 재촉하였고, 우리 중의 건축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서서 계속 현재의 시공간에서의 '나'의 '위치확인'부터 요청하였다. ● 우리 중의 글쓰는 이는 할 말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핑계로 '도서관 쥐'가 되어 모서리를 타고 경계선을 오락가락했다. '3'이란 숫자는 참으로 신비스러워서 우리 각자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다른 두 사람에 대해 스스로 소외되었다. '함께'란 희망사항은 해피엔딩 스토리가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주제였는지도 모르겠다. ● 애초에 우리는 같은 예술계 안에서 40대를 맞은, 그러나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해 온 세 사람의 생각과 경험, 상처와 고통, 꿈과 소망 등을 함께 나누고, 섞어보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렇게 하면 뭐가 나오나 보자"는 식으로 가볍게 다가갔지만 내면적으로는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변화를 원하는 시점에 있었고 또 뭔가를 돌파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기적인 이유에서 '함께'에 찬성하였는지도 모른다. 즐겁기만 할 것으로 예상했던 모든 과정은 실은 무척 힘이 들었다. 말로는 '함께 하자'고 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우리 세사람이 '함께' 한 이 전시가 말이나 희망사항에서 끝나지 않고 정말 실현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기심을 맞대면하면서도 '협상'과 '화해'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드시 '타협'만은 아닌,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소통에의 노력이 결국 가시적인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소박한 성취감을 느낀다. 다음에 우리 각자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우리 각자의 다음 발길에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엄정순·양승무·정헌이_시간-풍경_2002

현재 ● 우리에게 결론이 있었던가? 어쩌면 우리는 전시가 다 끝난 시점에서 다시 한번 소통을 시도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미술계의 거품같은 '불통의 담론'의 두께를 걷어내자고, 유치해지는 한이 있어도 정말 솔직한 미술을 해보자고 몇번이나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어려웠다. ● 제도의 의상을 벗어 던진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 줄이야! 우리는 수준(quality)을 요구하고, 습관적으로 이론을 끌어들이고, 유치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 자신을 자꾸자꾸 발견했다. 전시 오프닝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많은 미진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소통의 본질이 '사이', '틈새', '간극'이라면, 그래서 '불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소통'의 전제조건이라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지점에서 자신의 '현재'들을 할애하여 고통스럽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은 첫걸음일 뿐이다. ●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진정으로 만나는 경험, 그것이 바로 '현재'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종종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그냥 소멸해버린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어서, 현재에 몰두하고 싶어서 일련의 소통을 시도한다. 현재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던가, 구원일지도 모른다. 이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나의 꿈과 경험을 온전히 현전시켜서 현세를, 세상을 다시 한번 끌어안는 일이다. 그래서 매 순간이 의미있고 충만해지는 일이다. ● 그렇다면 이는 내가 '함께'를 통해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엄정순_양승무_정헌이

Vol.20020612a | The Presen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