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Ⅳ

네번째 미디어未來語 종합展   2002_0607 ▶︎ 2002_0617 / 일요일 휴관

릴레이1 / 박정선 조각 영상전 / 2002_0403 ▶︎2002_0409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책임기획_최원진

신갤러리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556-2번지 Tel. 043_264_5545

4년전부터 대전시민회관(관장 손인술) 기획전으로 진행된 『미디어未來語 - 8인의 릴레이』는 20여년 전부터 미술에 사용되어온 비디오매체와 기존의 매체작업과의 접합 가능성을 타진하려 기획된 전시이다. ● 올해 전시도 변함없이 8명의 작가가 릴레이경주 하듯 차례로 개인전을 하고 다시 모두 함께 모여서 co·de IV(미디어미래어의 종합전 명칭 - '함께 모임, 각자 흩어짐'이라는 의미)전을 갖는다. ● 전공분야가 각기 다른 여덟 명의 작가를 초청해 매체간의 물리적 한계와 고유한 성격, 나아가 새로운 언어로서의 융합을 시도하는 본 전시는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중부지역의 상징적인 영상 전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비디오아티스트가 아닌 기존의 매체작가들을 초대하여 기존 매체에 비디오작업을 접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는 실험성을 이 기획전은 의도하고 있다. ● 올해 다른 점은 그동안 대전작가에 국한 된 것에서 충청도 작가로 범위를 넓혔고 특히 종합전 장소를 청주(신갤러리)로 옮겨서 미디어미래어 영역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 국내외 비엔날레 등 많은 대형 전시에서 사진, 영상작업이 현대미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태이지만 지역미술계는 여전히 새로운 영상매체의 수용이 소극적인 상태인 점을 고려한다면 미디어미래어는 중부지역 미술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고 고려된다. ■ 최원진

릴레이2 / 박계훈 설치 영상전 / 2002_0410 ▶︎ 2002_0416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릴레이3 / 윤후영 설치 영상전 / 2002_0417 ▶︎ 2002_0423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4번째 미디어-未來語 종합전(CO·DE)에 부쳐 ● 1. "물이 반쯤 차있는가, 혹은 반쯤 비어있는가?" 비어있기도 하고 차있기도 한 물 컵을 사용한 질문은 무한히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극단적인 양자택일로 축소시켜버린다. 더구나 잘 알려진 그 질문의 답은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 답 속에 묶여있는 질문이 과연 질문인가? 그것은 단지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관점의 자기증명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사실 우린 그런 일에 너무도 익숙하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나서 오로지 실수를 유발코자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교묘하게 고안된 질문을 받는다. 어떤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전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무엇이든 알게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일에 동참함을 의미할 뿐이다. 상식이 많은 자, 질문이 없다. 우쭐대며 적용할 뿐. ● 실제론 정반대로 지어짐에도 도화지 위에서 집은 항상 지붕부터 그려진다. 습관? 관념?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동심을 발견하는가? 유치원만 가도 그들은 이미 관념 산수화를 그린다. 나무는 언제나 고동색의 꼬챙이에 초록색의 동그란 솜사탕이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에겐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의 동심이 없(었)다. 호기심을 품기도 전에 사물과 세상은 고도의 추상성을 내포한 질서이며, 수범하는 대신 그것에 대해 물음을 갖는 것은 쓸데없는 한눈팔기요 순수한 시간낭비. 오늘도 '자연 보호'를 주제로 엄마들과 학원 선생님들의 자애로운 보호 속에서 치뤄지는 전통적 사생대회에서 수백, 수천 명의 어린아이들은 훈련받은 대로 판에 박힌 '어린이다움'을 연출해 낸다. 일사불란한 자유 대한민국 카드섹션. ● 질문은 어긋남이다. 통념의 보호를 사양하는 정직한 고집이다. ● 빼앗긴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더 이상 초경험적 지식과 조절된 믿음에 의존하여 삶을 살아가는데 회의를 갖는 굼뜬 어른 아이들이 있다. 묶음으로 '파악'하기 보단 제각각의 모습으로 사물을 '음미'하게된 그들은 새로 깔린 보도블럭 사이사이에 불법 체류중인 노숙자 잡초들의 태연한 자태에 매료되기도 한다. ●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이 새삼스런 물음에 때때로 놀랍기마저 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음미하는 시간의 축적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다. 해답은 해체되고 새로움은 새로운 것에서가 아니라 다시 알(겪)게 되는 것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릴레이4 / 홍진원 영상전 / 2002_0424 ▶︎ 2002_0430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릴레이5 / 이갑재 회화전 / 2002_0501 ▶︎ 2002_0507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2. 올해로 네 번째로 계속되고 있는 미디어 미래어 전은 다빈치와 백남준에게 신세를 진다. ● 회화나 조각, 사진 등 각 참여작가의 본래 전공분야와 비디오 작업을 동시에 한 전시공간에 병치하기 때문이다. 1, 2회는 동일한 작가들로, 지난해와 올해엔 다른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애초엔 작가들 서로간의 오랜 교분에 기초한 일시적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전시였으나, 일회성으로 그치기에 아쉬운 점이 남아 여전히 지역 내의 젊은 작가들로 한정하여 구성원을 교체하며 몇 해를 거듭하게 된 바, 다양한 욕망과 이념들을 느슨하게 결속한 비빔밥 같은 실험은 흔들림을 안은 채 존속되어 왔다. 릴레이식 개인전이면서 동시에 단체전이기도 한 전시의 정체성과, 진행과정, 전시 형태를 둘러싸고 안팎으로부터 논란과 의견차이가 발생하였다. ● 해마다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동안 대전시민회관의 한 귀퉁이 전시장은 작가들의 순환 임대아지트로 변모했고, 공간과 전시 형태의 특성은 각각의 작품들에게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했다. 미디어 미래어 전에선 동영상과 조형작업을 서로 독립적으로, 혹은 유기적으로 적절하게 접목시키는 각자만의 방식이 가장 주목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예외 없는 비디오 프로젝터의 사용으로 침침한데다, 평소 관객들의 내왕마저 많지 않은 '썰렁한' 지하 공간은 냉담한 현실과 대면한 작가와 작품의 고독과 우울한 정조를 더하게 하였을 수도 있지만(물이 반밖에 없다), 동시에, 작품들로 하여금 내면적인 응축을 더하게 하여 일차적으로 참여 작가들간에 자신과 서로의 독특한 세계를 긴 시간 깊이 음미할 수 있는 반추와 도약의 계기를 제공하였다(반이나 남아 있다?). ● 의미를 덧붙이기에 과거는 너무 짧고, 미래는 정해진 바 없다. ● 그동안 미디어 미래어의 존속은 최초의 공동 기획자이자 참여작가였던 최원진의 개인적 열정과 노력에 의지한 바가 크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개성이 뚜렷한 작가들을 지속적이고 규격화된 틀 속에 규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바람직하지 않기도 할 것이다. 질문은 열려있다.

릴레이6 / 송병석 회화 영상전 / 2002_0508 ▶︎ 2002_0514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릴레이7 / 이인희 설치 영상전 / 2002_0515 ▶︎ 2002_0521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3. '모나리자'는 그림이기 이전에 '신비로운' 미소와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천재성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여야만 했다(뒤샹의 조롱은 우상파괴를 통해 교리 중심에서 매개자 중심으로 이동한 서양 종교사의 전통을 구현하는 듯 하다). 백남준은 일개 문화후진국에 불과했던 한국의 국위를 선양한 교포 국가대표 미술선수다(포지션은 비디오). 작품을 앞에 놓고 '백남준'이 '대표'하는 바를 먼저 인지한다.

릴레이8 / 홍균 사진 영상전 / 2002_0522 ▶︎ 2002_0528 / 대전시민회관 별관 지하전시실

4. 교과서에 실린 싯귀절들 사이사이에 깨알같이 따라붙는 주석들은 그 시인들이 '암호 해독 전문가'들의 도움 없인 이해될 수 없는 글을 쓰는 고결한 천재, 아니 사실은 바보임을 반대로 의미하는가? '물 컵'의 질문을 따라 해보자. 예술은 '파악'하는 것인가, '음미'하는 것인가? ■ 전상용

Vol.20020614b | 네번째 미디어未來語 종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