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의 미학

이종송 회화展   2002_0606 ▶︎ 2002_0620

이종송_움직이는 산-설악42_패널에 혼합재료_91×117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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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Central Daily News Gallery 43-31 36th St. Long Lsiand City. N.Y. 11101 Tel. 1_718_361_7700

먼저, 벽화 이야기를 하자. 잠시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를 떠올려보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성당의 벽이나 천장에 그린 성화(聖畵)를 떠올려도 좋다. 아니다. 멀리 유럽까지 갈 필요도 없다. 고구려 무용총과 강서대묘, 부여와 경주의 고분에 그려놓은 벽화를 떠올려보자.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조사당 벽화를 생각하면 더욱 좋겠다. 우리가 옛 벽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이 세상 모든 회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벽화를 외면하고 이종송 그림의 매력을 온전히 감상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종송_움직이는 산-묘향산07_패널에 혼합재료_53.3×34cm_2002

이종송은 90년대 중반 이후 흙벽화 기법을 일관되게 추구해오고 있다. 흙벽화 기법은 우리나라 전통 회화법 가운데 하나이다. 사찰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흙벽화 기법으로 불화를 그렸다. 그러나 서양의 프레스코에 비해 연구 자료와 기록이 부족하여 현대 회화에 적용하는 예는 거의 없었다. ● 이종송은 짐짓 외면해온, 그래서 역사 유적에서 겨우 볼 수 있었던 전통 흙벽화 기법을 연구하고 다시 해석하여 현대 회화에 어울리는 표현방법으로 부활시켜 놓았다. 그의 작업은 여간해서 보기 드문 독창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이종송의 작업을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고집스런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새로운 형식의 흙벽화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종송은 흙벽화 기법을 되살려 놓았지만 그렇다고 그림틀까지 전통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는 벽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벽 대신 나무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패널을 사용한다. 기법은 지극히 전통적이지만 이동이 가능한 그림판을 활용한다는 면에서 오히려 그림판의 구조는 서양의 프레스코와 비슷하다. 요즘으로 치면 그의 그림판은 일종의 캔버스이다. 그의 그림은 그러므로 동양의 기법과 서양의 구조, 즉 그림판이 만나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이다. ● 이종송은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얻는다. 나무 패널에 마대를 입히고, 여기에 황토, 백토, 석회와 석분, 모래 따위를 자연에서 얻은 접착제와 섞어 바른 다음, 흙이나 천년 안료, 또는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산과 소나무와 물과 바위와 구름을 그리는 것이다. 이종송은 그러므로 자연으로 자연을 그리는 화가이다.

이종송_움직이는 산-폭포21_패널에 혼합재료_118.5×73cm_2002

그의 그림에 나타는 풍경은 상상 속의 자연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 속에도 한국화의 기본 정신, 즉 진경산수화의 정신이 배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 속엔 리얼리즘 정신이 살아있다. 이종송의 그림에는 한국화의 맥이 흐르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관조의 응시로 대표되는 소극적인 의미의 고전적인 자연관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산수화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 움직이는 산. 제목부터 남다르다.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모든 그림에 한 가지 제목을 붙여오고 있다. 이제 움직이는 산이라는 제목은 제목이되 제목이 아니다. 제목 그 이상이다. 그것은 오히려 테마이다. ● 우리는 자연은 늘 조용하고 부드럽고 변화가 적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흔히들 자연은 멀리서 바라보며 감상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종송의 생각은 다르다. 이종송에게 자연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우리는 이제야 그가 고집스럽게 그림마다 같은 제목을 붙인 배경을 짐작하게 된다. 그림의 제목이 동시에 작품의 테마인 이유도 뒤늦게 알게 된다. ● 이종송은 자연의 본질, 즉 자연이 살아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부감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입체적으로 보이고, 산과 바위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부감법의 효과이다. 그가 바위와 나무의 질감을 극대화하고, 폭포의 아랫 부분을 문양화하여 치켜 올리고, 초록색과 푸른색을 즐겨 사용한 것도 사실은 자연의 생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일까. 폭포는 생동감이 넘치고, 바위는 힘이 느껴진다. 구름은 새의 날개짓처럼 경쾌하고, 가늘게 흐르는 물줄기에는 리듬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푸른 소나무를 보면서 멈춘 듯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느끼게 된다. ● 거듭 말하지만 이종송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이미지는 정중동이다. 조용하고 멈춘 듯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과 구름과, 바위와 나무. 우리는 이종송의 그림에서 비로소 살아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힘이 저 바위틈 소나무를 살리고, 들판에 풀을 돋게 하고, 계곡물을 흐르게 하고, 숲을 푸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종송의 그림을 통해 가슴 벅차게 깨닫는다. ● 다시 한번 말해보자. 자연은 살아있다. 그 자연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 유명종

Vol.20020617a | 이종송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