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상징

장치길 회화展   2002_0619 ▶︎ 2002_0625

장치길_여인별곡_명성황후_판넬에 혼합재료_162.2×122.5cm_2002

초대일시_2002_0619_수요일_06:30pm

경인미술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Tel. 02_733_4448 www.kyunginart.co.kr

장치길의 작품에서는 일관되게 나타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긍정하는 가운데 선과 색채로 일궈낸 텍스처와 패턴이다. 여기에서 전통적 가치라는 것은 우리 전통의 무속이나 신화, 또는 불교나 유교를 포함한 여러 질서들과 연관된 내용이거나, 우리 전통적 시방식(視方式)과 연관된 기호들이다. 한편 그를 낳아 길러준 통영, 남해바다의 정경을 그만의 색채와 형태로 복원하거나 기념비적으로 조망하는 것도 그의 관심사다. 이를 가리켜 장치길은 "나에게 풍경을 그리는 것은 실제의 그 무엇을 뛰어 넘어서 도솔천의 소망을 담고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꾸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하나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역설한 바 있는데 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장치길_세상속에서-수신_판넬에 혼합재료_45.5×38cm_2002

남해풍경 ● 장치길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의 무속이나 민속, 또는 신화와 같은 민족정체성과 연관되는 내용이나, 혹은 우리 전통의 시방식(視方式)과 연관된 이미지들이다. 무속만 하더라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써,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과 같이 원시종교적 요소나 음양오행사상이 있어 특히 우리 동북아사람들은 이를 절대시하며 신봉했다. 이는 일종의 철학이자 점성술, 즉 천문학으로써 고대 우리민족은 일월성신의 운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점이 장치길로 하여금 신화와 민속에 깊이 심취하게 만든 요인이었을 것이다. ● 이와 더불어 장치길 작품세계의 주된 내용을 형성하는 것이 그가 낳아서 자라고 그의 인성을 가꾸어준 고향의 정서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고향은 단순히 현대인의 시적 정서에 아첨하거나 인상파식으로 재현한 풍경화는 아니다. 장치길은 그가 포착한 대상, 즉 포구나 시골마을, 또는 남해의 푸른 바다와 구름 낀 하늘 등을 작가 특유의 프리즘으로 여과하여 화면에 담아낸다. 청색을 주조로 이의 보색인 붉은 색의 구획선과 함께 어우러진 화면은 서로의 연결성을 강조하며 한려수도를 특징적으로 요추하고 있다. 이때 그는 집이나 밭고랑, 들풀 등 개개의 생명체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형태와 색채로 재현하면서도, 이러한 대상들은 그의 직관에 의해 요추된 상태로 우리 앞에 제시됨으로써 경직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색채는 자연상태의 그것보다 생기롭고 경관은 수려하다. 언뜻 추상회화의 분방함이 화면의 기조를 이루는가 하면 화면 자체가 매재(媒材)와 어우러져 평면회화로서의 존재론적 타당성을 확보한다. 각각의 대상들은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듯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어느덧 화면 안에서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 이에 장치길은 유기적이면서도 힘찬 공간을 살려내기 위하여 대상을 세밀하게 나타내는 대신 강조와 생략, 변형과 왜곡의 방식으로 전형성을 만들어 내고, 상대적으로 약화된 리얼리티를 보강하기 위하여 그만의 독특한 구획선과 색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가 관조한 자연의 피조물들은 윤기 가득한 풍요로움과 고향 남해바다의 서정이 농축된 정감 있는 리얼리티가 병존하는 풍경 이상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장치길_바보상자_판넬에 혼합재료_36×28×16cm_2002

전통을 색채로 복원하기 ● 일연(一然)의 『三國遺事』권제3(卷第三)의「오대산의 오만 진신」을 보게되면, "백두산의 줄기가 뻗어내린 이 땅은 대(臺)마다 보살이 머무르고 계시므로 마땅히 청색(靑色) 방인 동대 북각 아래 관음방을 두어 원상(圓像)의 관음보살과 푸른 바탕에 그린 일만 관음상을 모시고, 적색(赤色) 방인 남대 남쪽에는 지장경을 두고, 원상 지장보살과 붉은 바탕에 그린 팔대보살을 수위로 한 일만 지장보살을 모시고…" 라는 구절이 있어 눈길을 끈다. 또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도 언급되었듯이 붉은색(丹)과 푸른색(靑)은 또한 한국 건축의장의 근간이기도 하다. ● 마찬가지로 장치길의 작업은 청색, 붉은 색, 노랑색을 근간으로 한 전통 오방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의 작업에는 전통에 대한 집요한 탐색과 이를 구체적 형식으로 재현해 내기 위한 작가적 고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통영 오광대」는 각각의 가면들과 범과 새, 기타 전통적 문양들을 조각보의 패턴 안에 작가 나름의 질서체계를 염두에 두고 배열하고 있다. 「여인별곡-꿈」이나,「여인별곡-나비의 꿈」역시 우리의 전통 문양이나 이미지들, 즉 산, 구름, 연꽃, 봉황, 호랑이, 나비 등이 서로 어우러져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 낱낱의 이미지가 서로 개별성을 갖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이루는 것은 공간의 효과적인 분할과 그의 색채감각이 이를 유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양화가 주는 감각적이고 생경한 색채가 물러가고 우리의 회벽에 그려진 불화나 단청의 색감이 어우러져 불교적이거나 무속적인 전통의 분위기를 풍겨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치길은 그의 개성적이고도 우리에게는 매우 감동적인 색감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러한 감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강렬한 오방색의 구사에서 얻어낸 한국 전통의 색채감각이고, 또 정중동(靜中動)의 감각에 가득찬 구성의 힘이다. 청색과 붉은색, 노랑과 남색, 흑색과 백색의 대비에서 오는 효과는 분명히 우리의 전통회화, 즉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 불화, 조선 민화, 아니면 무속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장치길의 그림에서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건강성을 느끼게 하는 힘찬 색채의 합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 특히 탈과 인동초, 꽃신, 나비, 물고기, 탑, 소나무 등 그가 선호하는 소재들은 작가가 부여한 일정한 형식으로 전형화되거나 축약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의 향토애와 역사관, 사상적 성격을 요약하는 서술적 형상에 유효한 방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다양성 안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우리 전통의 미감과 상통하는 부분이며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미로서, 그의 강렬한 개성을 엿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이경모

Vol.20020622b | 장치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