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기, 되돌아보기, 나아가기

이종빈 조각展   2002_0619 ▶︎ 2002_0703

이종빈_자소상_합성수지에 채색_32×96×26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종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2_0619_수요일_05: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멈추기 ; 예술지도 혹은 자기반성 ● 일반적으로 스케치나 마케트(marquette)는 본격적인 조각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자 작품의 형태는 물론 작업의 공정을 미리 예측하고 그 개념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위해 제작된다. 따라서 스케치나 마케트는 작품을 예고하는 전단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작품으로 구현할 때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으로 계획의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스케치나 마케트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작품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규모가 큰 작품의 경우 스케치나 마케트의 중요성은 그만큼 배가되는데, 이종빈은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발표했던 작품들을 축소하여 일종의 '예술지도'를 그리고 있다. 오래 전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로부터 기성품인 남자용 소변기인 「샘」, 「큰 유리」 등 자신의 대표작을 축소하여 작은 여행용가방에 담아놓은 적 있는데 그것은 뒤샹의 예술적 궤적이 압축된 보물창고이자 마술상자이며 또한 채집상자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반면에 이종빈이 자신의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다시 제작하여 일종의 족보나무(lineage tree)와도 같은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은 다분히 자기반성적이다.

이종빈_수영하는 사람-Ⅰ_철, 합성수지에 채색_91.5×150×90cm_2002

그는 넓은 수면 위를 외로이 헤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제작하기도 했다. 예술의 바다 위에서 헤엄치는 형국이라고 할까. 제법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사각형의 수면은 망망대해와도 같은 예술 그 자체는 물론 견고하고 육중하게 자리잡고 있는 예술의 제도를 은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주제로 만든 두 작품 모두 가장자리로부터 중심을 향해 헤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자신의 위치는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목표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철판의 매끈한 표면을 모노크롬으로 처리한 것에 비해 수면 위로 떠오른 자소상을 채색함으로써 자기존재가 분명하게 부각되는 이 작품들은 낭만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고독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확신이란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의 바다를 홀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은 다분히 작가의 나르시시즘을 반영하고 있다. ● 그러나 그의 자기반성적 태도는 자신을 예술의 중심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이를테면 누드상태로 제작된 자소상을 비스듬하게 공중에 매달아놓음으로써 위태롭고 불안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작가의 심리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나 학대의 표상이라기보다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자아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칠게 채색한 표면은 이런 점을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심리적 불안이나 긴장으로부터 예술지도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술지도란 인간이 자신의 혈통적 뿌리를 통해 자아정체성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과 상통한다. 한국인들의 심층무의식 속에 자기존재의 근거를 밝히는 증거물로 자리하고 있는 족보(族譜)가 남성중심적 계보를 정립하려는 가부장적 위계구조임에는 분명하지만 씨족의 시조(始祖)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혈통의 흐름을 정리해 놓은 도표를 통해 일가의 전통, 조상은 물론 그 줄기로부터 뻗어 나온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족보가 씨족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라면 그가 그려나가고 있는 예술지도는 그 스스로 창조자이자 연출가로서 꾸려왔던 이십여 년에 이르는 작업세계를 반성하고자 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이종빈_수영하는 사람-Ⅱ_철, 합성수지에 채색_87.5×90×90cm_2002

리얼리스트인 쿠르베(Gustave Courbet)는 예술가로서 칠 년간의 삶을 정리하는 알레고리로서 「아틀리에」란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그 작품 속에는 작가의 고향인 오르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보들레르나 프루동, 상드와 같은 지식인 그룹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는데 철저한 리얼리스트였던 쿠르베-그는 오만에 가까운 신념과 자신감으로 무장했던 19세기 프랑스 리얼리즘의 대표적 예술가였다-가 굳이 작품의 제목에 알레고리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자기예술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빈의 예술지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 지도를 그의 삶이 압축된 증거물로 받아들인다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축소된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뻗어나갈 가지를 예고하는 성장과정의 중간점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지향적인 반성은 그만큼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예술의 바다를 헤엄친다는 것은 반환점에서 다시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가는 그런 경주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듯 예술지도 또한 이미 발견된 대륙을 찾아 나서는 편안한 항로의 제시라기보다 알려지지 않은 땅을 찾아 나서는 모험을 위한 준비 즉, 일정을 확인하고 장비를 챙기며 출발을 기다리는 탐험가의 손에 쥐어진 일지와도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자기반성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이정표로 볼 수 있다.

이종빈_나는 아버지를 본다_합성수지에 채색 / 비디오 영상_135×200×150cm_2002

되돌아보기 ; 이산 ● 출발을 경쾌하게.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새로운 출발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이종빈에게 되돌아보는 삶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자전적 요소가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작가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각별히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가 있다. 필자로서도 이 글을 준비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 그는 분단이 낳은 이산의 역사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말 그대로 실향민이다. 각각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이 낯선 남한 땅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그들에게서 그가 태어났다. 하긴 이산가족의 수가 천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에게 이산이 그렇게 생소한 단어는 아닐지 모른다. ● 함경도 태생인 그의 아버지와 평안도 출신인 어머니는 피난민 신분으로 거제도에서 만나 부산으로 옮겨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딸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못했지만 분단의 고착이 점차 분명해지자 결국 각각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가슴에 묻고 결혼했다고 한다. 실향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성장하며 그들의 고단한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에게 권위의 상징이었던 아버지는 무서우면서도 원망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이 아버지를 모방하는 동일시 현상(identification)에 의해 부모의 비극 또한 심리적으로 상속되기 마련이다. 지금껏 이산에 대해 그 어떤 표현도 자제했던 그가 이 전시를 통해 아버지를 되돌아보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그야말로 왕진가방 하나만 달랑 손에 든 채 나머지 손으로 형을 이끌고 남하한 후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불렀다는 '타향살이'란 유행가요를 그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아버지가 타계한 뒤에야 장롱 속에 소중하게 보존되던 아버지의 유품들을 발견하고 새삼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의 잃어버린 삶의 한 부분을 되돌아보며 이종빈은 마침내 아버지의 모습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 아버지는 작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눈물처럼 아버지의 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산의 영상들(영상의 내용은 미국에 의사로 있는 형이 미국 시민권자로 몇해 전 북한을 방문하여 찍은 가족의 모습들이다), 그것은 작가가 마음으로 쓰는 개인사이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계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진혼곡이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 예술지도와 전혀 상관없는 이 작품은 그러나 작가의 의식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예술지도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작가로서의 궤적을 되돌아보고자 한다면 아버지의 얼굴을 크게 확대하여 제작하고 그 속에 영상을 투영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심층심리 속에 상흔(trauma)처럼 각인된 또 하나의 지도, 즉 자신의 가계도(家系圖)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예술지도나 헤엄이 내향성을 띤 자기검증의 연장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라고 한다면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상설치작업은 성장기의 우울한 추억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이해라는 일종의 화해를 시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대사의 비극을 상속받은 자손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아버지가 겪어온 박탈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 화해와 수용의 결단이 분단과 이산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또한 예술지도 이상의 자기반성이란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존재의 뿌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종빈_아트맵_100여개의 미니어쳐,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2

자기검증 또는 나아가기 ●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시점에선가 멈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모든 동작의 정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지도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듯이 아버지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단순히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자기검증이란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아가기 위한 숨고르기이다. 그 과정에서 지형을 익히고, 독도(讀圖)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속도의 완급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지금껏 발표해온 작품과 비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 작품들을 보며, 나로서는 이것이 또 하나의 출발을 위한 일시멈춤임을 깨닫는다. 다만 그 방향이 어느 쪽으로 향할 지에 대해 추측할 따름이지만 현실을 예사롭게 보아오지 않은 그의 자세나 태도로 보건대 일시멈춤이나 되돌아보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망망대해를 헤쳐나간다는 것, 그것은 예술의 바다 위에서 수영한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미 주어진 시간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수영하는 자소상을 예술가로서 이십 여년의 삶을 정리하는 알레고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최태만

Vol.20020623a | 이종빈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