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w

홍상곤 판화展   2002_0703 ▶︎ 2002_0709

홍상곤_Cow-autumn_에칭과 에쿼틴트_45.5×29cm_2002

초대일시_2002_0703_수요일_05:0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소의 이미지에 대한 소박한 에칭 ● 홍상곤의 전시는 소의 이미지에 대한 사색으로 향하게 한다. 봄이 오면 논과 밭을 일구고, 달구지로 짐을 나르며 우리네의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소. 주인을 위해 묵묵히 일하며, 어려울 적이나 경사스러운 날에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행복을 기원하는 소. ● 주인을 위해 코뚜레가 뚫리는 아픔을 겪으며, 무거운 멍에를 평생 짊어지면서도 소는 숙명과도 같은 자신의 길을 그렇게 간다. 그래서인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버리고 과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소의 이미지는 실루엣처럼 어느새 우리의 가슴에 각인 된다.

홍상곤_Cow-autumn_에칭과 에쿼틴트_40×32cm_2002

판화를 향한 그의 마음은 이러한 소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해서인가. 그는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오로지 소의 모습만 그리고 있다.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아니 멍에와 같이 그러한 자신의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1994년과 1995년의 소의 작품들에서 가느다란 다리와 위축된 몸통, 퀭한 눈동자와 처량한 듯한 소의 얼굴들과 코뚜레가 눈에 띈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애쿼틴트와 에칭의 기법으로 표현된 면과 선들은 혼자서 맞이해야 하는 삶에 대한 심리적인 위축과 자신의 길에 대한 중압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물보다 크게 과장된 코뚜레는 어미 품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그의 소심한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분개인지, 아니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인지 1996년과 1997년의 작품들에서 성난 모습의 소의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작품『검은 소(1997)』에서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소의 머리와 눈은 사나움이 깃들여 있으며,『검은 소(1996)』에서 서로 몸싸움을 하는 두 마리의 소는 투쟁적인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코뚜레는 점차 실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축소되거나 희미하게 묘사되고, 쇠뿔의 이미지와 투쟁적인 눈빛을 한 소의 모습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상곤_Cow_드라이포인트_100×60cm_2002

1998년의 작품『Cow』에서 이중화면의 분할로 그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하단 화면의 소의 모습은 이전의 작품과는 달리 전체적인 소의 윤곽을 뚜렷하게 묘사하고, 힘줄과 머리와 코뚜레와 쇠뿔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하여 분노하거나 심리적인 위축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신과 대면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상단 화면의 핏줄과 같은 추상적인 검붉은 색채의 이미지는 마음속으로 격분하고 있는 이중적인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 ● 고향의 품인 통영으로 돌아가 치솟아오는 자신의 혈기를 부식되는 아연판과 동판과 같이 삭이었는지, 공백기를 거쳐 2001년과 2002년의 작품에서 소의 이미지에서 발랄함과 여유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Cow-run(2001)』에서 몸통을, 애쿼틴트로 여백의 부분을 묘사하며, 『Cow-run(2002)』에서 반대로 애쿼틴트로 몸통을, 에칭으로 여백의 화면을 채우며 어린아이가 스케치 듯한 가벼운 모습으로 송아지와 같이 자유분방하게 뛰노는 소의 모습을 그리며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쾌활한 심리상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작품『Cow-look(2002)』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소의 전체적인 윤곽을 부드러운 에칭으로 그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여유로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무언가 외롭고 쓸쓸한 정감이 그의 작품 속에 쓰며 있다.『Cow-summer(2002)』과『Cow- autumn(2002)』는 1998년의 작품과 같이 이중화면의 자신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작품들에서 하단의 그림들은 소의 전체적인 윤곽과 주변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이전 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에칭과 애쿼틴트로 찍어낸 판화의 느낌보다는 붓터치로 그린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보다 정밀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Cow-autumn(2002)』의 하단 화면에서 다리 근육의 역동적인 모습의 세밀한 터치와 입체적인 땅의 질감은 이러한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Cow-winter(2002)』에서 소의 이미지는 둥그런 공과 별 모양의 이미지가 삼각형의 구도로 구성되어 단일 화면으로 한 겨울밤의 외롭고 적막한 느낌을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다.

홍상곤_Cow_에칭과 에쿼틴트_60×30cm_2002

이렇듯 소의 이미지들은 그에게 일련의 자화상들인 것이다. 때로는 소심한 모습으로, 때로는 분노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발랄한 것 같지만 외로움과 적막 속에 자신의 감정을 삭이는 그의 작품에서 세련된 조형적인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보다 순박한 고향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그의 순박함은 단 한 장의 원본만을 찍어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여러 장을 찍어내어 인쇄에 의한 우연한 효과를 갖는 기존의 판화 작품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의도한 하나의 원본만을 찍어내어 판화에서 회화가 지닌 예술성을 추구하는 판화작가들과 동참하고 있다. ● 순박한 그의 조형적인 선들에서 느껴지듯이 그의 이번 첫 개인전은 작가로서의 화려한 데뷔를 꿈꾸기보다는 판화와 함께 할 자신의 삶, 그것을 통해 바라볼 세상으로의 첫걸음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 조관용

Vol.20020629b | 홍상곤 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