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토리움 scriptorium

이지연 회화展   2002_1002 ▶︎ 2002_1008

이지연_호금전, 협녀, 경공술_캔버스에 혼합재료_70.5×99.5cm_2002

초대일시_2002_1002_수요일_05:3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환상과 여정의 알로토피아(allotopia) ● 1. 서구의 중세(中世)적 이미지에 대한 이지연의 애착은 각별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반복처럼, 중세문화에 출처를 둔 이미지의 편린들은 그의 그림 속에 꾸준히 출몰하고 또 서식한다. 고성(古城)과 기사(騎士)와 세밀화 풍의 장식들, 모험담과 기사문학의 단골손님인 검(劍)과 왕관, 괴물 등속 등. 이지연이 늘어놓는 세목들은 신화와 전설, 우화와 기담(奇談)류가 들려주던 아득하지만 낯익은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 중세적 클리셰(clich )들은 성장기의 문화적 경험을 자극해서는 새삼 상상과 판타지의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유년기 독서취향이며 시각적 체험들에 크게 빚지고 있을 그의 그림이 탐닉하는 것이, 그러므로 중세문학의 로망스(romance)적 공간이리란 짐작은 그리 무리한 얘기가 아닐 것이다. 현재와는 다른 층위의 시·공을 배경으로, 기이하고 가상적이며 호기심을 돋구는 일화들로 가득한 로망스의 전형은 실상 이지연의 그림들에 의해 거듭 연상되는 세계이다. 우열과 앞뒤의 전제가 무색하도록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부각됨은 물론, 인물과 동·식물의 형상들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산재하는 그의 그림은 고금을 넘나들고 고정된 조망을 가볍게 비켜 가 버린다. 완만하고 무난하기 보다는 의외성과 돌출이 두드러지는 그 전형은 다름아니라 그의 작업의 조형적 특성인 셈이다. 예의 그의 그림들은 즉흥과 우연에 가까운 화면구획과 배경처리, 산점투시(散點透視)라 부를 만한 서로 다른 시점의 공존을 특징으로, 크고 작은 형상과 색면들이 불현듯 충돌하거나 느슨하게 연계되어 있다. 울긋불긋 등장하는 다양한 형상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이웃한 이미지들의 사연과 인상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간섭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체질을 고스란히 간직한 필선과 선묘가 화면의 생기를 북돋는다. 이미지를 채집하고 나열한 듯 싶은 그러한 방식은 자유로움과 환상성을 강조하는 데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 이지연의 화면은 우의적이고 상징적인 느낌의 소재들이 무리없이 어우러지고, '마술적 변화가 언제든 가능한(J.Childers/G.Hentzi)' 로망스적 세계에 한번 더 다가선다.

이지연_스크립토리움(scriptorium)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02
이지연_붓의 탄생Ⅱ_종이에 혼합재료_34.5×55cm_2001

2.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은 중세 수도원의 필사본(筆寫本) 전용 제작소를 일컫는 용어이다. 종교적 소명과 인문학적 유산을 보전하는 사명감으로 늘상 그 스크립토리움을 지키고 앉아, 주어진 텍스트를 옮겨적고 꾸미던 사람들을 우리는 또한 필사자 혹은 채식사라고 부른다. 출판 인쇄술의 시대 이전에 그들은 책의 내용을 보존하는 한편으로 그것의 내용을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명적인 삽화를 그리는가 하면, 표지와 글자며 속지의 테두리를 솜씨좋게 장식하는 일에 복무했었다. 그리고 필사와 채식, 세밀화(m- iniature)의 제작이 일종의 복제행위였기에 그들은 전승되어 온 일정한 체계를 따랐으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필사의 과정은 당연히 개인적인 편차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개의 필사본이 각기 다른 필사자와 미니어쳐 화가의 손을 거치면서 당연히 개인차가 반영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이본(異本)과 '필사본 예술품'들이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엄격한 전통적 규범(canons) 과 장인적 규율에도 불구하고, 필사된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쇄신과 변형을 자생적으로 거듭하는 조형의 생리가 그 역시 적용된 예일 것이다. 더욱이 그 탄생의 내력에는 나름의 변형과 편집, 주석을 감행한 필사자들의 예술가적 개성과 창조가 분명 중요한 인자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의 부제이기도 한, 작품 「스크립토리움」의 면모는 어떠한가. 화면의 하단에는 작은 창(窓)처럼 생긴 공간 안에 인물의 얼굴과 펜을 쥔 손이 그려져 있다. 그림 전체의 크기와 암반 모양새의 붉고 큼직한 덩어리 너비에 비하면 그곳은 협소한 공간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얼굴과 손의 묘사 정도와 창틀마냥 둘린 장식의 배려로 볼 때, 인물과 창은 무척이나 공들여 표현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을 상기해 본다면, 그 인물은 좁은 방 안에서 필사의 작업을 행하는 적요(寂廖)한 필사자를 연상시킨다. 이지연이 스크립토리움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면, 그가 주목하는 바가 결국, 필사자-예술가일 것이라는 추측은 개연성 있는 연결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자그마한 그 인물은 「켈즈의 서-틀짜기」와 「붓의 탄생 I, II」, 「새벽을 위한 일러스트」 등에 재차 등장하는 소녀의 모습들과 유사한 생김새를 보임으로써, 그가 작가의 자화상이거나 분신이기 쉽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좁은 틀 안의 인물이 스크립토리움의 필사자일 수 있다면 그는 곧 개성적 창조를 수행한 예술가의 초상이자 이지연이 희망하는 작가적 초상일 것이라는 짐작이 뒤를 따른다. 그런데 왜 굳이 필사자였을까?

이지연_켈즈의 서-틀짜기_캔버스에 혼합재료_70.5×62.5cm_2001

3. 잘 알려진대로 중세적 영웅담과 모험담의 주인공은 왕관과 성배와 보검 등과 같은 그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쫓아서 낯선 여정에 오른다. 그들은 예견되거나 예측불가한 위험을 대면하고 극복해서는, 마침내 성취와 성장을 이루는 편력과 순례의 과정을 체현해 보인다. 자기의 외부, 자아의 경계 너머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까닭에 영웅의 여행은 추적과 탐색으로 은유되는 통과의례의 여정이 된다. 또한 그 여정은 상상과 신비로 채색되고 의외성과 놀라움으로 점철됨으로써, 실제로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한다. 환상성을 추구하고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알로토피아(allotopia)적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 그리고 자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웅의 그 행적은 예술가적 삶의 도정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하다. 스스로에게는 부재하는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성의 와중에 방류하는 영웅의 특성은 예술가적 개성에 조응한다. 그래서인지 (아쉽게도 도록 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느린 삶-척박한 땅」과 「숲-예술가/作人」 등의 그림에서 이지연은 여정 중에 있는 기사의 옆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오버랩했었고, 연이어 그 모습은 「스크립토리움」의 예술가 얼굴을 비롯한 그밖의 작품들에서 변주되었다. 세상과 마주 선 기사-영웅이 책과 대좌한 필사자-예술가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작가의 신원과 창조행위에 대한 이지연의 이해가 진술된 결과처럼 보인다. 세계를 책과 그림으로 본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살려, 해석의 욕망과 의지를 발휘하는 행위에 속한다. 해석은 창조의 질료가 될 것이며, 중세의 필사자가 만들어 냈던 숱한 변형과 이본들은 창조의 증거가 될 것이다. ● 하지만 그가 그린 필사자/예술가의 면모는 어딘가 위축되어 있다. 양식화된 규율과 법칙의 엄정한 음성이 그들의 소담하고 내밀한 작업의 어깨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들은 비좁은 창 속에 은거하고, 후광과도 같은 광륜(光輪)을 두르고도 짐짓 시선을 피하며, 아직껏 앳된 모습으로 붓을 든다. 활달하고 당당한 기세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주변을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는 커다란 동물들의 형상이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지연의 진술을 빌리자면 동물의 머리는 다른 존재로의 변신을 꾀하는 '가면'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원시성과 힘'을 상징하고 '공포감'을 유도하는 장치이지만, 무엇보다 '타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픈 초월의 욕망을 내포한다. 이러한 기능은 어찌보면 중세 모험담 속의 괴물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동물의 이미지는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되었을 모종의 '억압(repression, S.Freud)' 심리를 노출한다. 분명한 것은 소극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동물에 대비됨과 함께 동물의 현현은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것은 필경 그림 속 인물/예술가의 움츠러든 심경과 애틋한 꿈이며 이지연이 현재까지 가늠하는 예술가/작가의 모습이다. 장서에 에워싸여 독특하나 가녀린 목소리의 개성을 길어올리는 필사자로부터 굳이 예술가의 초상을 읽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이 때문이다. 이지연의 그림들은 매혹적인 환상의 형식과 내용으로 전하는 마음의 고백이자 그가 고심하는 현실의 알레고리이다. ■ 황재연

Vol.20021002a | 이지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