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김성복 조각展   2002_0925 ▶︎ 2002_1015

김성복_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_보령오석_235×225×120cm_2002

초대일시_2002_1002_수요일_05:00pm

세종문화회관 데크프라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777

김성복의 이번 전시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는 한편으로는 물질주의로 가득한 현대의 경쟁사회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쾌락을 비유적으로 암시하여 그 허망함을 고발하며, 또 한편으로 그 물질주의에 대항해 우리가 자각해야할 인간의 근원적인 정신, 작가의 어린 시절의 삶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우리 문화에 내재한 소박한 인간성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展은 작가의 삶과 시선으로 신화의 동물, 그리고 뱀과 개구리, 물고기, 그리고 맥주병의 상징물이나, 인물 군상의 조형을 통해 작가의 내면의 심리를 표현하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한 인물의 조형이나, 맥주병 위를 달리거나, 기어오르는 인물의 조형과 질감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심리태도를 읽을 수가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거품이 일고 있는 맥주병 위를 달리는 작품"과 또는 "맥주병 위를 기어오르는 작품"은 물질주의가 제공하는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을 묘사하고 있다. 보령 오석으로 조각된 거품이 일고 있는 맥주는 산업화의 물결을 주도한 물질 문명을 상징하는 공장의 굴뚝을 연상시키며, 그 연기만을 바라보고 달리거나, 기어오르는 인물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육체의 안락함만을, 감각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령 오석의 독특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매끄럽게 조각된 맥주병의 표면은 그 인물들이 결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에는 불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김성복_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_보령오석_185×155×75cm_2002

"하늘을 나는 인물상"은 이와 달리 이중적인 알레고리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맥주병의 작품들과 같이 물질주의의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을 암시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작품「불확실한 위안, 2000」에서 보여주듯이 욕망의 상징인 뱀의 형상과 정면을 무심하게 관조하는 마애삼존 불상의 조형을 통하여 육체의 욕망을 누르고 이상적인 세계로 향하는 모습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인물상으로 이해되기에는 얼굴의 형상과 온몸은 잔뜩 긴장된 형태를 띠고 있다. ● "달리는 인물상" 역시 저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달리는 모습에서 "하늘을 나는 인물상"과 같이 이중적인 알레고리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은 찌그러지고 희미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그 바람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굳게 내딛고자 하는 발은 퉁퉁 부어 있다. 온몸의 모공이 곤두서는 조각의 질감에서 이 인물의 심리적인 상황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성복_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_보령오석_160×55×37cm_2002

물질적인 쾌락을 쫓는 인간의 정신이 결국 회귀해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작가는 작품「박애, 1989」, 「불확실한 위안-신화, 1995」, 「불확실한 위안-생, 1996」, 「불확실한 위안, 2000」의 작품들에서는 조각의 조형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작품 「박애, 1989」에서 가족의 유대를 통해, 「불확실한-신화, 1995」에서 신화 속의 동물을 통해, 「불확실한 위안-생, 1996」은 석탑의 상징을 통해, 「불확실한 위안, 2000」은 불상의 상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깨닫지 못한 평범한 인간이 물질적인 쾌락을 억제하고 신화 속의 동물이나, 석탑이나, 불상의 전하는 관념적인 이상세계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세계이다. 차라리 이번 전시의 작품들의 조형에서 보듯이 작가는 물질적인 쾌락으로 치달아 인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성복_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_보령오석_215×65×60cm_2002

그러나 작가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조형적인 형태를 통해 드러내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조각 재료와 질감으로 뿌리깊이 내재해 있는 자신의 정신적인 토대를 그 안에 내재하고 있다. 작품「불확실안 위안, 1997」에서 표현된 주위에 널려 있는 자연석과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떠올리는 충남의 보령 오석의 사용에서 그 의미를 읽을 수가 있다. ● 자연석을 이용해 조각 작품을 제작한 시기는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이 아마도 작가 초년기에 왕성한 창작 욕구를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하였을 것이다. 그때 작가는 자연에 널부러져 있는 돌멩이도 작품에 이용될 수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삶의 고통에서 주위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의 다양한 표정을 담았을 것이다. 보령 오석은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석조 재료로서 작가에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숨결을 담고 있는 것이다. 들판과 숲이 우거진 고향의 자연은 작가에게 있어서 조요한의 『한국미의 조명』이란 구절에서 보듯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활 터전인 동시에 자양의 공급처이고, 그것은 만물이 돌아가야 할 고향"인 것이다.

김성복_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_보령오석_2002

또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인상으로 느껴지는 곰보 자국을 낸 것과 같은 조각의 질감과 두리뭉실한 체형은 서구 조각의 기원이 되는 그리이스 조각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몸매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못생긴 조각의 질감과 체형의 아름다움은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은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장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 희기만 한 빛, 여기에는 흰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히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한 진국 약주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이조자기의 세계이며, 이조 항아리의 예술이다."라고 한국인의 면면히 흐르는 보편적인 정서를 설명한 최순우의 구절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 분청사기의 꾸밈없는 자태처럼 「아름다움을 구하면 아름다움을 얻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구하지 않아야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조요한의 「한국미의 조명」의 구절처럼 김성복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조형성에서보다는 돌의 질감으로부터 묻어 나오는 인간의 따뜻한 온정에서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을 구현한 은사인 전뢰진의 석조 정신을 이어받아 소박하면서도 솔직하고 투박한 정감으로 자신의 삶의 모습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드러나지 않는 조각의 질감과 체형으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 조관용

Vol.20021002b | 김성복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