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눈 : Another Way of Seeing

제4회 한일시각장애학생 작품교류展   2002_1011 ▶︎ 2002_1130 / 일요일 휴관

이상지_장애우를 업고가는 사람_점토_12세/약시

초대일시_2001_1011_금요일_04:00pm

심포지움_인간과 예술-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선 소통 2002_1012_토요일_02:00~5:00pm_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시청각실 일본에서의 시각장애인 예술활동_하루에 무라야마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교육_양경희 장애관람자를 위한 미술관의 교육활동_민병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1-1번지 Tel. 02_3277_3152

『우리들의 눈 : Another Way of Seeing』전은 1998년 금산갤러리의 첫 전시 이후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올해에는 20여년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활동과 전시를 기획해온 동경의 톰갤러리(Tom Gallery)의 협력으로 일본의 시각장애학생들이 창작한 톰갤러리의 소장품과 국내 시각장애학교 학생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일본의 작품은 1950년대 코베시립맹학교, 1960년대 오키나와 맹학교 학생들의 작품과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최근작들이며, 국내의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지도 아래 충주성모학교, 서울맹학교, 한빛맹학교의 학생들이 2002년 한해 동안 완성한 것이다. ● 이 전시는 'Another Way of Seeing'이라는 제목 그대로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냄새, 소리, 맛, 촉각 등의 감각들을 사용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풍요롭고 살아있는 공감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세계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바라본 일상,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동시대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시마다 키요에_밤의 매_점토_14세/전맹

우리 모두의 눈과 손 ● 이 전시의 타이틀, '우리들의 눈'에는 두 가지 사항이 전제되어 있다. 우선, '우리들'은 시각장애인들, 즉 시각이 있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의미한다. 또한 '눈'이라는 말은 미술이 '시각을 매개로 한 예술'이라는 개념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제목의 자간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소수집단이 비장애인인 다수가 생각하는 미술을 다른 방식으로 수행한다" 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시각이 있는 다수의 입장에서 붙여진 타이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속에 힘의 위계가 스며들어 있음을, 평등을 지향하는 어휘에도 이미 불평등이 전제되어 있음을 목격한다. 그렇다고 비장애인들의 작품을 '우리들의 손'이라고 하여 전시한다면 그 위계가 무너지는 것일까? 그것은 그 힘의 구조를 역전시켜 보려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 애초부터 그 위계를 벗어난 미술, 진정 민주적인 미술이 있을 수 있다면 또는 꿈이라도 꿀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이의 입장에서, 다시 말해 장애인의 입장에서도,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도 미술인' 어떤 것일 것이다. 이런 미술의 가능성은 특정한 실천적 방법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미술의 근본에 내재해 있다.

이은미_도전_점토_18세/약시
이상지_비행기로 시작하여 물고기가 되었다_철사, 스폰지_12세/약시

미술이란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자기표현인가, 남과의 소통인가? 아마도 문인화가들이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전자 편에, 기록화가들이나 리얼리스트들은 후자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이들은 쉽게 한 쪽을 택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표현은 남을 향해 있는 것이고 남과의 소통은 자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술 행위란 그 행위의 주체로부터 오는 것이면서 항상 다른 이들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부터 우리 모두가 같이 하는 것이다. 예술의 민주화는 목표라기보다 그 본질인 셈이다. ● 미술은 시각을 매개로 하는가? 촉각 등 다른 감각을 매개로 하는가? 대체로 미술은 시각예술로 일컬어져 왔으며, 따라서 주로 촉각(또는 청각이나 후각)을 매개로 한 시각장애인들의 작업은 주변의 미술로 소외되어 왔다. 시각과 촉각은 다르면서도 같다. 촉각은 자신과 세계의 닿음으로부터 기인하며, 시각은 세계와의 일정한 거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옳게 보았듯이, 우리는 세계 가운데 있으면서 또한 그 세계를 본다. 보는 행위 속에는 촉각적 경험이 짜여 있고 촉각은 시각적으로 형상화된다. 따라서 정상 시각의 화가가 그린 그림에서도 질감이 느껴지고 시각장애인들의 손 작업 또한 '보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들과 같은 시각장애인의 촉각 뿐 아니라 그들과 다른 비장애인의 시각을 예견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또 다른 예술의 형태를 제안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작업과 함께 예술이라는 큰 범주를 이룬다.

권유진_선풍기_철사_11세/전맹
니노미야 카오리_자유롭게 난다면_종이, 철사_15세/약시

이렇게, 예술이란 나의 발현인 동시에 남과의 나눔이며, 그 나눔의 가능성은 세계에 대한 각기 다른 경험들을 묶어 주는 공감각적 상상력에 있다는 것, 이것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이 전시의 의의일 것이다. 작품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을 지도하고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 그리고 이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다른 감각들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함께 하는 예술의 아름다움이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서로에게서 자기 속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은 손으로 시각을 더듬고 비장애인은 눈으로 촉각을 볼 것이다. '우리들의 눈'은 '우리 모두의 눈과 손'으로 확장될 것이다. ■ 윤난지

Vol.20021008a | 제4회 우리들의 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