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관람자의 복구

이계원展   2002_1018 ▶︎ 2002_1107

이계원_AN EDITION_캔버스와 나무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01

초대일시_2002_1018_금요일_05:00pm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이 전시회는 1999년 이후 이계원이 제작해온 「동질이형」연작(Allotropism Series) 중 몇몇 버전들(versions)로 구성되고 전문 미술가로서 예술적 기획을 펼친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요약한다. 이 변화는 미술가가 미국으로 가기 직전인 1996년 서울에서의 개인전을 포함하고 그 이전에 발표된 그의 회화적 특징들과 대조하는 것에 유래한다. 과거 이계원의 회화는 그 표면을 구성하는 개별요소들이 다양해 보인 반면 최근의 것은 얼핏 단순해 보일 법하고, 과거의 표면에는 칠의 속성들(properties)이 우세한 반면 최근의 것은 제작자의 제스처(gesture)가 거의 노출되지 않고 단순한 것으로 보일 법하다. 무엇보다 현대회화의 전통적 포맷(format)에 개의치 않고 화랑의 벽면으로부터 돌출되는 방식의 채용은 가장 큰 변화로 비칠 것이다. 나는 이들 변화들 속에서 유지되는 이계원 회화공간의 일관된 변형(transformation)의 맥락에 주목한다.

이계원_FOLDING RED PLANE_나무에 아크릴채색_20×110×6cm_2001

「동질이형」연작은 서로 상반된 속성의 개별 요소들이 동일한 포맷에 한꺼번에 제시되고 그에 따른 순차적 변화의 시도들로 진행된 아홉 가지의 버전들로 구성된다. 그것들 중 "원근법"버전에서 환각(illusion)을 야기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할 원근법이 그 자체 뚜렷한 실체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서로 깊이를 달리하는 평면이 한 공간에 동시에 제시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관람자는 자신의 보는 방식을 제고하게 되고 그 동안 잊었던, 그리고 원근법의 관습에 따라 놓쳐버렸던 거리와 깊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복구해 낸다. 이는 바로 이계원의 매체가 새로운 관람자의 창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계원_FRATERNAL TWINS_나무에 아크릴채색_31×15×8.5cm×2_2001

이 연작을 구성하는 또 다른 시도인 "동일면적"버전을 구성하는 두 개의 사각형들은 얼핏 서로 다른 속성으로 판독되지만 그것들의 크기는 동일한 산술적 면적이다. 이는 동일 대상이 보여지는 경로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이해됨을 확인시키고 그 대상이 실제인지 아니면 지각된 사건이 실제인지 하는 선택국면의 심각한 교란을 발생시킨다. 심지어 이 시도로부터 응용된 "동일면적 변형"버전에서 두 개의 형태들 중 칠된 표면은 목재의 물리적 속성이 고스란히 노출된 두께에 맞닿아 있어 그 교란을 증폭시킨다. 여기서 상반된 개별 요소들은 이계원의 매체 안에서 조화로운 통합이나 균형 잡힌 구성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교란과 차이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듯하다.

이계원_A ROLE_캔버스와 나무에 아크릴채색_90×120cm_2002

원근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리고 교란을 통한 시각의 인식론적 문제제기는 다양한 개별 단위의 칠들로 구성된 과거의 화면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으로 가기 전 이계원의 화면은 시간과 상황 그리고 기법을 달리하는 칠된 조각들이 계획되지 않은 모습으로 한 캔버스에 한꺼번에 부착되었다. 여기서 서로 다른 시각적 속성들의 충돌은 관람자에게 다양한 음향을 전한다. 1980년대에 대학에서 훈련받고 1990년대에 전문 미술가로서 자신의 엔터프라이징(enterprising)을 펼친 세대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예술적 환경에서 극단적 선택국면이 자신 앞에 제시된 것에 대한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 그 딜레마(dilemma)는 민중미술에서 보는 것처럼 미술이 현실을 그대로 대신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시각 형식 자체의 질서를 탐구함으로써 자유와 이상적 변화를 미술의 내부에서 만족할 것이라는 당위론 사이의 선택 문제였다. 과거 이계원의 화면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음향은 수업기를 지나면서 경험된 단선적 노선의 논리에 대한 미술가의 반응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그의 화면은 서로 상이한 개별 요소들 간의 충돌을 한 화면에서 이룩했음에도 여전히 형상과 배경의 관계에 의존된 화면 중심적 구성이고, 조화나 균형 그리고 비례에 대한 눈초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알레고리(allegory)를 갖는 것으로도 보인다. 반면 최근 그의 매체는 개별 요소들간의 구성에 대한 서술적 통제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관람자를 뚜렷하게 복구해 보이고 있다.

이계원_PROOF_캔버스와 나무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02

관람자는 매체 앞에 서서 그것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지각한 정보와 자신의 과거간의 충돌을 쉼 없이 경험하는 사람이다. 이는 방관자가 삶의 습관적 기능으로 사물을 대하거나 지나치는 것과 구별된다. 이계원의 매체 외관에서 발생하는 교란은 결국 관람자의 의식으로 통합될 것이다. 이 관람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자나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의 시청자가 삶의 기능을 포기한 채 몰입하는 사람들과도 구별된다. 나는 여기서 회화공간의 가능성과 디지털 매체 시대에 회화가 포기되지 않고 살아 남을 가능성을 확인한다. ■ 이희영

Vol.20021015a | 이계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