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VE IMAGE

방혜영展   2002_1016 ▶︎ 2002_1022

방혜영_판넬에 혼합재료_욕망이 지난 자리_30×30cm_2000

초대일시_2002_1016_수요일_06: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www.galleryfish.com

시각의 환영|幻影 ● 어릴 적에 일본에서 지내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겪은 기억의 편린들 때문인가. 방혜영은 할말을 다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뚱한 몸짓과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마치 주위를 서성이는 이방인 같아 보였다. 미술관 개관 행사 일로 통역을 부탁했을 때 옆에서 본 그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나이든 분들을 모시며 통역을 하는 자리가 젊은 혈기에는 아직 어려운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부탁하여 거절 못하고 마지못해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인지. 그 당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들이 미술관의 일과 행사에 대해 자신들의 불만을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할 일만 하고 그렇게 떠났다.

방혜영_순간들_판넬에 혼합재료_30×30cm_1999

다시 그를 만난 것은 봄이 오는 길목에 오후 햇살이 창가로 부서지는 버스 안에서였다. 교수님의 호출로 통역을 하러 학교에 간다고 하였다.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헤어지고 난 뒤에 미술관에서 조심스럽게 통역과 안내를 하며 부유하는 듯한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전시한다고 작품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작품들은 합판 위에 노끈으로 한결같이 기하학적인 원의 모양을 만들어 둥그렇게 말아 본드를 칠하고 그 위에 색칠을 하였다. ● 초등학교 교과서에 본 듯한 하늘의 천체 조감도 같은 작품도 있고, 하얀 백사장 위에 둥그렇게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작품도 있고, 지문(指紋)과 같은 작품도 있고,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케 하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의도가 가슴에 잘 와 닿지 않아 물어 보았다. 그는 "바람 부는 대지 위에 서 있는 나무의 형상을 연상시키기 위해 그 흔적인 나이테의 모양을 재현"시킨다고 하였다. 순간 어리둥절하였다. 몇몇 작품들은 나무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나이테와 같지만, 많은 작품들이 상상력을 촉발한다하여도 나이테를 연상시키기에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전시 테마도 아직 정하지 않았고,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 그런지 작품에 대한 설명도 흐릿하여 작품에 대한 느낌이 더 혼동스럽게 느껴졌다.

방혜영_지문_판넬에 혼합재료_36×50cm_2002

그래서 몇 칠 후에 다시 만나 차분히 전시 테마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전시인데 혹시 겉도는 것은 아닌지. 며칠 후에 작업실에서 만났더니 자신이 정리한 글이라고 하여 종이를 건네주었다. 건네준 종이에는 "月, 星 ...."이라고 하여 한문 단어 몇 자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인상과 종이에 적은 것을 정리하여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 존재의 흔적을 더듬으면 그 기원은 하나이고 기하학적인 원으로 그 흔적들의 기원을 표현"하려고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렇다고 하였다.

방혜영_기하학적 원-관계_판넬에 혼합재료_150×150cm_2002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기하학적인 원을 둘러싼 작품 속의 색채는 그의 감정의 기복을 보여주는 듯 작품마다 적색과 황금빛과 청색 등 다양하였다. 그리고 가스통 바슐라르가 "촛불의 미학"에서 이야기하듯이 타 죽을 줄 모르고 불빛에 몸을 던지는 나방과 같이 그 화려한 세계로 유혹을 받으며 나아가고자 하는 소녀의 마음이 대부분의 작품 속에 기하학적인 원과 색채 위로 바인더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이야기하고 자신의 작품과 연관 있다는 팜플렛을 하나를 건네 받았다. ● 그 팜플렛은 "캔버스와 물감을 파기하고 재료가 지닌 속성을 드러내어" 자신의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즉 조각에서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추구하는 기법을 이용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재료는 우리의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사물이 지닌 그 자체의 아름다운 성질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사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작가 자신과 기존의 편견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방혜영_시간의 흐름_판넬에 혼합재료_122×200cm_1999

그런데 캔버스 천을 벗겨낸 방혜영이 미니멀리즘의 작가들과 같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물체가 지닌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러기에는 98년도에서 2001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련의 작품들에는 그 자신의 감정의 기복이 색채와 바인더를 통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적인 성질은 최근에 들어와서 제작한 『2002 기하학적인 원-관계』라는 작품에서 조금씩 느껴질 정도이다. 그 작품에는 나무의 나이테의 모습들을 통해 자신이 감정의 기복을 벗어나 느껴지는 사물의 느낌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하학적인 원과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주위의 모양들을 통해 정감 있게 풀어가고 있다.

방혜영_ILLUSIVE IMAGE전을 위한 홍보물_디자인 그룹 타이포그램 제작_2002

아마도 그가 캔버스 천을 벗겨낸 이면에는 천 뒤에 있는 지지대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방인과 같이 부유하는 자신의 모습과 닮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지대를 통해 그의 마음은 일련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들끓어 오는 감정을 작품 속에서 표현하면서 말없이 인간 곁에 있는 서 있는 무한의 자연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인더를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려는 모습에서,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아니 이 땅 위에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을 탐색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듯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할 때 시각은 하나의 환영이 된다. ■ 조관용

Vol.20021016b | 방혜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