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섭의 오디세이

마로니에미술관 2002 한국대표작가 초대展   2002_1025 ▶︎ 2002_1117

김차섭_우주적인 눈_캔버스에 유채_46×51cm_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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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2002_1107_목요일_02:00pm_마로니에미술관 3층 강당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Tel. 02_760-4601

문예진흥원은 한국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으면서도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중진원로작가 한 분을 초대하여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정리,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마다 해오고 있다. 이번에 초대되는 김차섭 선생 또한 그의 작업이 갖는 미학적, 미술사적 중요성에 비해 그 이름이 덜 알려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이름이 한국 미술계에서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1974년 도미하여 15년 동안 체류하며 한국미술계의 흐름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일구어왔다는 데에 그 일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그의 관심의 지평이 동시대 여느 국내 작가들과도 비할 수 없으리만큼 거시적이었기에, 유행처럼 밀려왔다 사라져 가는 다양한 미술형식이나 미술계 내부의 정치적 동향에는 애초부터 별 관심이 없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일찍이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민족의 일원으로서의 강한 정체감에 더욱 사로잡혀 있었고, 변방 중의 변방인 한국미술계 내부의 정치적 힘겨루기 보다는 세계 문명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열강들 간의 힘겨루기, 더 나아가서는 우주만물이 벌이는 지구촌 생존게임에 더 관심이 있어왔다. 그런데 그 관심은 단순히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생업과 관련된 실용적 차원의 대응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삶과 예술, 그리고 이 거시적 관심사를 결코 분리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지난 30년 간의 화력(畵歷)이 입증해 줄 것이다.

김차섭_구성 B_실크스크린_48×51.5cm_1970
김차섭_7.3Cm_캔버스에 목탄과 유채_152.5×183.3cm_1982

그는 모더니즘이 한창 위세를 부리던 6,70년대에도 '예술을 위한 예술', 곧 형식실험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외관상 당대의 유행과 유사한 형식의 작업을 하고있을 때에조차 일관된 목표로 역사 및 문명과 관련한 내면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의 화가로서의 인생은 극동의 변방에서 태어나 민족사적 비극을 몸소 체험하며 자라난 한 자존심 강한 예술가의 자아정체감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여정에 다름 아니었다. 서구문명을 극복하기 위해 서구문명의 심장부로 뛰어들었고, 그들의 무기인 이성과 과학정신을 에칭이라는 매체를 통해 습득하고 이해했다. 그 결과 끝없이 펼쳐지는 자갈밭을 배경으로 직각삼각형과 사선 등의 기하도상이 오버랩 되는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일련의 에칭작업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마침내 뉴욕이라는 현대미술의 메카에서 그 분야의 최고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 안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일차 목표는 이미 이루었으며, 그의 새로운 열정은 더 넓은 지평을 향해 이미 달려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적을 알았으니 이제 그는 세계 문명사와 지구 생태계 내에서의 한국, 그리고 그 안에 속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철학, 인류학, 고고학 등 인문학 분야는 물론 기하학,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쳐갔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숱한 자화상들과 그 자화상에 등장하는 상징적 도상들은 그의 방황과 탐색, 그리고 결실의 여정을 시기별로 보여준다. 서사적이고 우의적인 그의 자화상들은 그가 근대 이전 서양미술사의 풍요로운 성과물들을 적절히, 매우 잘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표현주의적 붓터치로 격렬하게 그려진 많은 자화상들이 그의 피를 말리는 듯한 고뇌와 방황의 시간들을 대변해 준다면, 사실주의적 묘사로 이루어진 몇몇 자화상들은 그의 깨달음의 세계 및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신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김차섭_결단의 순간_캔버스에 유채_380×446cm_1988
김차섭_상황 0_실크스크린_54.5×50.7cm_1973
김차섭_자화상-북서풍_캔버스에 유채_26×20.7cm_1988

한편 그는 자신이 자라난 경주지역에서 자주 접하던 고대 신라의 문명이 북방 스키타이문명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지평은 빠르게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회귀하기 시작한다. 위아래가 뒤집혀진 거꾸로 된 지도가 그려지고 자작나무가지와 마상배(馬上杯)가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아울러 그는 뉴멕시코, 유럽, 터키, 중국의 산둥반도, 뉴잉글랜드, 그리고 유라시아 등을 차례로 여행하면서 비서구권 문명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얻게 된다. 또, 서구문명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생할 수 있는 자신감과 정체감을 완전히 회복하고, 대상으로서가 아닌 주체로서의 시선을 자유롭게 발사하는 진정한 마스터로 우뚝 서게 된다. 이제 그는 한반도로 이주한 북방 유목민의 후예이자 찬란한 금속문명을 지녔던 스키타이 문명의 계승자로서 조상들이 지녔던 시선과 동일한 시선으로 바다건너 구미세계를 향해 마상(馬上)에서 건배하는 여유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차섭_북두칠성_캔버스에 유채_96.5×131cm_1983
김차섭_녹색(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60×411cm_1983~4

최근에는 별과 천체의 움직임, 그리고 지구환경변화와 관련한 지정학적이고 생태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작업과 삶 역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지축이 움직이고 있다는 천문지리 정보를 자신의 지도그림에 직접 활용하는가 하면, 중부 이남지역에만 서식하는 대나무를 38선 부근 자신의 작업실 주변에 친히 심어 지축 이동에 따른 기후변화의 추이를 확인하기도 한다. 또 남과 북이 이념에 의해 갈렸던 최초의 인위적 경계선이 공교롭게도 한대와 온대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 그래서 북부와 중부, 남부지방의 식물이 함께 자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라는 것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북방의 자작나무와 중부의 백송, 그리고 남부의 대나무를 한 액자 안에 배치한 그림들은 그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강원도 내평리가 새시대의 화합과 평화를 일구어낼 숨겨진 구원의 땅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김차섭_당신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_세계지도판에 과슈와 마카_46.7×67.4cm_1984
김차섭_커피컵 시리즈_종이컵에 혼합재료_각 11.2×25.2cm_1985~6
김차섭_자작나무,백송,대나무_필름홀더에 유채_각 21.4×29.4cm_1996

'인간의 삶과 관계된 본질적인 문제와 동떨어진 미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김차섭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리얼리스트의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모더니즘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습득하여 이를 자신의 언어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던 시대인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유연한 작업 스타일을 순전히 자생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을 거쳐 자신의 고유한 무기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앞뒤 맥락 없이 서구미술의 형식만을 차용해 지방주의적 재생산, 곧 아류의 양산에 몰두해온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그와 같이 주체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지평을 갖는 작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 또한 자칫 국수적이거나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십상이었고, 국제적인 관심을 잠시 얻는 경우에도 서구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오리엔탈리즘에 스스로 얽혀 들어가 있기가 다반사였다.

김차섭_제3의 본성_캔버스에 유채_40×155cm_1989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수학한 미술학도가 뉴욕에 유학하여 현지 주류미술계에서 인정받는 일 또한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더구나, 서구문명만을 풍요롭게 해줄 '거름'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일구어낸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지평을 향해 선뜻 짐을 꾸린 그의 노매드적 삶 또한 예사롭지 않다 해야 할 것이다. 그 노매드적 행각이 단지 떠남을 위한 떠남이 아닌 확신에 찬 떠남이었을 뿐 아니라, 자타가 공인할 미술사적, 개인사적 성과를 답보하는 '매우 유익한' 떠남이었음이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혜경

Vol.20021027a | 김차섭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