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김영경 사진展   2002_1030 ▶︎ 2002_1105

김영경_Seoul_컬러인화_100×100cm_2001

초대일시_2002_1030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전략적 환멸 혹은 디스토피아의 유토피아 ● 김영경의 사진들은 암울하다. 그 암울함은 그녀가 당대의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고있다는 시각적 진술을 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환멸의 시선이다. 지어진 것들, 지어지고 있는 것들, 지어지다 만 것들, 지어지고 남은 것들-이 모두를 그녀의 시선은 쓰레기라는 이미지군으로 동질화한다. 밤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낙조의 우울한 빛, 냉정한 스트레이트 시각, 조형성의 왜곡을 위해서 이물을 과감히 내포시키는 프레임, 장노출이 유발하는 상반측 불궤작용의 효과 등은 사물을 포착하는 그녀의 환멸이 얼마나 일관적인가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그 환멸의 시선이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의 충격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만나는 현대의 풍경들은 유토피아를 향해서 질주하는 듯이 보이는 이 시대의 미래가 사실은 황폐한 디스토피아가 아닌가라는 가열한 질문과 맞서게 만든다. 끝없이 건설하면서 환경을 폐허로 바꾸고 끝없는 재생산의 자기확장을 통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생산력의 아이러니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광기는 아닌가.

김영경_Bucheon_컬러인화_100×100cm_2001
김영경_Siheung_컬러인화_100×100cm_2001
김영경_Bundang_컬러인화_50×50cm_2001

그러나 환멸은 언제나 환(幻)의 경험을 전제로 한다. 김영경의 환멸 앞에 자리잡은 환의 경험이 무엇인지 그녀의 이전 사진작업들은 짐작하게 만든다. 메트로폴리스의 황폐한 풍경들을 렌즈로 수집하기 전에 그녀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놀이공원이 보여주는 우주 공간적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사실은 그녀의 유년이 우주가상공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채색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환멸의 시선으로 세상을 포착하는 그녀의 감수성이 사실은 유년의 무구한 환과 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년의 환은 비단 김영경만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허위를 은폐하기 위해서 조장되는 현실의 환과 달리 버려진 쓰레기들이 더없이 소중한 놀이감이 되고 폐허가 자유로운 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유년기의 무구한 환을 누구나 생생히 기억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통과의례를 치르면서 이 유년기의 무구한 환과 작별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 통과의례를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람, 그리하여 현실이 제공하는 환상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에 대한 환멸을 통해서 유년기의 환으로 돌아가고자 한 그 회귀의 욕망은 퇴행의 욕망이지만 김영경의 경우는 다르다. 유년의 환을 추체험 하려는 욕망을 그녀는 비판적인 사진작업을 통해서 현실이 제공하는 거짓된 환영들에 미성숙하게 함몰 당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바꾼다. 현실이 기만적인 환상으로 가득할 때 유년의 환은 그 환상들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단 하나의 현실이 된다. 그래서 유년기의 환상을 상실하지 않는 한 현실의 환상에 우리는 완전하게 매몰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암울한 세기말적 풍경을 통해서 김영경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이 성숙한 유년기적 환상이다. 환멸을 앞세움으로써 유년기적 환상을 안전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전략적 환멸 - 그것이 김영경이 보여주는 종말론적 풍경들의 숨은 의도처럼 보인다.

김영경_Seoul_컬러인화_100×100cm_2001
김영경_Seoul_컬러인화_50×50cm_2001
김영경_Seoul_컬러인화_50×50cm_2001

그러나 김영경의 전략적 환멸이 단지 유년기적 환을 보존하기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전략적 환멸이 사진의 묵시적 메시지와 접속할 때 그것은 새로운 이미지 효과를 획득한다. 그 효과의 의미를 우리는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the Paradise)』이라는 사진전의 타이틀로부터 추론해 볼 수 있다. '천국보다 낯선'이란 타이틀은 짐 자무시의 영화제목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그 의도적 차용은 유사성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짐 자무시의 영화적 서사는 '천국보다 낯선 곳'이라는 메타포로 비인간적인 인공의 천국 미국의 실체를 폭로하고 야유한다. 하지만 사진에는 서사가 없다. 사진의 메시지는 다름이 아닌 사진의 침묵이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은 보는 이에게 자신을 뛰어 넘도록 요청한다. 김영경의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의 암울한 사진은 우리들로 하여금 사진의 표층 이미지들을 뛰어 넘도록 요구한다. 그렇게 우리가 건너가는 곳에 김영경의 '천국보다 낯선 곳'은 있다. 현실이 디스토피아로 변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이미지화 되는 유토피아, 어쩌면 영원히 도달 할 수 없는 곳이지만 그 좁힐 수 없는 거리 때문에 더더욱 강렬하게 우리를 매혹하는 그런 낯선 곳 - 김영경의 전략적 환멸은 천국보다 낯선 곳보다 더 낯선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고자 한다. 그런데 그곳은 어디일까? 분명한 건 카뮈가 말하듯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지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떤 곳'을 우리의 동경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경이 보여주는 환멸의 시선도 그러한 동경의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 김진영

Vol.20021030a | 김영경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