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JUS_회화과 동창회전

책임기획_배종헌   2002_1101 ▶︎ 2002_11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비져스 온라인 전시로 갑니다.

참여작가 김지숙_박창규_손혜민_유주호_이상진_이현주   온라인 전시_www.bijus.net

갤러리 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화가는 어디에 있는가 ● 미술에 꿈을 품고 순수 회화를 전공한 이들은 미대 졸업 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들이 꿈꾸던 예술로서의 미술과 삶으로서의 미술은 어떤 거리를 만들고 있는가. 그래도 진정한 순수성을 이어가는 미술을 해야한다.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가최면 상태는 더 이상 이들을 붙들어 놓을 명분을 잃었다.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지독한 예술 환각으로부터 깨어날 때의 통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비져스는, 그리고 비져스가 3년 전 졸업작품전의 문제에 관해 여러 대학으로 투어 인터뷰를 했던 같은 또래의 '그 때 그 사람들'은 이 통증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순수 회화 전공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애초에 꿈꾸었던 낭만적 정서로서의 '화가'의 모습은 현재로서는 너무나 먼 것이 되어버렸다. 졸업과 더불어 학교라는 울타리로부터 빠져나온 이들은 각자 생활의 범주가 사회로 이동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미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미련을 늘 간직한 채, 사실은 자신이 여전히 미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며 회의에 찬 작업에의 의지를 갈망한다. 위대한 예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결핍에 대한 뭔가 모를 불안감을 호소한다. 여기에서 '미술'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그 흔한 자기 질문을 또 던지게 된다. ● 사실 이들은 분명히 현재에도 미술을 하고 있다. 김지숙은 웹디자인 회사 등을 거쳐 현재는 벽지 디자인 회사에서 디자인 실무를 맡고 있다. 박창규는 안성시에서 지원하는 문화마을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그림 지도를 하고 있다. 손혜민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술이라는 언어로 풀어놓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유주호는 이벤트 공연물을 제작하는 일을 하였으며, 영화 제작팀의 세트 디자인에 참여해왔다. 이상진은 웹디자인 회사에서 웹페이지 프로그래밍을 통해 화면에 시각적인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현주는 단추 디자인 회사와 모 상업화랑에서 복제미술품을 제작하여 대단위 모델하우스나 일반인들에게 직접 공급하는 일을 하였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 모두 여전히 미술에서 파생, 확장된 범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술을, 작업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이 현대미술의 순수성 상실의 문제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탈영토화된 영역을 찾아 걸어가게 되는 딜레마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들의 미술은 온전한 순수성을 지닌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미술과 연관된 무엇을 여전히 삶의 중요한 관심사항으로 두고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와 우상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실생활에 스며드는 미술의 양태로 변화되었을 뿐, 미술의 '탈/재영토화'(들뢰즈)를 실현하기 위해 모종의 기획을 꿈꾼다. ● 갤러리보다의 3층 전시장에는 비져스 작가들의 학창시절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3층의 한 켠에는 1999년 그들이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반일 당시 관행적이고 소모적인 연례행사로서의 졸업작품전에 문제를 제기하며 각 대학들을 돌아다니면서 타교 회화과 4학년들을 대상으로 졸업작품전에 관한 인터뷰를 정리한 비져스 투어(BIJUS TOUR)전의 기록물들(비디오, 사진 자료 및 텍스트 등)을 볼 수 있다. 아래로 내려와서, 갤러리보다의 2층 전시장에는 이들이 회화과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 현재 하고 있는 직업과 관련된 작업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3년 전 비져스 투어전에서 인터뷰로 만났던 다른 학교 회화과 졸업생들의 현재의 모습과 생활상을 접하게 된다.

박창규_학원생활_작가가 일하고 있는 아동미술학원의 사물들_가변크기_2002

전시장으로 걸어 가보자. 안성에서 지역작가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에게 그림 지도를 하고 있는 박창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들을 던져오고 있다. 그는 청소년기에 입은 사고로 왼쪽 팔을 다쳤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을 정도로 그는 활달하고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안고 있는 장애에 대하여 멀쩡한 몸을 꿈꾸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희망사항이다. 그런 그에게 작품 「학부생활」는 학창시절의 상처와 추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적인 기록물들임에 틀림이 없다. 한쪽 벽에는 그가 미술대학을 다니는 동안 줄기차게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표지에 「if」라고 붉은 색 펜으로 굵게 쓰여진 드로잉북이 걸려있다. 바로 그 옆에는 벽으로부터 수직으로 캔버스틀이 놓여있는데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천이 올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림은 없고 벌거숭이가 된 나무틀에다가 난데없이 잡동사니들이 더덕더덕 붙여 놓았다. 이 벌거숭이 나무틀에는 회화과 학술답사 때 찍었던 사진들, 실기실 한쪽에서 포즈를 취하며 동료들과 찍은 사진들, 드로잉이며 에스키스들, 낙서와 일기들, 군대에 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3층의 「학부생활」의 후속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래층의 「학원생활」은 박창규의 현재의 삶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학원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액자에 담긴채 전시장 바닥쪽 벽에 기대어 있다. 테이블 위에는 꼬질꼬질하게 때가 타고 아이들의 낙서로 범벅이된 미술학원의 출석부가 든 장부철, 학원을 마치자마자 달려나간 아이가 깜빡 잊고간 옷가지며, 아이들을 야단치는 데 사용되었을법하지만 그러면서도 낡을대로 낡고 아이들의 낙서로 뒤덥혀 있어 도무지 무서워할 수 없는 작대기 등 학원 풍경을 그리기고 있는 사물들이 놓여 있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안성이라는 지역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자료와 작품을 함께 올려놓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박창규라는 한 예술가의 꿈과 직업인의 삶을 오브랩하며 연상하게 된다. 작품 「학원생활」은 박창규에게 있어 반복되는 일상의 뒷모습이자 희망의 자리가 된다.

이현주_명품 로고가 가져다준 이미지_블랙&오렌지_라이트박스에 커팅시트_2002

이현주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자신을 표현한다. 3층의 학창시절 작품으로 「난 마녀가 되고 싶다」, 「무엇인가가 있다」, 「멈춰 있는 나」 등을 보면 그녀가 안고 있는 내적 욕망과 세상에 둘러싸인 외적 환경과의 갈등을 짐작하게 한다.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무엇을 끄집어내어 밖으로 표현하는 행위들에서 스스로 치유해 가는 자정작용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런 작용은 이현주만의 것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같은 내적 정화를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내적 정화작용의 기회는 졸업과 동시에 멀어져 갔다. 그녀가 체험한 일들은 단추 디자인 회사에서의 아르바이트, 미술학원 강사, 모 상업화랑에서의 아트웍 제작 등 그동안 믿어온 미술의 정화작용과는 먼 동네의 일이다. 이현주는 학교를 벗어나 대중과의 접촉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라고 전한다. 2층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 「명품 로고가 가져다준 이미지_블랙」과 「명품 로고가 가져다준 이미지_오렌지」는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회사들의 로고 도안을 모으고, 이 도안들을 다시 이래저래 번안해서 라이트 박스에 올려놓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품을 믿는 것이 아니라 로고를 숭배하는 환경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이현주는 여기에서 대중의 미적 코드가 지극히 단순한 취향에 몰려있음을 함께 지적한다. 그러나 이현주에게 그것은 그리 못마땅한 문제만은 아니다. 미술가에게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응용되어야할 소재이며, 또 다른 미술품으로서 정초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세상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회적 환경과 교감하는 것은 그녀에게 중요한 대목이다.

손혜민_어서오세요 던킨도너츠입니다!_디지털프린트,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2

손혜민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 이력을 갖고 있다. 모 중국식 레스토랑의 웨이츄리스, 커피숍 점원, 어느 중소기업의 홍보제작물 조연출, 영화 '와니와 준하'의 삽입 애니메이션 제작참여, 서초구청 교통행정개발과의 부설주차장 관리부서에서 용도변경한 주차장을 적발하는 일 등 고정된 직업과는 먼 임시직들을 가리지 않고 하여왔다. 손혜민의 이러한 이력은 가히 현대인의 노마드적 삶의 유형을 대변하는 듯하다. 학창시절의 작품 중 3층에 선보이고 있는 애니메이션 기법의 영상 작품 「EAT」는 그녀가 모 고급레스토랑에서의 "저질 남자손님들에 대한 불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 「EAT」는 성적인 공격성을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되묻게 하는 이 작품에서 손혜민은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 놓은 순응하는 여성이라든가 남성의 전유물로서의 여성을 폐기처분 하였다. 작품「EAT」에서는 여성의 성적 장치물이 또 다른 공격성의 표출이라는 무기로 자리바꿈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높고 뾰족한 검정색 하이힐이 성적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비치다가 금새 남성의 낭심을 짓이겨 피를 솟구치게 하는 부분은 보는 이를 섬뜩 얼어붙게 만든다. 보호본능이라든가 방어적인 심성 따위는 더 이상 여성의 본성이라고 할 수 없으며 파괴와 과격한 공격성이 여성의 새로운 심볼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2층에 출품한 손혜민의 최근작 「어서오세요 던킨도너츠입니다!」도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서 나온 작업이다. 손혜민은 현재 패스트푸드점 '던킨도너츠'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각종 패스트푸드점의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종업원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작업으로 거둬들이는 데 이르고 있다. 작품 「어서오세요 던킨도너츠입니다!」는 현대인의 스피디한 식문화 속에 있는 패스트푸드점과 거기에 걸맞는 젊은 여종업원의 발랄한 음성에 감춰진 기계적인 멘트의 무의미한 반복, 노마드적 삶의 덧없음, 더하여 경쾌하고 케쥬얼하게 가공된 미술이 어떻게 보조를 맞추며 소비 유통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김지숙_패턴의 패턴, 벽지_M2006-5 외_아크릴 박스 안에 벽지, 혼합재료_2002

현재 모 벽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라고 있는 김지숙은 학창시절에 작품과 비작품의 경계에 해당하는 액자를 소재로 다양한 작업들을 펼친 바 있다. 일테면 전시장 입구의 계단 끝단에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액자」라는 작품을, 3층에는 출력한 액자의 이미지를 프레임에 담고 이를 다시 랩으로 싼 「액자」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공간으로 들어서는 액자」는 그녀가 1999년 대학로의 살바에 출품한 카운터의 벽과 기둥에 끼워 넣은 정형 액틀의 변형으로 보인다. 액자는 이른바 '작품'을 끼우는, 애워싸는, 그럼으로써 작품의 한정된 영역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지숙의 「액자」들은 작품을 에워싸는 것이라기보다는 건축적 구조물에 의하여 액자가 에워싸여지는 것이기에 「액자」자체가 작품이자 바로 그러한 액자 사이를 들락날락거리는 관람객을 작품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하는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하면 액자의 안쪽을 건축적 구조물에 대한 네거티브 공간으로 포착하고 '안'을 오히려 '밖'으로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관람객을 작품의 바깥으로 내몰기도 한다. 이번에 출품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액자」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액자의 모퉁이를 잘라 만든 'ㄱ'자로 분절적 표식을 둠으로써 '작품'이라는 것의 규정성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편, '벽지디자이너'라고 하는 직업에서 나온 「벽지_M2507-1」과 「벽지_M2006-5」 그리고 「패턴의 패턴」 이라는 작업을 2층 전시장에서 보게 된다. 벽지는 벽의 일부이자 공간의 마지막 접변점이다. 액자가 작품과 비작품의 경계에 서 있듯이 벽지도 벽과 공간이 만나는 경계지점에 놓이는 파레르곤적 사이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숙은 자신이 손수 디자인해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번호 'M2507-1'과 'M2006-5'라고 표기된 벽지를 벽이 아닌 액자 안으로 들여놓고 있다. 그 벽지가 벽이 아닌 액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모노크롬의 순수회화 작품으로 자리바꿈 하였다. 마치 익명의 공간에, 어느 벽에 나붙어 있을 자신의 벽지들은 순수한 회화의 본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같다.

유주호_영화 속의 미술_영화 오아시스의 주요소품 및 사진과 드로잉이 든 파일, 혼합재료_2002

유주호는 학창시절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이벤트 행사장의 조형물을 제작하는 회사 등에서 이미 많은 일들을 하여왔는데 스스로 "미술의 산업화 부흥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만큼 미술의 의미를 보편적 미의식으로부터 출발한 상상의 세계를 현실세계에 뿌리박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대 졸업후 영화 미술팀에 참여하게 되면서 영화 '집으로...'와 '오아시스' 를 통해 리얼리즘적 동화세계 및 현실적 공간 재현과 공간의 성격 규명에 대한 탐구를 하여왔다. 3층의 학창시절 작품코너에 출품한 「Happy Wedding」을 보자. 왼쪽의 하아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관객의 '시선'을 피한 상태로 엉뚱하게도 거대한 남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른쪽의,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남성은 남성다운 권위적 제스츄어에 허위를 암시하는 펜 선(線)이 결부되어 정치적 위선의 남성상을 대변하고 있다. 「Happy Wedding」은 유주호의 리얼리즘적 감각과 사회적 발언의 출발로 보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벤트 조형물 제작사에서 일한 솜씨를 발휘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주문된 것이 아니다. 주문될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다. 이 금기의 선을 넘어서는 것이 유주호에겐 진정한 리얼리즘의 성취로 이해된다. 2층의 「영화 속의 미술」을 보자. 우리는 여기에서 '집으로...'와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감춰져있는 미술의 두터운 층위를 만나게 된다. 필름에 저장된 이미지가 빛에 투사되어 스크린에 비칠 때 이 복제된 영상은 진정한 현실의 복제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현실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는 재현 미술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유주호는 「영화 속의 미술」을 통해 전달한다. 이 지독하고 끈끈한 재현의 두께는 그의 파일들에서 드러난다.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되는 우리는 영화 속의 장소가 어떻게 헌팅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유주호의 「영화 속의 미술」은 하나의 장소가 정해지기까지의 감춰진 시간과 발품의 흔적들, 영화 미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공간 연출의 고민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된다. 마치 재현 회화에 있어서의 꼼꼼한 붓질이나 치밀한 구도를 계산하듯이 소품 하나 하나를 무엇으로 할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놓이고 전체적인 구도는 어떻게 배치 설정할 것인지를 현실적 개연성에 근거한 종합적 미쟝센을 얻는데 이른다. 유주호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안에 미술이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를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발설하고 있다.

이상진_회화사(繪畵死)_캔버스, 천, 노끈, 지프 등_1999

이상진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를 꿈꾸었고 사실 그림을 무척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회화과 졸업반일 당시, 이상하게도 그림은 더 이상 그리지 아니하고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을 천으로 싸는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주위에서는 '졸업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들 수근거렸다.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거나 자기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었을 게다. 그림이 싫어져서도 아니었을 게다. 주위에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가 얼마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그림 그 자체를 좋아하는지를 잘 안다. 그런데 왜. 그것은 수수께끼이다. 왜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무덤으로 집어넣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하기를 유예되었던 '행복'의 시간이 다한 것을 알아차린 까닭은 아닐까. 3층에 출품한 「회화사(繪畵死)」는 당시의 그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메멘토-모리이다. 다시 말해, 순수 회화의 죽을 운명을 언급한 대목으로 보인다. 그에게 있어 회화는 잘 보관되었다가 진열될 소장품에 불과하다. 그리는 것 자체의 '행복'은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작품 「지식의 고고학」은 자신의 학부시절의 실기실 공간과 현재의 사무실 공간을 재현해놓은 미니어쳐 작업이다. 학년별로 과거 자신이 지내던 공간 속에는 바로 그 때에 그가 그렸던 그림들이 자그마하게 들어서 있어서 미니어쳐 모형 자체가 하나의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진은 회화과를 졸업하고는 웹디자인과 관련된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웹프로그래머가 되었다. 이제 그의 회화는 어느 서브컴퓨터에 잠복되어 있을 코드명들로 바뀌었다. 우리는 웹서핑을 하면서 잘 정리된 화면을 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화면 너머에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코드 명령어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상진은 그런 코드에 명령을 내리고 경로를 정하여 시각적으로 어떻게 산출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식의 고고학」의 맨 오른쪽에 있는 것과 같은 썰렁한 사무실 공간에서. 거기에는 더 이상 회화 작품은 없으며 책상 위에 덩그러니 컴퓨터가 한 대 자리하고 있다. ● 어찌하였건, 이 전시에 출품하는 작가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현미술(아니 어쩌면 언제나 그래왔던 미술)의 한 이면을 볼 수 있다. 즉 예술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의 이중구조 말이다. 그러나 여기의 이 작가·직업인들은 생활인으로서의 미술행위를 단순히 애호가나 취미가의 수준으로 폄하하기보다는 제도미술에 대한 탈주와 그것의 확장을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쾌활한 허무주의'(보들리야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회화의 죽음'이니 '예술의 종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그럼 뭐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제자리로 돌려주고, 몇몇이서 모여 앉아 투덜거림의 자유와 위안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마치 동창회에서 오랜 친구를 간만에 만나 소주라도 한 잔 나누는 맘의 여유를 가져보자는 얘기다. 진정한 화가는 바로 당신이라고. 순수란 하나의 미쟝센일 뿐이라고. ● 그런데, 비져스의 친구들(1999년 투어인터뷰에 응해주었던 각 대학 회화과 학생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 우리는 나를 닮은 또 다른 화가를 찾아 나선다. ■ 배종헌

Vol.20021101b | BIJUS_회화과 동창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