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의 흐름에 표류하는 정체성

김명진 회화展   2002_1106 ▶︎ 2002_1112

김명진_산란-흐르는 얼굴_혼합재료_210×180cm_2002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김명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작품의 탄생을 위한 통로"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작품을 낳기 위해 산고를 겪고 탄생한 '산란'의 장을 선보인다. ● 작가는 첫번째 개인전, '이식하기'라는 작업에서 이미 탁본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꼴라주 작업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선 한지에 나무의 나이테를 뜨는 탁본의 과정을 거친 다음 그 채탁된 종이를 길게 잘라 해체된 이미지를 작품 화면에 붙여가며 최종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잘게 잘려져 해체된 모태적 이미지는 꼴라주를 통해 얇은 피부처럼 화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유기적으로 전이된다. ● 시간의 산물인 나이테의 조형성을 피부로 재해석하여 그것을 화면으로 이식하는 과정을 통하여 '시간'과 '피부'라는 화두를 그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피부란 육체 내부를 외부 세계와 차단하고 보호하는 경계선이기도 하고 상처와 주름 같은 흔적을 남기는 감각적 표면이며, 감각을 여과시키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피부를 이식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순수 내재성(內在性), 작가의 행위와 수용자의 감각이라는 이중 구조가 또한 작품 화면이라는 감각적 표면에 점철되어 결론적으로 작가와 관객의 소통의 장이 구축된 것이다.

김명진_산란-잠들다_혼합재료_210×178cm_2002

마찬가지로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서도 김명진은 이러한 꼴라주 작업을 바탕으로 '산란'이라는 테마를 생성과 변화를 거듭하는 유동적 흐름의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체된 나이테의 형상은 화면에서 다시 반복적인 순환으로 거듭나면서, 침전의 상태에서 유동의 상태로 옮겨온다. ●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순환하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겹겹의 원, 그러한 순환흐름 속에서 도출되는 모호한 인간의 형상, 원의 궤적을 그리며 형성된, 혹은 생성 과정 중에 있는 듯한 인체 등과 같은 이미지를 보게 된다. 수면 위에 반영되어지는 자신의 형상처럼 물의 파장에서 파생되는 왜곡되는 자아의 굴절 상, 잔상의 여운 같은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작가는, 삶과 죽음을 거듭하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과 그것의 단편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둘러싼 이질적인 공간, 그 시공(時空)의 흐름 속에 표류하는 해체된 인간의 심상을 그려내며 실존적이며 존재론적인 고뇌를 화두로 삼는다.

김명진_산란-산책_혼합재료_200×80cm_2002

김명진의 작품은 굴절된 인간상, 그러한 산란한 정체성이라는 담론을 점진적인 확산과 소멸의 흐름을 가시화하여 알을 낳기 위한 장소를 향해 회유하는 산란(産卵)의 과정으로 풀어나가며 원적인 모티프를 바탕으로 마치 물의 파동이 충돌하여 각 방향으로 흩어지는 산란(散亂)의 조형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우주적 시간의 한 부분을 살아가는 개체성의 분열된 자아, 무엇인가를 배출하려는 끊임없는 욕구를 작가는 이러한 '산란'의 방식을 빌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흐르는 얼굴」, 「부유」 등에서도 보여지는 이러한 내면적인 성찰,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화두는 번민하는 듯한 일그러진 얼굴과 왜곡된 인체의 형상을 통해, 잘게 찢겨져 조각난 자아, 얼굴도 몸도 미이라처럼 칭칭 감겨져 은닉된 몰개성의 인간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현대의 세계에서 표류하는 익명의 인간, 정체성을 잃어가는 오늘이라는 시대 우리의 얼굴일 것이다.

김명진_산란-들어섬_혼합재료_185×185cm_2002

그림이란 자아의 상처를 덮어주는 반창고와 같다는 엘리안 시롱Eliane Chiron의 말처럼 작가가 붙여나가는 한 줄 한 줄의 종이띠들은 상처난 영혼을 싸매어 나가는 거즈와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 또아리를 틀고 있는 형상인 듯, 교차되고 반복되는 유동적인 이미지는 어린왕자의 보아뱀처럼 나이테라는 구체적인 형상, 일상의 현실을 오려내고 뒤덮는다. 그것은 가시적 세계 안에서 벌거벗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가 자신만의 조형성을 찾으려는 창조적 노력, 흔적이기도하다. 작가는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의 파편들이나 유영하는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자개 조각들을 산란이라는 개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꼴라주로 인한 각각의 마티에르는 화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얇은 껍질처럼 화면 위에 부유하며 점진적인 흐름을 통해 수면의 산란의 장을 가시화 한다. ● 물이라는 매체는 이렇듯 김명진의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바슐라르는 상상의 특수한 형태를 제4원소(불, 공기, 물, 흙)에 재결합시켜 환기시킨바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물은 씨앗을 발아시키면 열매 맺게 하는, 탄생과 성장을 은유하며 자주 모성을 상징한다. 물은 또한 "삶과 죽음 사이에 일종의 조형적 매개자가 된다" 는 그의 말에 따르면 물은 탄생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숨쉴 수 없는 '다른 세계', 신비, 위험, 더 나아가 살해적 형상을 구현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연계하며 "존재의 실체를 은유하는 본질적인 운명"(바슐라르)인 이러한 물이라는 매체는 김명진의 작품 속에서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은유하며, 끊임없는 욕구를 산란하려는 실체를 가시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모티브가 된다. 그것은 김명진의 '산란'을 위한 양수(羊水)라는 메타포는 아닐는지. ● 그의 작품은 산란하는 작가라는 모체의 창조성의 원초적 지반, 자궁 속 형상일런지도 모른다. 「산책」이라는 작품에서 인체의 형상에 연결된 끈은 이처럼 마치 작가와 작품을 이어주었던 탯줄 같기도 하다. 수면, 그 물결의 파장 위에 반영되는 실존의 허상과 같이, 물속의 공간과 자아의 이미지가 공존하며 대립되는 그러한 이중적인 구조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관철된다. ● 가령 수면 속에서 걸어 나오는 혹은 세상을 등지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그의 작품 「들어섬」 속 인체의 형상과 반복 순환되는 원의 궤적은 강직성과 유연성을, 명료함과 불명료함, 드러남과 감추어짐을 함께 포획한, 도식적이면서 동시에 회화적인 변주의 장이다. ● 또한 세 개의 따블로가 병치되는 작품 「산란-회유」를 보면, 한 화면에는 불규칙적인 크기의 원들이 탑과 같은 형상으로 쌓여지면서 작품 전반의 수직적인 뼈대를 구성하고 양 옆 화면에는 교차되는 원의 형태들이 점진적으로 확산, 소멸되어 가는 구도를 이룬다. 높이 234cm인 따블로와 너비 244cm나 되는 두 개의 따블로가 함께 유기적으로 배치됨으로 해서 한 눈에는 관철할 수 없는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며 산란-회유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 이 작품에서 원의 궤적을 통해 쌓아 올려진 탑은 불교에서 거론되는 건축물과 같이 사리나 유골을 묻어 특별한 영지(靈地)를 나타내는 무덤이나 묘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주검을 은폐한 듯한 얼굴이 아련히 보여지는 이러한 탑은, 성모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자궁이자 무덤이라고 비유한 성 아우구스투스의 말처럼 죽음과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은유하는, 순환하는 과정 가운데 한 지점으로서의 그것이다. 원적인 세계관을 가진 윤회 사상이나 60갑자를 주기로 한 원적인 시간관, 이러한 체계적이고 우주적 사상을 따르면 삶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돈다. 죽음은 끝도 삶과의 단절도 아닌 다른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다. 김명진의 이 작품은 이러한 우주의 원적인 세계관을 닮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의 의미를 내포한 탑의 형상과, 생성과 소멸의 흐름을 통해 산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진_산란-회유_혼합재료_200×90cm×4_2002

김명진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원이라는 모티프는 그러므로 자체적으로 성립되고 마무르는 폐쇄된 공간으로의 원이 아니라 "서글픈 반복을 명랑한 갱신과 화해시키는" (레지스 드브레Regis Debray) 나선형과도 같이 새로운 탄생을 향해 뻗어나가는 열려진 원이다. ● 작가의 표현처럼 억겁의 세월이 흔적으로 각인된 모태적인 이미지, 나이테라는 형상이 '산란'으로 다시 태어난 김명진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몸, 관객의 감상이 교미된 또 다른 산란의 장이 될 것이다. 수평적인 수면의 파장이 무수히 점철된, 수직적인 작품 화면 너머로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물고기떼들의 일렁임을 헤아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생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일순간 반영되어 진다면 김명진의 작품은 산란을 위한 소통의 공간으로 충분히 달성된 것이리라. ● 생성과 소멸, 재생의 과정 속에서 존재론적인 성찰을 탐구하는 김명진의 작품은 자기 삶의 중심을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위해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 속에서 수행을 하는 만다라와 같이, 밀교의 행자처럼 우리를 명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 동양화에서 형성상의 전통은 경향성이다. 화면이 현재 존재하는 형태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장차 존재하게 될 요구의 형으로 그려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하나로 통일된 한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테면 동양화의 두루마기 그림인 회권(繪卷)처럼 다른 한 끝에서 다른 쪽으로 행하여 점차적으로 전개하는 형식이다. 그림을 풀어 펼치면서 마치 길을 따라 걸어가는 마음으로 그림을 보아나간다는 것이다.

김명진_산란-회유_혼합재료_25×244cm×2 / 234×120cm_2002

김명진의 작품의 조형성은 이와 마찬가지로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움직이는 과정 속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 겹겹이 쌓여진 원의 굴레 속, 그 변화와 순환의 궤적 속으로 한발한발 따라 들어가면 작가 내면의 피안세계가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또한 "만상을 흉회(胸懷)에 세운다"는 말처럼 관객은 감상에 의해 새로이 생겨나는 심상을 제작하는 또 다른 작가가 되어 김명진이 산란한 사색적인 공간에서 구도자의 깨달음처럼 잊어버리고 흘려버린 시공간의 파편들을 발견하며 각자의 기억 속으로 떠나게 될지도... ■ 임연

Vol.20021110b | 김명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