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되지 않는 질서'에 관한 한 어법

김재성展   2002_1113 ▶︎ 2002_1119

김재성_혼합재료_120×120×15cm_2002

초대일시_2002_1113_수요일_05:00pm

한서갤러리 / 2002_1113 ▶︎ 2002_1119 아지오갤러리 / 2002_1123 ▶︎ 2002_1206

한서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빌딩 2층 Tel. 02_737_8275

아지오갤러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1리 362-10번지 Tel. 031_774_5121

김재성의 세계는 질서를 추구한다. 그것은 매우 조용하고 엄격하며, 한 치의 오차로도 나락으로 덜어질 수 있을 만큼 민감한 질서다. 그러므로 이 질서로의 여정이 다른 거의 모든 요인들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색을 버렸고, 이미지를 만드는 성취, 사물을 재현해내는 기쁨까지 내던졌다. 결국 매우 격앙된 감정이 실렸던 제스처와 거친 붓질도 중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조각들이 이웃해 있을 때의 조형적 우연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유희와도 단절했다. ● 이 지난한 포기의 과정을 겪으면서, 김재성은 현재의 위치, 곧 자신이 가장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소라고 믿는 곳에 도달했다. 이 과정은 마치 폴 세잔(Paul Cezanne)이 인상주의를 등지던 한 세기 전을 생각나게 한다. 결국 인상주의의 색과 열정을 뒤로하고 떠나게 만든 것도 세잔의 자신을 향한 모색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색은 너무 많은 것들을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여 번민스럽게 하고, 열정은 너무 쉽게 식어버린다는 것이 당시 세잔의 결론이었다. 이보다는 더 질서있고, 덜 변덕스러우며 믿을만한 지표를 필요로 했던 세잔은 결국, 자신의 고향인 엑스로의 외로운 낙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재성_혼합재료_75×75×15cm_2002
김재성_혼합재료_25.5×39×15cm_2002

폴 세잔이 생뜨 빅뜨와르의 산을 그릴 때, 그렇게 색을 억제하고 묘사들을 거세해 버렸듯이, 지금 김재성의 조형세계도 색의 화려함이나 주체의 격렬한 개입 같은 것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것들의 임의적인 충돌이 주는 유희 때문에 이전에 즐겨 사용했던 꼴라쥬 기법도 이젠 무계획적이고 따라서 조형의 윤리를 위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제 물질을 다루는 모든 과정은 작가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진행되고, 그 각각의 행위와 결과는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는 출발부터 예측되어야만 한다. 사실 그의 세계 어디에도 우연을 기대한 흔적은 없다. 작가는 눈금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세계, 산술적인 계산이 형식들이 합리적으로 조합하고 분열하는 것의 원칙인 세계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도 마치 수작업의 흔적이 완전히 제거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처럼, 그의 세계는 수행의 엄격함을 지속적으로 더 요구하고 있다.

김재성_혼합재료_72.5×104cm_2002

하지만, 김재성의 세계가 많은 것들을 처분한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은 청교도적인 질서뿐 만은 아니다. 단지 창백해지기 위해 색을 등진 것도, 기계적인 냉엄함에 도달하기 위해 감정을 배제해버린 것도 더더욱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는 더 민감하게 풍요에 다가서고 있고, 감정의 어떤 위상을 지향한다. 그것으로 인해 방법론적인 엄격함을 더 동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민감함. ● 작가가 지향하는 작고 섬세한 성취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일어나는 가에 관해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작은 핀들이 규칙적으로 행과 열을 유지하면서 나열해 있다.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인할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자신으로서만 아니라 전체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인식소로서 정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관계성 안에서 독자성을 유지하는 무수히 많은 작은 것들은 다만 핀들만이 아니다. 그 핀들의 은진주 색 머리 위에서 산란하는 미세하게 영롱한 빛의 반사들도 그처럼 서로의 관계 안에서 화면 전체에 배분되어 있다. 이 반사된 것들의 경미한 산포는 작가의 세계가 갖는 순결함의 차원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약간의 시각적 유희, 최소한의 변주를 허락한다. 이에 의해 바탕의 흰색도 결정적으로 성격화된다. 즉 더 이상 강박적인 '부재'나 병색의 알레고리가 아닌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김재성_혼합재료_50×50.5cm_2002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방법론의 거의 기계적인 치밀함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이 결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이나 자유의 결박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세계가 엄격한 질서를 지향하면서도, 그로 인해 스스로를 닫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피해야 할 것은 응고된 질서, 곧 변화를 고착시키는 질서다. 반면, 김재성의 질서는 사방이 확장에 관해 열려 있고, 내적으로는 외부로부터의 미세한 변주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를테면 '좋은' 질서인 셈이다. ■ 심상용

Vol.20021113b | 김재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