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윤영경 수묵담채展   2002_1113 ▶︎ 2002_1119

윤영경_학야리_장지에 수묵담채_140×210cm_2002_부분

초대일시_2002_1113_수요일_05:3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학원 재학생인 윤영경이 찾아와 한편의 작은 글을 간절히 원하므로 나는 손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교훈 삼으면서 몇 자 적기로 했다. ● 예술작품에 대한 개념적 논의를 별나게 싫어하는 예술가들도 많다. 그러나 전시회라는 것이 작가와 감상자의 의사소통이므로 대개는 무엇인가 말이 꼭 있어야 한다. 창작이라는 것이 물질을 다루면서 이미 계획되었거나 모호한 착상들을 실행해 가는 것이므로 예술가의 손은 때로 무의식적인 움직임이기도 하지만 그의 두뇌는 자신의 창작 행위를 집요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사실이다. 저 유명한 장자의 "포정 丁이 소 잡는 얘기"에서 "내 감각이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을 아는 순간 신이 스스로 움직인다-官知止而神欲行"이라는 도에 대한 교훈적인 내용도 내몸의 운동신경이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아는 순간 신령한 움직임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일 때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즉 숙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술이 도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얘기는 작가의 참다운 말의 본보기이다.

윤영경_학야리_장지에 수묵담채_74×129cm_2002
윤영경_오봉 이야기_장지에 수묵담채_129×124cm_2002
윤영경_오봉 이갸기_장지에 수묵담채_68×88cm_2002

근세 이후 예술론에서는 기술과 예술이 상당히 다른 것인양 힘주어 말함으로서 예술창작행위가 신비한 것인 것처럼 자신과 상대방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이들이 적지 아니 있었다. 물론 모차르트 같이 어려서부터 예능적 자질과 영감을 한꺼번에 타고난 희대의 재주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것은 음악과 시에서 그러할 뿐 미술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로웬펠드의 잘 알려진 유아기에서부터 청소년기의 표현단계 발달과 정서도 이론화된 것처럼 인간을 성장해가면서 자아와 공간에 대한 재적응 시기를 몇 번 경험하는 가운데 외계와 자아 사이의 관계를 보다 확실한 개념으로 재구성해간다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전문적 기술을 수반하는 조형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감성적 모호성을 반영한 것이라 해도 반드시 오성이라는 의식행위가 수반되고 그러기 때문에 조형과정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윤영경은 대학원을 다니다 결혼 때문에 휴학을 하게 되었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라는 데서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 보인 작품들 대개가 그 시절 운봉산이라는 곳에 올라 둘러본 학야리와 좀 떨어진 마을인 오봉리라는 곳이다. 그는 학부 시절에도 연희동의 주택가 풍경을 그리기는 했으나 높은 곳에서 산과 마을 풍경을 의미 있게 둘러보고 그 스케치들을 원형으로 구성해본 것은 처음이다. 그후 고지도나 옛 실경산수화에서 그런 구도가 있는 것을 알았고 옛 그림책이나 고서의 질감이나 접힌 부분의 누렇게 뜬 흔적들이 그림을 그려 가는데 새로운 맛을 더해주는 요소들이 되었다. 그는 아직 의도적으로, 멀리 배경을 이루던 설악산의 웅장한 산세를 이상화시켜 멋을 부려볼 만한 배짱이 없는 학생다운 순수성을 보인다. 언덕에서 바라본 건물이나 밭이랑은 고집스럽게 대상을 설명하느라 가늘고 여린 선들로 꼼꼼히 묘사되어 작자의 의식세계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분명한 것은 그가 처했던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다.

윤영경_학야리_장지에 수묵담채_140×210cm_2002
윤영경_오봉 이야기_장지에 수묵담채_61×92cm_2002_부분
윤영경_오봉 이야기_장지에 수묵담채_61×92cm_2002

한 순간과 한 장소에서가 아닌 이어지는 공간과 시간의 연속, 즉 시공간을 통시적으로 파악하는 그리고 작은 단위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높은데 올라 내 집과 마을 바라다본 스케치를 시작하고 이들을 하나의 둥근 테, 즉 원형구도라는 평면에 전개시키는데, 그 사이 사이의 공간을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가 작업실에서의 과제였다. 화면 구성에서 이제 더 어떤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이 이루어졌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조형적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할 것이고 기교도 필요하겠지만 주어진 다양한 현상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은 어떤 틀에 고정되지 않다는 의식을 계속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 유준영

Vol.20021114b | 윤영경 수묵담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