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연주

강호은 회화展   2002_1115 ▶︎ 2002_1206 / 월요일 휴관

강호은_Life-16213002 -1_캔버스와 종이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구MBC Gallery M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2_1115_금요일_05:00pm

대구MBC Gallery M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1층 Tel. 053_745_4244

생명 연주 감상 ● 창호지에 선선한 색깔이들이 퍼져간다. 행복한 전염처럼 여러 가지 색깔들은 서로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섞여들어가 있다. 강호은 작가의 화면에는 따사롭게 번지는 색채만 이 전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성질인 종이와 캔버스(천)가, 번져가는 색채들을 머금거나 밀어내면서 힘의 균형을 조정하고 있다.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색채들이 종이와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뭉게뭉게 번져가는 화면에서는, 초겨울 맑은 공간에 퍼지는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린다. ● 작가는, 종이형상을 오려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을 드로잉(소묘)한다고 한다. 화면을 디자인하는 것. 일종의 밑작업이다. 이 형상은 우연히 작가의 눈에 들어온 아주 작은 꽃의 꽃잎이다. 이 생명을 한 겹 걷어내어 화면을 드로잉(형상 오려붙이기)하고, 마음가는 대로 색채를 선택해서 화면 위에 부은 다음, 더 이상 지울 수 없을 때까지 지워낸다. 그리고도 살아남는 것- 그 흔적들만을 추수해서 또 다른 색채를 지워내기 시작한다. 군더더기 없이 살아남은 박피의 흔적들은 캔버스(천)와 종이(오려낸 형상)에 서로 달리 반응하며 존재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이 흔적들은 이제 캔버스와 종이에서 더 이상 분리시킬 수 없다. 완벽한 혼연 속에 하나의 새로운 종種이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種의 탄생-, 흔적만을 남기려는 작가의 혼신은 또 얼마나 고된 반복인가. 박피 속에 남아있는 작가의 생명활동이다.

강호은_Life-16213002 -2_캔버스와 종이에 아크릴채색_145.5×112.3cm_2002

종이와 천은 서로 다른 성질이라 색채의 생존을 담아내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작가의 물리적 힘이 종이와 천(캔버스)에 고르게 미친다 할지라도, 종이(오려낸 형상)와 천(캔버스)이 물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남기는 것은 서로 다르다. 종이와 천은 서로 다른 반응을 통해 화면에 고저와 리듬을 만들어내고 결국, 작가의 반복되는 지워내기 행위를 거치면서 스스로 융화되어 음악적 조화를 구축한다. 작가의 밑작업, 드로잉은 하나의 화음으로 살아난다. ● 이런 강호은 작가의 작품은 흡사 '마이노러티 리포트'같다: 너무 작은 꽃의 형상, 대부분을 지워내고 결국 남게된 색채의 가냘픈 흔적, 화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고된 노동, 새로 태어난 種(작품)의 은은한 연주. 이 생명의 연주-, '마이노러티 리포트'는 어느 날 발견되어 감동을 주는 작은 생명처럼 견고하다.

강호은_Life-145112002 -2_캔버스와 종이에 아크릴채색_162.3×130.3cm_2002

회화적 문제 ● 작가는 우연적인 선택과 힘겨운 지우기 작업을 통해 이질적인 물질들의 충돌(종이/캔버스), 그리고 이것들의 저항 및 변화, 전개를 화면 위에 남겨놓는다. ● 연필이나 목탄이 캔버스와는 다른 물질이듯이, 작가는 캔버스와 다른 물질인 종이를 오려 붙이며 '드로잉'을 대신한다. 드로잉의 진화라고 할까, 물질의 치환이라고 할까. 또한 그리기보다는 지우기를 하고, 원칙을 갖고 질서에 따른 구성을 한다기보다는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전개 속에서 새로운 조화로움(질서)에 이른다. 즉 '드로잉해서 그린다'는 '오려붙여서 지운다'로 전환되고, 화면 속의 구성은 화면 위에 놓은 이질적인 물질들과의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인 만남(지워내기 행위)을 통해 우연적으로 전개시킨다. 서로의 저항은 우연의 조화(harmony)에 이르게 되고 이 결과가 작가가 말하는 '생명'인 것이다.

강호은_Life-16213002 -2_캔버스와 종이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02

강호은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 특징은 결과(작품)에 이르는 회화적 과정이 서로 다른 물질들의 충돌이 기록되는 과정이므로, 물질의 성질이 아주 섬세하게 드러나는 촉각적인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 촉각적인 특징이 관객에게는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것들로 확대되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강호은 작가의 작업은 대단히 직접적인 지각의 산물인 듯하다. 화면의 생성도 작가 지각의 흐름에 따라 우연적이고 자율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작품의 결과가 관객에게 가다가는 방식도 감각의 확대(촉각·시각·청각)를 통한 지각의 통합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통합'이라는 규모에 비해 체감되는 회화적 밀도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회화적 파토스라 해야할까-그런 자리가 비어있는 듯하다. 이 자리는 다음 작업의 가능지점이자 출발점이라 믿으며, 몇 겹의 색채가 지나가도 올이 드러나 있는 작가의 화면을 바라본다. ■ 남인숙

Vol.20021116a | 강호은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