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us

김영애展 / KIMYOUNGAE / 金英愛 / mixed media   2002_1118 ▶︎ 2002_1127 / 월요일 휴관

김영애_Jib IV_콜라그래프 프린트_36×28.8cm_200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조선화랑_CHOSUN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번지 코엑스 컨벤션센타 2층 Tel. +82.2.6000.5880 www.chosunartgallery.com

Domus- sourcesofshelter ● 종이 작가이자 판화가인 김영애는 그녀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의 타이틀을 'Domus' 라고 정했다. 그 타이틀은 그녀의 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에서의 삶과 그 삶을 일궈온 터전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Domus'(라틴어로 집) 라는 타이틀의 의미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애의 종이 부조 작품이든 판화 작품이든 어느 한 점 앞에만 서면 우리는 이 작가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가정과 가옥을 만들고 이루고 있는 재료와 구조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애의 작업을 통해 'Domus'는 집의 피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여러 가지 구조와 재료들이 '가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까지도 눈을 돌리게 한다. 여기에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며 사는 'Domus'의 여러 모습이 있다. 김영애는 1981년 서울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가사와 자녀 양육에만 전념하다가 1993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그곳 캔터베리대학교에 신입생으로 진학 후 6년간의 학업을 통해 판화와 종이부조 작업을 전공하고 2001년 석사과정을 마쳤다. "새로운 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 중에서도 언어와 주거 환경이 참 낯설고 어색해서 이민 초기에는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느라 무척 힘이 들었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처음에 느꼈던 어색함이나 소외감 같은 것은 조금씩 나아지고 새로운 나라와 그 문화와 관습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가진 동양적, 한국적인 것들과 합쳐져서 사고나 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제 모습을 보았어요" 처음에 작가는 뉴질랜드의 풍경과 건축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 대상들이 여러 판화작업과 드로잉을 거쳐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 그녀의 조형 언어는 기하학적으로 추상화 되어갔다. 그 후 첫 번째 한국 방문 때 전통보자기 전시회를 보게 되고, 그 보자기와 자신의 관련성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 그녀는 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의 섬유와 그 텍스처에 관심을 가지고 그 소재들과 기하학적 추상인 드로잉을 토대로 판화작업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후 2년간 그녀의 작업은 자신이 '표면(surface)과 구조(structure)'라고 부르는 색채와 텍스쳐, 그리고 구조에 집중되었다. 그 ''표면(surface)과 구조(structure)'는 물리적, 형이하학적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 형이상학적 영역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전통보자기 전시회를 본적이 있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름다운 기하학적 패턴과 보자기의 기능, 그리고 쓰다 남은 헝겊 조각들로 만들어낸 근면성까지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죠. 그 보자기들을 보면 그것들을 만들 손길뿐 아니라 만든 사람들의 심성까지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의 유년기와 그 시절 형편들을 기억나게 했지요. 보자기를 참고를 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마치 제 자신의 자서전의 페이지를 넘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작품에 쓰여진 소재들이 제 지난 날과 당시에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었으니까요." 김영애는 당시 색채와 텍스처의 리서치를 위하여 프랭크 스텔라에서 안토니오 타피에스까지 많은 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연구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또 미국의 퀼트작품과 그 역사, 재봉에 대한 리서치도 하게 되었다. "그 퀼트 작품들은 개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이상과 영감을 담고 있는 그 시대의 기록이기도 했어요."

김영애_Byok II_코튼지 캐스팅_131×198.8cm_2001
김영애_Untitled_콜라그래프 프린트_각 34.2×34.2cm_2002
김영애_Untitled_콜라그래프 프린트_64×64cm_2002

작가는 자신과 자녀들의 낡은 옷을 뜯고 헝겊 조각을 잘라내서 바느질로 꿰매고 재봉틀로 박아서 보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보자기로 꼴라그라프(collagraph)판을 만들어 판화 작품을 찍었다. 그 조각 조각의 헝겊들로 만들어진 그 작품들은 그녀 가족의 삶의 여정에 지리적, 문화적, 예술적 지도로 상징된다. "한 예로 제 치마와 아이들의 옷에서 잘라낸 조각들로 판을 만들고 드라이 포인트로 마무리를 한 작품이 있어요. 그 치마는 제가 남편과의 추억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던 것이어서 결국은 그 작품 속엔 우리 가족이 모두 다 있게 된 것이죠. 조각들의 배열은 시각적 효과를 염두로 결정되었지만, 그 조각들이 그렇게 한 작품 속에 엮이게 된 건 그 당시의 상황과 심적 상태를 반영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돼요. 제 작품의 그런 친밀한, 아주 개인적인 요소를 더 넓게 발전 시켜보고 싶었어요" 김영애의 대학 학업은 그녀를 기하학적 추상과 구조(construction)으로 내닫게 했다. 그리고 입체와 깊이에 끌리게 했으며, 덩어리차체보다는 그것을 받히고 있는 구조, 즉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점점 자라게 했다. 이 시기에 그녀의 작업에 큰 변화를 주는 두 가지의 일이 생기는데 하나는 리틀톤(크라이스트처치 근교 화산지대의 항구)에 자신의 작업실을 갖게 된 것 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캔터베리대학교에 입주 작가로 와 있던 종이 작가 류재구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작품 스케일에 압도 당했으며 그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펄프라는 매제를 시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항구가 내다보이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리틀톤 가옥의 베란다며, 지붕을 연상케 하는 드로잉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미니멀 작업을 하는 출발이 되었다. 그때부터 김영애의 작업은 평면적 판화에서 종이 부조의 입체로 발전하게 되었고, 여성스럽고 친밀한 헝겊을 떠나서 건축물이라는 더 넓은 의미의 'Domus'로 들어서게 되었다. 작가는 일상 생활 중 질서와 원칙을 세워나갔다. 그녀의 하루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가사, 그리고 작업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변 즉, 가정과 작업실 주변의 구조와 질서를 관찰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항구 근처를 산책하던 그녀는 오래된 집에서 뜯어낸 라스(lath)라는 낡은 건축자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19세기 뉴질랜드 가옥에 전형적으로 쓰이던 석고 벽 뒷면에 석고가 잘 붙도록 받히는 좁고 길다란 목재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찾고 있던 것들의 '뼈대'임을 알 수 있었어요. 마치 고고학적 발견 같았지요. 그것들을 모아다가 붙이고 배열하면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어요. 그것이 새로운 'Domus'의 발견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소재가 헝겊조각에서 건축 자재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작품 제작 과정도 바느질이나 재봉 질에서 톱질 망치질로 바뀌게 되었지요. 나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봐요. 그것은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또 주변을 관찰하면서 생긴 변화이니까요. 옷에서 뜯어낸 헝겊 조각 같이 집에서 뜯어낸 건축 자재들에서도 많은 것을 읽을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타일을 보면 타일공의 기술이나 그 타일이 붙어있던 집의 주인의 미감까지도 느낄 수가 있지요. 나는 그런 석고가 붙어있고, 금이 가거나 칠이 벗겨진 목재나, 조각이 떨어져 나간 타일, 또 녹슨 함석판 같은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아마도 그곳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냥 단순히 표면인 것은 없어요. 모두 세월과 풍파를 견디어 낸 기록의 겹으로 되어있어요" 그 후부터 김영애는 데몰리션 야드(demolition yard)라고 불리는 건축물 철거 후 쓸만한 건축자재들을 파는 곳에서 작품의 소재를 구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중고 건축 자재들은 낡은 헝겊 조각들처럼 그들만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재료들을 수집하여 스케일을 정하고 표면과 깊이를 짜맞추며 그것들의 원래의 구조와 역사를 찾아내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해낸다. 그녀의 그런 각고의 노력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여러 번의 개인전과 주요 그룹 전을 통해 뉴질랜드의 비평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최근 작품들은 그녀 주변 세계의 -현재와 과거- 벽과 담, 지붕의 재료와 구조를 재해석하고 추출한 결과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공간을 찾기 위한 노력하던" 과정에서 해체 구축되고(deconstructed), 변형된(reconfigured)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물리적 정신적, 그리고 이성적, 문화적 공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김영애의 표면의 배치와 색채의 배열은 단순히 그녀의 제작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종이 작품의 경우, 작품을 전시할 때 그 솜씨나 감각은 더 돋보인다. 작품 하나 하나 그 자체만으로도 당당하지만 작품들이 짝을 지여 걸렸을 때 더욱 뛰어난 균형과 조화를 발견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두 나라에 걸쳐진 작가 자신의 삶에서 그녀가 찾고자 노력했던 조화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 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명백한 존재의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애의 종이작품은 아주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그리고 인내심을 요구한다. 순면의 낡은 침대 커버를 구해서 우표 크기로 자르고 그것을 홀란더 비터(Hollander Beater)라는 기계로 펄프를 만든다. 그와 동시에 전기 톱이나 드릴, 망치 같은 여러 가지 연장들을 사용해서 건축자재로 모양을 만든 뒤 그 형태와 표면을 그대로 떠낼 수 있는 라텍스 몰드를 만든다. 그리고는 안료로 물들인 펄프를 그 몰드에 넣고 말려서 주조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이 마치 집 짓는 사람이나 목수같이 느껴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있다.

김영애_Untitled_코튼지 캐스팅_114×114cm_2002
김영애_Untitled_코튼지 캐스팅_73.2×44.5cm_2002

"한국말로 집(jib)은 영어에 있어서 하우스(house)와 홈(home)을 다 포함하죠. domus만큼이나 친근하고 다정한 말이에요. 그리고 요즘 많이 쓰는 석고 보드를 영어로 집 보드(Gib Board)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집과 발음이 같아요. 석고보드는 제가 작품에 많이 쓰는 라스(lath)를 대고 석고를 바르던 것이 발전된 것인데,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그것으로 지어졌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집의 재료나 구조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드로잉을 했어요. 특히 지붕이나 집 모양은 조형미도 있고 재미가 있었지요. 지붕은 여기 원주민인 마오리(maori)들에겐 조상들의 뼈대라고 아주 신성시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준비된 드로잉과 소재들로 형태를 만들고 라텍스를 여러 겹 발라서 몰드를 만드는데 라텍스 몰드가 얼마나 정교한 지 몰라요. 재료들이 갖고 있는 원래의 표면과 못 자국, 톱 자국이 다 그래도 나오지요. 그 라텍스 몰드에 펄프를 넣어서 말린 다음 몰드를 벗겨 내면 기가 막한 표면이 나오지요. 밝은 계통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펄프를 안료로 짙게 염색하는데 그 짙은 색채들이 작품의 입체감과 깊이를 더해주는 것 같아요"

김영애_Untitled_콜라그래프 프린트_43×29cm_2002

김영애의 검정이나 청색은 벨벳과 같이 짙고 깊다. 그 색들이 함석의 요철(corrugation)로 주조되었을 때는 마치 밤하늘이나 칠흑 같은 바다처럼 물결친다. 그리고 이런 색채와 텍스처, 즉 표면의 조화는 이 작품들에게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는 보편성을 갖게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들 개개인에게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해석하도록 해주기도 한다. 원래의 재료가 가진 물성을 그대로 살린 작가의 솜씨는 그 간결함에서 놀란 만하다.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재료의 완벽한 복제이지만 균형과 조화로 "뉴질랜드의 건축물만 아니라 더 멀리까지 더 많은 것을 잡아냈다" 라고 어느 건축가는 감탄하였다. "펄프로 떠 낸 종이 작품이던, 판화작품이던 제 작품은 모두 제 자신과 의식, 다시 말해 제 삶에 대한,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간에 대한 탐구이며 끊임 없는 질문의 산물이에요." 김영애는 모든 표면과 구조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다. 표면과 내면처럼, 또 사람의 겉과 속처럼. 따라서 그녀는 재활용된 소재들의 언어로 공간과, 그 공간의 사회적 문화적 코드(code)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게 있어서 건축 자재들은 단순한 집 짓는 재료 이상의 것이지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작업에 열정적으로 전념하는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이 김영애의 작품은 변화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것이 판화이든 종이 작품이든 그녀의 작품은 대단히 섬세한 손맛도 보여준다. 한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이주해 끊임없는 언어의 장해에 부딪히면서 잘 살아내고 또 성공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녀의 전시회, 'Domus'는 아직은 젊은 작가 김영애가 두 나라와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신이 얻고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또한 그녀의 작품과 작업은 우리들에게 개인들 사이의 조화와, 나아가서는 사회와 자연과의 조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용히 주장하고 있다. 이 점만으로도 그녀의 작업은 칭찬 받아야 한다. ■ 카산드라 푸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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