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거울

송심이展   2002_1127 ▶︎ 2002_1226

송심이_'나의 이야기 1' 중에서_종이에 디지털 출력_29.8×21cm_200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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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1127_수요일_05:00pm_갤러리 보다

갤러리 보다_2002_1127 ▶︎ 2002_1203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Cafe화랑 사계_2002_1128 ▶︎ 2002_1226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번지 Tel. 02_720_9734

1. 보이지 않거나 읽을 수 없는 어떤 상태에 관심이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송심이는 이런 상태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금 기억해보니 그렇다. 그는 어떤 조건들로 인하여 보이지 않게 되거나 아무 것도 없어 보이게 된 의사표현을 문제삼는다. ● 동기는 의사표현의 내용이 아닌, 이를 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의사가 意思인지 義士인지 아니면 醫師인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어 보인다. 보이지 않게끔 된 상황을 들이댄다. 의미 있게 비춰진다는 것은 미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 일상의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것이 아닌 못 보던 의미를 새겨볼 수 있게끔 한다면 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만드는 조건과 의사표현 관계는 보통사람을 힘들게 하고 저항하게끔 한다. 송심이에게 이 관계는 관심거리이다. 왜 그런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는 건지 의식하지 않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전달되지 않게끔 하는 어떤 상태를 설정해 놓고 이를 기꺼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작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보다는 전달되지 않지만'전달'하고픈 등대불만은 엿보이는 상태를 좋아하는 걸까. 나름대로는 잔혹함이다. ● 무언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은 형식상 진부하고 내용상 더 이상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보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거울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다. 사물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거울은 사실은 사물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걸 증명하기 위해 굳이 라캉의 이론까지 차출할 필요는 없다. 때론 거울은 지옥의 입구로 보이기도 한다. 죽고 나면 거울 저편의 세계로 안 간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본래부터 아예 보이지 않는 거울이 작가의 우상일 것이 틀림없다.

송심이_'병헌이는 하늘에 그림을 그립니다' 중에서_21×29.8cm_종이에 디지털 출력_2002

2. 보이지 않는 거울은 재현될 수 없다. 다시 등대불이다. '특별한 의미'가 재현될 수 있다면, 우상이 될 것이다. 모든 의미는 그로부터 충만하게 살아날 수 있다. 재현은 불가능하다. 상징일 뿐이다. 작가가 원하는 것은 '실현'이다. ● 나는 우상이 작동하기를 바란다. 특별한 의미란 무얼 말하는 걸까. 의미란 '특별하다'는 뜻이다. 보이는, 읽을 수 있는 글의 가독성은 사실 거짓말이다. 아련할수록 의미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 필요의 이론, 쾌락의 비밀과 문화이론의 전망, 우상이 작동한다면 혹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물신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뒤집어 보면 물신은 관객의 문제일 뿐이다. 다시 조건이 문제가 된다. 나도 조건의 감옥에 갇혀있다. 조건은 따지고 보면 감각과 감정의 감옥일 뿐이다. 마음만 바꾸면 될 일인가! ● 재현의 완성에 인생의 비밀이 있다면, 쾌락의 비밀도 그 안에 있다. 특별한 것의 재현이 완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도 나처럼 그 이유를 깨닫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 끊는다고 저들 보이는 것들이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조건이다. ● 보이지 않는 거울이 있다. 거울 저편에까지 의미의 닻을 내리면, 반영의 감옥은 사라진다. ■ 강성원

Vol.20021125b | 송심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