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미학의 Realism

SAC 2002 젊은 작가Ⅱ_이명복 회화展   2002_1204 ▶︎ 2002_1212

이명복_수상한 정물_한지에 아크릴채색_61×53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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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2_1204_수요일_04:3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전시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515

권력과 탐욕에 대한 이명복의 리얼리즘(Realism)-1. 들어가는 말 ● 지난 80년대 우리 미술계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민중미술의 등장이었다. 이 미술운동은 기존의 모더니즘 미학의 틀에서부터 벗어나 사회와 정치, 그리고 삶의 문제에 적극 개입했는데, 당시 화단의 관점에서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미술양식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미술은 문화운동으로 까지 발전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친 파급효과도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 그 새로운 흐름의 출발점에 젊은 이명복이 서 있었다. 그가 참여했던 「임술년」 그룹은 민중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미술그룹은 주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다루던 작가들이 모여 결성, 문명비판적인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미술사가 말해주듯 모든 양식이나 운동은 한계와 시효를 맞이하게 마련이다. 이 새로운 미술운동도 마찬가지로 점차 빛이 바래져갔고 급기야 여기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각자의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이명복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문제에 대한 자기성찰적 발언을 보여주는 작가로 남아있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올 해부터 시행한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이명복을 초대한 것도 이러한 작가의 살아있는 비판 의식에 있다는 판단이다. 그로서는 한동안 담금질해왔던 붓 날을 새롭게 선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화단에서도 참여미술을 보여주는 기회가 드물었던 터라 이 전시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근작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세계를 정리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명복_수상한 정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80cm_2002

2. 이명복의 비판의식과 그의 작품 ● 이명복은 이번 전시회에서 '권력의 오만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조소'라는 주제를 담았다. 이른바 특정 사회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권력 지향적 속성과 이에 따른 욕망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그린 것이다. 아울러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이 바라보는 삶의 부조리 문제를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를 통하여 보여주게 된다. ● 그는 특히 이 전시회에서 권력이라는 정치적인 문제와 인간의 오만한 행동을 중심구도로 설정했다. 이 같은 주제를 위한 그의 조형적 방법은 우선 '대상을 손으로 그린다'라는 회화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도 캔버스에 유화나 아크릴릭이라는 일반적인 재료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그의 그림은 대체로 인물, 풍경, 그리고 정물이라는 평면회화에서 다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복이 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러한 제작방법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눈과 태도에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보는 법을 부정하는 화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작가'로 그를 해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보는 방식'에 대해 다시 뒤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는 법'과 관련하여 그가 보여주는 사물과 공간인식의 방법은 일종의 '삐딱하게 바라보기'이다. 즉, 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되, 사물이나 외경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실물 또는 대상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을 변화시킨다. 가령 작품내용 설정상황에 따라 인물의 크기를 조정한다든지, 식물이나 과일의 다른 종(種)을 한 몸체에 결합시킨다든지 하는 방법이다. 또 풍경이나 사물을 거꾸로 뒤집어 배치하는 일도 그 예라 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엄연히 실재하는 사물을 아예 삭제해 버리기도 한다. 이 같은 시점의 변화나 도상들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 그로 인한 서술적 요소가 곧 그의 회화에 관심이 가게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 이와 함께 그가 선택하고 있는 도상들에 대한 상징적 해석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의 그림에는 종종 고깃덩어리와 각종 음식, 의자, 커튼, 테이블, 계단 등의 사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도상들은 그의 회화적 알레고리를 뒷받침하는데, 작품 주제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공간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도상들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그의 회화는 다음의 인물, 풍경, 정물화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이명복_야간비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227cm_2002
이명복_홍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02

권력과 그 도구로서의 「인물」● 이명복이 당초부터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부분은 아무래도 인물묘사로 판단된다. 그가 80년대 이후 줄곧 보여준 작품이 대체로 인물을 통하여 사회 비판적 시각을 전달했다는 점은 미술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번 전시회에도 그가 추구하는 주제에 걸맞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특히 그는 인물화에 있어서 '서술적'narrative 표현에 관심을 기울였다. 단순한 묘사와는 달리 이 서술적 방법은 특정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구조와 원동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명복은 권력, 인간의 오만, 욕망이라는 구도에 근접하는 인물을 설정하여 화면에 도입하였다. 때로는 익명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실제인물의 묘사를 통해 그려지기도 한다. 여기서 생존인물의 공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시사적 전달성과 소통적 측면에 있어서 우회적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그의 작품태도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같은 인물화는 여러 가지 시사적인 사건, 상황과 맞물려 있는데, 풍자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해학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조소 어린 시각으로 묘사된다. ● 출품작 「위대한 오만」은 소위 권력자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보여지는 외부세계에 대한 힘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즉, 세계의 대통령이 내뱉는 언어 한마디가 곧 폭력과 상처로 발전되는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그 인물은 놀이기구의 일부로 할애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오만에 대한 일종의 비웃음으로 그려지고 있다. ● 작품 「아이들이 커졌어요」또한 권력의 허무함을 그린 대표적 예이다. 얼핏보면 국가 홍보용 스틸사진에서 차용해왔다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원로 정치가의 모습이 어린이들의 신체비례와 거의 동일하게 묘사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는 위축된 노 정치인의 위상과 관련된 작가 개인적 실망감을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작가 자신을 정치인, 부패한 공직자와 같은 포즈로 그려 넣은 「세 남자」에서는 작가의 욕망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곧 자신도 결국 하나의 인간일 뿐이란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다. 결국 작가는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 자신들에게도 반성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인물화 역시 '권력과 탐욕'에 관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그려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도 국내외 여러 정치인과 권력의 끈을 잡고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작품들은 인간의 욕망과 허세를 드러내는 인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겠다.

이명복_도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63cm_2001
이명복_드디어 날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60cm_2001

권위의 빈 공간- 해석된 「풍경」● 지난 90년대에 한동안 우리 땅에 대한 관심을 정교한 필치로 담아 내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풍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이전의 작업에서도 이명복은 소위 풍경이라는 의미를 단순히 자연의 외관을 담기보다는 그 땅의 의미에 더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다. 이러한 요소는 출품작 「산」에 이르러 더욱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쾌청하게 맑은 날, 싱그럽게 묘사된 산이며, 나무,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한 앞마당의 잔디는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청와대가 없어진 상태의 풍경이라는 것을 곧 알게된다. 작가는 당연히 있어야 할 건물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같이 특정 장소가 가지는 상징성, 그것도 극히 '권위 있는' 대상에 대해 메스를 가한 한 미술가의 행위는 분명 불경(不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없어도 좋은 곳'임을 암시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장소성이 주는 권위와 그 익숙함에 쉽게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작가는 우리가 가지는 이러한 감각의 무중력 상태를 흔들어 깨움으로써, 하나의 장소를 통하여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 다른 작품인 「여의도 풍경」도 같은 흐름을 가진다. 이 역시 국회의사당 건물을 없애버린 여의도의 밤 풍경을 그림으로써 정치부재(不在)라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와 같이 장소가 가지는 당위성을 부정하는 방법은 인물화를 통한 직접적인 비판과는 또 다른 조형적 통로를 보여준다 하겠다. ● 아울러 일련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면서 사물을 배치시키는 작업 또한 그가 즐겨 다루는 방법의 하나다. 특히 도시와 밤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빈번히 등장하게 된다. 거대도시의 하늘에 소를 배치한 작품 「드디어 날다」는 광우병으로 죽은 소를 통하여 인간의 욕망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이 즐겨 소비하는 대표적 육류의 하나인 소를 내세워 인간의 욕심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소비문화에 몰입하는 뒷면에는 신종 병역들의 등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작품에서 말하고 있고, 그것이 도시라는 풍요사회가 낳은 결과임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즉,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소는 인공적인 단백질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산물로, 아이러니 하게도 그 소의 섭취를 통하여 맞이하는 질병과 이에 연관된 죽음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른바 '풍요의 질병'을 보답 받는 오늘날의 실태를 빗대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소의 소비는 부유의 상징으로 기능해왔지만, 여기서의 죽은 소는 죽음에 이르는 지구촌의 인간으로 대체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밤의 풍경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인 「야간비행」은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전투기가 그려진 작품이다. 거꾸로 뒤집힌 도시의 밤 풍경이 주는 어두움은 뒷거래와 기만, 또는 밀실 정치적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 알려진 군수비리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느끼게 하는데, 이와 같이 이명복의 풍경은 자연주의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사회학적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여전히 미심쩍은 곳으로 남아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다음의 수상한 정물시리즈로 이어진다.

이명복_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02

인간의 욕망과 수상한 「정물」● 정물 역시 심미주의적 관점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풍경화와 같은 맥락이다. 그의 정물은 장식성을 가지는 일반적 정물화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실망스러운 것이다. 이른바 일련의 「수상한 정물」로 이름 붙여진 그의 정물화시리즈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먹거리에 대해 그린 것이다. 금방 푸줏간에서 잘라다 놓은 듯한 고깃덩어리, 두 가지 종(種)이 합쳐진 기이한 과일이나 채소, 거대한 해장국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 그 중에서 '사과와 배'라는 종류가 다른 과일을 한 몸체에 붙여 그린 작품에서 이명복은 최근의 생명공학 기술이 생산해내는 일종의 폭력성을 거론한다. 이른바 바이오테크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키메라( chimera, 異組織 共生體 :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세포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개체)의 존재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를 그리고 있다. 즉, 그는 유전자 조작 행위에 따른 결과물로서 만들어진 이 같은 변종의 문제를 그려놓음으로써, 오늘날 종(種)의 본질이나 고유의 존재성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려는 인간의 비윤리적, 비도덕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 이와 동시에 이명복은 유전자조작의 결과로 낳은 이러한 양성(兩性)의 의미를 정치적 변절이라는 의미로 치환해낸다. 특히 '배추와 닭'이 결합된 작품에서는 이 같은 관점을 잘 발견할 수 있다. 작품 하단에 잘 가꾸어진 조경수와 잔디를 배경으로 하늘에 그려진 한 몸 된 배추와 닭은 언제든지 넘나듬이 가능한 유기체-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로 묘사된다. 자신의 자리를 위하여 야누스적인 변신을 거듭하는 이 시대의 권력가, 정치인은 이명복에 의해 또 다른 형태의 키메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 권력과 먹을거리에 대한 관계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에게서도 잘 드러난다. 「고기」라 이름 붙여진 정물화에서는 덩그러이 잘라놓은 쇠고기를 묘사하였다. 쇠고기 섭취는 오랫동안 사회적 질서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강력한 조정자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부자와 부유함, 가난한 노동자와 빈곤을 구별짓는 계급의 표시로 사용되어 왔다. 레슬리 고프턴(Leslie Gofton)이 "식탁의 법칙: 식품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학적 요소들"이라는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음식섭취가 ......사회적 차별의 수단이자 계급 불평등의 구현물'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이명복은 쇠고기가 단순히 우리 일상에서의 먹을거리라는 의미를 넘어, 쇠고기의 선택은 곧 권력과 계급을 함축하는 동시에 사회적 욕구를 드러내고 있음을 말한다. 작가는 식탁에 즐겨 오르는 먹을거리를 화면의 중심소재로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탐욕을 개입시키게 된다. ● 작품 「홍수」도 마찬가지의 맥락을 지닌다. 이 작품은 해장국을 확대하여 그려놓음으로써 먹을거리의 홍수라는 의미로도 그려내고 있다. 곧, 확대되어 그려진 해장국의 부유물은 거대한 먹을거리의 세계에서 떠도는 인간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이 해장국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먹을 것, 곧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명예든 간에 끝없이 추구하려드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었다. ● 작품 「도살」은 엄격히 말하자면 순수 정물화는 아니지만 작품 내에서 정물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작품이다. 실제로는 정물과 인물이 상호 결합된 형태를 취하는 작품이지만 일종의 연출된 공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아 잠시 거론하기로 한다. 화면에서 발견되듯이 날고기가 덩그러이 놓이거나 매달린 모습은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탐욕이라는 상징적 소도구 그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실린다. 특히 여기서의 고깃덩어리는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갖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나 수틴(Chaim Soutine)의 수육(獸肉)에서 드러내 보여지는 광폭성(狂暴性) 또는 주관적 표현성과 연관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명복의 날고기는 또 다른 상징을 담는다. 즉, 날 것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인 껍질을 벗긴다는 것, 그리고 일정한 부위로 잘라낸다는 행위에 깃든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의 의지에 의해 세상은 재단되며, 권력에 의해 '디자인'되는 현실세계와의 관계성을 설정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지난 해 발생한 미 테러사건과 직접 관련하여 만들어졌지만, 권력과 관련한 인간의 비이성적 행위에 대한 작가의 포괄적 시각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명복_위대한 오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2

삶의 부조리를 비추는 영상 ● 이번 전시회에서 이명복은 평면회화에서의 사회정치적 담론을 영상이라는 더욱 적극적인 방법으로 연계시킨다. 이러한 자세는 평면회화가 지니고 있는 한계성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영상매체 고유의 주목성과 리얼리티에 그 직접적인 동기를 찿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존의 회화가 어느 정도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전개되는 반면, 다큐멘터리 영상이 주는 기록성과 실재감은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시사적인 문제와 잘 결부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의 영상은 고도의 테크닉을 갖춘 가상현실의 세계도 아니며, 첨단 테크놀러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 주변을 담아 편집한 영상물임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 이미지를 상회하는 수준의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지난 해 9.11 미 테러사건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바라볼 때 갖는 이미지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폭력과 상처의 21세기가 재편집되어 소개된다. 동시에 국내의 정치문제도 거론된다. 이 역시 다큐멘터리 영상에 기초한 편집작업에 의한 것으로써, 매번 권력을 위하여 변신을 거듭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다.

이명복_수상한 정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30cm_2002

3. 이명복에 대한 기대 ● 이명복의 회화는 사실주의적인 화법의 기반에서 이루어졌지만 단순히 외양에 충실한 사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의 사실성'에 작품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작가 자신이 세계를 올바르게 읽어내고자 하며, 또 정확히 전달하고자하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리얼리스트라 여겨진다. '예술가의 역할은 삶을 왜곡하지 않고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하는 기능을 가져야한다'는 경구가 이명복에게 곧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 그러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의 미술은 어쩌면 소위 현대미술의 흐름에 둔감할 수 있으며, 더욱이 컬렉터의 구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작업은 다소 무모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투명하게 응시하고자 하는 젊은 시각을 가졌다. 그의 눈은 우리가 매일 알거나 체험하면서도 대충 넘겨버리는 일상을 오히려 들추어내는 눈이라 생각된다. ● 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명복은 한사람의 붓을 든 사회비평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그의 시사적인 시각과 관심 때문이라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대적 발언과 섬세한 비판적 언어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사회의 주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그러나 정작 이명복은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데 있어서 일반 관람객들이 마치 신문스크랩처럼 가볍게 읽어 나가길 원한다. 심각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미술이 심오한 철학이 담긴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신문 삽화같이 가볍게 즐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바램이 실현될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여러 개의 안테나를 소유한 작가이고, 시대를 감지하고 비추는 거울로서의「작가」로 지속적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감윤조

Vol.20021203a | 이명복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