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서다

임현락展 / LIMHYUNLAK / 林賢洛 / painting.installation   2002_1119 ▶︎ 2002_1208 / 월요일 휴관

임현락_나무들 서다_폴리에스테르에 먹_각 400×105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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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바람의 바람, 나무의 나무, 맑고 깊은 소리 ● 임현락의 그림은 바람을 담아낸다. 종이 위로 입김을 불어넣듯 한줄기 바람으로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그에게 그림은 호흡의 흐름을 끌어내고 다스리며, 하나가 되는 결과이다. 호흡의 이치가 그러하듯 임현락의 손끝에 잡힌 붓은 강제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놔두는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오는 정신적 긴장과 그 긴장을 읽어내는 몸의 반응이 어떤 평온함의 순간에 멈춤으로써 그는 호흡을 완성한다. 호흡은 길게, 때로는 짧게 진행되면서 작은 바람, 낮은 바람, 고요한 바람이 되어 그림 위로 머문다. 무엇을 그린다는 사실이 갖는 완결성보다는, 그려가는 중도의 과정과 그 미완의 의미에 문을 여는 행동이 바람처럼 남겨져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일은 바람의 기운과 그 흐름의 이치 속에서 존립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는 바람처럼, 그 운동의 자유자재함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그림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임현락_나무들 서다_폴리에스테르에 먹_각 400×105cm_2002
임현락_나무들 서다_폴리에스테르에 먹_각 400×105cm_2002

'나무들 서다'라는 명제는, 그런 점에서 나무의 형상을 그리기보다는 나무의 호흡을 그린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나무의 '솟아남'은 허공을 가르고,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한번의 깊고도 유연한 호흡의 결과일 것이니 말이다. 아래에서 위로, 그러나 단순히 일직선적인 방향이 아니라 공간에 몸을 던지는 방식으로 움직임의 리듬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호흡은 길게 늘어뜨려진 실크천 위로 던져지면서 자신의 몸을 드러낸다. 그리고 전통회화의 두루마리 형식으로 천정에서 바닥까지 천을 드리워 하늘과 땅의 거리를 말한다. 나무들의 몸은, 혹은 그 그림자들은 수 십장의 반투명 실크천에 그려져 전시장을 가로지르면서 설치될 것이다. 그리고 관람객은 자신의 동선에 따라 미세한 바람을 만들어 나무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관람객은 숲처럼 내려뜨려진 반투명 나무들을 헤치고 나가 나무들의 반응을 직접 겪어낼 수도 있다. 숲을 지나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면 나무들은 서로의 몸을 비쳐내고 감추면서 겹겹의 공간을 깊이로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 시(詩)적인 깊이를 느끼는 순간, 혹시 노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다른 한편의 전시실에는 자연광이 비치는 곳에서 나무들이 떨어지도록 배치되어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작은 창으로 빛이 스며들면서 반투명의 천에 얹혀진 나무는 빛을 담아내다가 뱉어내고, 다시 품에 안다가는 쏟아내는 운동을 할 것이다. 빛 속에서 나무는 생명을 노래하고, 거듭남의 이치를 보여줄 것이다. 나무는 맑고 깊은 소리로 빛의 청명함을 감싸고, 어둠의 내면을 다스리며 다시 빛으로, 또다시 어둠으로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빛 속에서 나무는 빛의 시간적 변화를 그려내고, 공간적 체험을 만들어낸다. 시간과 공간은 변화 속에서 살아 숨쉬게 되고, 변화 속에서 역동성을 부여한다. 나무는 그 변화의 한 가운데서 삶의 이치를, 단절과 연속성으로 이어낸다. 나무는 몸이고 마음이며, 실체이고 허상이다. 나무는 꽉 찬 자리이고 빈 자리이며, 현실이고 꿈이다.

임현락_나무들 서다_한지에 먹_195×520cm_가변크기 벽면부착_2002
임현락_나무들 서다_한지에 먹_각 195×30cm_2002
임현락_나무들 서다_폴리에스테르에 먹_각 400×105cm_2002

오늘날 회화라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를 묻는다. 그림 그린다는 일이 기능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급변하는 문화 상황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밖에는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굴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실천을 행함으로써 그림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행동'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 행동이란 거울과도 같아 자신을 비판적으로 비춰내는 성찰의 과정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은 이전의 그림의 틀을 버릴 수 있고, 그림의 의미를 삶과 의식의 공감대 속에서 보다 근본적이고도 가치론적인 것으로 살찌울 수 있다. 임현락의 그림 그리는 일이 또 그렇게 해서 '살아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바라봄'의 감동을 허락하며, '명료함'을 이미지와 소리로 이어내게 된다. 살아가는 일과 바람을 느끼는 일, 나무를 바라보는 일과 호흡의 리듬에 귀기울이는 일, 붓질을 따르는 일과 멈추는 일, 선(線)을 그리는 일과 지우는 일, 그 많은 모순과 역설의 조건을 관통하는 일, 그것이 삶이고 예술이라는 진실로 귀결되는 것임을, 그는 말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 박신의

Vol.20021204a | 임현락展 / LIMHYUNLAK / 林賢洛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