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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회화展   2002_1211 ▶︎ 2002_1220

권희정_풀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02

초대일시_2002_1211_수요일_06:3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www.galleryfish.com

초기 공공 교통수단 이었던 기차, 전차가 일반화되기 전인 불과 200-300년 전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말없이 몇 분이나 쳐다보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소규모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이 발달되고 도로 주변에 아케이드(상점가)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구매(소비)를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관계의 중심을 종래의 '귀'를 매개로 한 것에서 '눈'을 매개로 한 것으로 옮겨 놓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대화(對話)함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봄(seeing)'으로서 만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봄(seeing)'으로서의 만남은 대부분 지각이라는 통로에 의미 있는 형태를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관계도 형성하지 못하는 표피적인 만남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또한 이러한 만남은 '기억'으로도 연결 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와도 단절된다. 어떤 만남 들은 억지로 기억되기 위하여 스냅사진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져 간직되기도 한다. 그러나 스냅사진은 그 안에 '기억될 것'이라기보다는 언젠가는 '잊어버리게 되어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과 동시에 단절이라는 이중적 성격이 분명히 있다.

권희정_즙(汁)_캔버스에 유채_28×34cm_2002
권희정_즙(汁)_캔버스에 유채_28×34cm_2002

나는 사진기를 들고 내가 자주 다니던 곳, 나에게 익숙한 곳을 다니며 무작위로 스냅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 안의 사람들의 관계를 내 나름대로 설정하여 그림을 그린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소한 도시인의 일상 속에 지각이라는 통로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의 순간적인 만남, 사소한 행위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나 연극 속의 인물들은 아무리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주어진 배역과 역할, 즉 정해진 관계를 지니고 있다. 나의 그림 속의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그저 스쳐 가는 사이였을 지라도 그림이라는 틀, 무대를 통해서 다양한 차원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또 이러한 관계는 지각이라는 통로를 통해 관람객에까지 연결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관계들은 그 미래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권희정_데자부_캔버스에 유채_65×80cm_2002
권희정_데자부_캔버스에 유채_28×34cm_2002

나의 작업은 2000년부터 'Passing Through'라는 제목의 연작으로 시작해서 하나의 방향으로 변화하여 왔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후 2001년까지 뉴욕에 머물면서,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 주변, 뉴욕의 도심, 작업실 부근의 사람들을 스냅사진으로 담아 이를 기초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분당 신도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쇼핑몰 형식의 백화점인 삼성플라자, 멀티플렉스 CGV 같은 소비형 공간에 밀집된 사람들, 슈퍼마켓에 쌓여있는 야채나 과일, 무미건조한 건축물....... 이들은 모두 내 작품의 소재들이며 그림으로 기록되고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다. 미국에서의 작업들이 일정한 형식과 크기를 가진 작업들이었다면 요즈음 나의 작업들은 다양화되었으며 때로는 완성된 작업들을 본 후 떠오른 즉각적인 심상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평범하고 건조한 일상을 그리는 작업들은 장소와 익숙한 체험을 연결시키는 고유의 질서라는 고리를 끊어 가는 과정이다. 결국 나의 그림 그리기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삶의 순간 순간에 숨겨진 '낯선 울림'을 찾아가는 역추적 여행과도 같다. ● 나는 이번에 대입시험 이후 처음으로 파를 그렸다. 완성된 그림은 처음에는 '풀'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했지만 곧 대학 입시 때 그렸던 그림들을 떠올리게 했고 그것들과 현재의 그림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이 그림은 그때에 수채화로 그린 그림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문득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캔버스 위에 그려진 파를 보고 비닐봉지 속에 파 한 단이나 도마 위에 썰어진 파를 떠올리지 않고 고3때 수채화로 그렸던 파가 생각났을까? 사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파를 써는데도 말이다. ■ 권희정

Vol.20021215a | 권희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