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반복

이정훈 조각展   2002_1218 ▶︎ 2002_1230

이정훈_무제(부제-divine)_아마포_64×59×4cm_1999

초대일시_2002_1218_수요일_05:00pm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반-형태(anti-form), 노동의 반복-전통적 조각에 저항하는 형태와 재료 ● 시간이라는 것, 형태 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을까? 그것을 시각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시계라는 것을 만들었다. 끊임없이 그저 계속되는 그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달력이라는 것도 만들고, 해(年)를 만들어 숫자와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해의 뜸과 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풀이 되고, 생노병사가 반복되며, 그렇게 쉼없이 시간은 간다. ● 자연물에서도 우리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 나무줄기의 단면에는 그 지난 시간이 나타난다. 이정훈의 작품 「3시간 3개월」은 시간을 시각화한것 같다. 그는 종이를 말아 동심원을 돌며 붙여나갔다. 하루 3시간, 3개월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해나갔다. 그리하여 지름 1미터 가까운 크기가 됐다. 「감싸기」시리즈는 모두 이런 똑같은 일의 반복을 통해 만든 작품들이다.

이정훈_돌고, 돌고, 돌고_한지_90×90×4cm_2000
이정훈_40년_아마포, 한지_182×182×20cm_2002

"우리는 각자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일정한 패턴의 생활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일련의 행동들,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늙고 죽는 삶의 과정들은 계속 반복됩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인생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감싸기」시리즈에는 그러니까 아주 단순한 노동이긴 하지만, 엄청난 노동이 압축되어 있다. '노동의 반복'은 그의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노동을 통해 대단한 규모의 멋진 구조의 작품을 만들지 않고 있다. 부조처럼 벽면에서 조금 도드라진, 되풀이 감싸며 커져간 종이덩이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 작품의 형태는 전통적인 조각의 형태와 그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그것은 고의적이다. 그가 의미없이 누드로 서있는 흔한 '여인 입상'을 모를 리 없으며, 쇠나 돌덩이로 이루어진 흔해빠진 '추상조각'을 생각해보지 않았을리가 없다. ● 이정훈 작품의 특징은 그것이 조각의 오랜 역사에서 비켜 서있다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의 형태도 그러하지만 그 재료 또한 비전통적이다. 전통적으로 조각 작품은 견고한 물질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중력에 저항하며 공간을 점유하고 서있다. 전통 조각은 대개 단단한 쇠나 나무나 돌덩어리로서, 더 이상 손 댈 수 없는 형태로 제작이 완료된 채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대체로 값나가는 물질로서 거의 반영구적으로 존재한다. ● 그러나 이정훈의 작품은 천과 종이 등 부드럽고 유연한 물질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그것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쳐지며, 우연히 구부러지고, 때론 흐느적거린다. 한지, 전화번호부 종이, 잡지 종이, 버려진 천 등을 꼬거나 감싸기 해 만들어진 그것들은 전혀 귀한 재료가 아니다. 그리고 그 영속성도 심히 의심되는 물체들이다. 그것들은 또한 완결된 조각적 덩어리라기보다, 그러니까 더 하고(돌리고 더 꼬고) 싶다면 계속할 수도 있는 상태에서 일단 진행을 멈춘 작업이다.

이정훈_감싸기2_한지_80×44×4cm_2001
이정훈_돌아온 후_잡지_59×40×3.5cm_2002

반-형태(Anti-form)와 포스트-미니멀리즘 ● 그러한 재료가 단순반복적 노동과 어우러져 작품이 된다. 다시 말해 그러한 재료와 노동이 어우러져 나타난 형태, 그것이 이정훈 작품의 형식이자 내용이다. ● 그것은 크게 보아 세가지 형식으로 나타난다. '감싸기', '꼬고 땋기' 그리고 '구조물 만들기'가 그것이다. 긴장된 표면의 '구조물'은 때로 '감싸기'와 '땋기'와 함께 병치되고 충돌 한다. 「버드나무」시리즈와 「2000가닥」 등은 그 좋은 예다. 꼬이고 땋은 것들이 모두 딱딱한 질감의 물체에서 폭포처럼 흘러나오고 있다. 그 딱딱한 것과 흘러나오는 것은 색깔과 표면 질감에서 대조적이다. ● 그런데 나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특별한 여성적인 감각과 노동을 느끼게 된다. 무엇을 땋기, 잇기, 감싸기 등 손가락으로 하는 일은 보통 여성적인 일로 인식되고 있다. 나는 이점에 자꾸 눈길이 간다. 여기에서 작가가 술회한 유년기의 기억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 "부모님이 직장에 다니셔서 난 유년을 할머니와 함께 지냈어요. 할머니는 그때 작은 돈이라도 벌고자 구슬백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난 매일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를 도와 구슬을 꿰는 일을 했었지요.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만두 빚는 일도 했고, 도토리를 줍고 말리는 일도 했었습니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그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함께 했어요." ● 그의 유년시절이 오늘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를 따라 지점토로 탈을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송파산대놀이' 전수자이시고, 수많은 제자를 길렀거든요. 탈을 만드는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따라 나도 늘 지점토 위에 한지를 붙이고 색을 칠했습니다." 그가 하는 반복적인 '일', 그리고 집착적으로 사용하는 '한지'는 이러한 그의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그의 표현형식은 이른바 반-형태적(anti-formal)이다. 그의 작품을 미국 미술의 흐름속에서 본다면, 60년대 후반에 루시 리파드(Lucy Lippard)가 기획했던 이른바 "기이한 추상(Eccentric Abstraction)'전시회를 상기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그 전시회엔 루이스 부르즈와(Louise Bourgeois)와 에바 헤쎄(Eva Hesse) 등 당시 주류의 추상미술과 매우 다른 성향의 작품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 후에 핀커스 위튼(Pincus-Witten)이 포스트 미니멀리즘(Post-Minimalism)이라 불렀던 에바 헤쎄나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작품들과 이정훈의 작품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핀커스 위튼은 미니멀리즘의 딱딱함과 엄격함에 저항하는 표현주의적이며 제스츄어가 살아있는 일군의 작품들을 그렇게 불렀다.

이정훈_타원의 계단_아마포, 한지_240×154×122cm_2002

이정훈의 작가적 성향은 이러한 작가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의 의식과 감수성은 '반-형태'의 입장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존 조각가들처럼 형태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에게는 그러한 작업방식이 부자연스럽고 형식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에게 있어 '무질서'는 또 하나의 미학적 구조이며, 그래서 그는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병치·대조를 통해 이 세계의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그는 한지나 천처럼 값싸고, 흔하고, 부드럽고, 쉽게 소멸할 수 있는 재료로,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이 세상의 풍경과 삶을 말하고 노래한다. ■ 이태호

Vol.20021220a | 이정훈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