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Roentgen)의 정원

한기창展   2002_1211 ▶︎ 2002_1231 / 월요일 휴관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100×100cm_2002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한기창은 X-선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X-선 사진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작가가 직접 구한 것이다. 때로는 어렵게, 때로는 쉽게 X-선 사진을 구하면서 마치 뢴트겐의 발명품을 채집하듯, 혹은 숱한 인간과 동물의 상처의 흔적을 품에 안듯 모든 죽어버린 이미지들을 모아낸다. 강한 투과성을 가진 빛으로 그려진 신체 안의 이미지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듯 창백한 모습이다. 병과 상처 부위를 알고 고치기 위해 찍는 신체 내부의 현실이지만, 버려진 x-선 사진 속에서 치유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기창은 그 사진들을 다시 품안에 안는다. 그것은 모든 아픈 자들의 고통과 치유의 희망이 담긴 기억이기 때문이다. 병원의 X-선 촬영대 위에 누워 온몸이 스캐닝 되어 뼈만 남는 순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원할 수 있을까… 그런 되뇌임과 생각들도 함께 모아내면서 말이다.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90×90cm_2002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162×150cm_2002

이렇게 하여 모여진 X-선 사진들은 광고판으로 사용되는 파나플렉스 천위로 하얗게 윤곽이 드러난다. 대치로 새로운 이미지의 윤곽선은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이다. 이름모를 꽃과 꽃봉오리, 가느다란 가지, 길게 늘어뜨려진 풀잎 등이 하얗게 모양을 만든다. 그 하얀 자리로 다시 여러 형태로 잘린 X-선 사진들이 콜라주처럼 때로는 모자이크처럼 붙여진다. 손가락 사진, 동물 머리의 사진, 척추 사진, 뼈에 박힌 쇠가 보이는 사진, 바스러진 상태의 뼈가 보이는 사진, 변형된 신체 부위 사진들이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화면을 가지고 형광등을 사용하는 광고판의 형태 그대로 판을 짠다. 형광들을 판안에 넣고 전기를 주면 X-선 사진들이 빛을 받아 형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화면 전체에 송진이 섞인 밀랍을 칠해주면, X-선 사진들의 접착에 효과를 주면서도 화면 위로 발하는 빛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마무리 작업이 있게 된다. 그 마무리로 화면 위로는 얕은 마티에르 효과가 만들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기운을 만들어준다.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480×680cm_2002

X-선 사진이 갖는 우울함, 싸늘함 위로 우리는 살아있는 자의 예비적 죽음의 이미지와 뼈만 남은 생명체의 쓸쓸한 혹은 불길한 그림자를 본다. X-선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을 갖지 않은 이가 없으리라. X-선 촬영실에서의 어떤 숨죽이게 되는 상황, 사실 찍는 순간 '숨 멈추시고…'라는 지시나 '움직이지 마시고…'라는 지시에 꼭 따라야 하니 말이다. 그 순간에는 누구라도 잠시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사진 촬영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죽음의 이미지를 관통하면서 생명에의 염원을 갖게 된다. 그 싸늘한 그림자를 보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워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기창이 그 그림자들을, 삶을 그리워하는 그 앙상한 죽음의 그림자들을 다시 모아내는 것이다. 그림자 속에 묻어있는 숱한 상처들은 그의 손을 통해 어루만져지고 감싸안아지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병원에서 만들어져 폐기된 사진들은 다시 빛으로 태어나 아름다운 꽃들로, 식물로, 산수풍경으로 성형된다. 그 풍경이 마치 달밤의 아름답고 교교한 분위기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X-선의 발명자 뢴트겐에게 정원을 선물하려는 것인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52×525cm_2002

정원에 펼쳐진 꽃들과 식물들의 이미지는 매우 선적이고 리드미컬하며, 결코 과하지 않은 움직임이 있는 동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래서 정교한 맛과 조형적 신선함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X-선 사진의 아름다운 변형과 해학적 반전이라는 효과에서 더 큰 발전의 기쁨을 갖게 한다. 우울한 이미지를 밝고 투명하게 바꾸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재치를 그 우울의 분위기를 떼어버린다는 의미에서의 반전(反轉)의 효과란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목표가 될 것이다. 한기창은 그런 반전의 효과를 단순히 조형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문화론적인 맥락에서 집중하려는 것 같다. 폐기된 상처를 살린다는 일, 그러나 그렇게 살린다는 것이 이미 외과적 성형 혹은 정형의 형태라는 점, 그래서 언뜻 아름다운 꽃과 식물의 형태이지만 이미 사이보그적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러나 그럼에도 생명력은 남아있다는 것, 이런 의미의 과정이 오히려 한기창의 작업을 훨씬 구체적이고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고 본다. 거의 사이보그적인 형태로 다시 태어난 뢴트겐의 X-선과 그 그림자들, 그것들이 또 다른 삶을 노래하니 다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한기창_뢴트겐의 정원_라이트박스에 파나플렉스, X-선 필름, 과슈_가변설치_2002

한기창은 동양화를 전공하였으나,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에서의 장르적 제한을 두지 않았던 작가다. 무엇보다도 동양화가 갖는 재료적 한계를 탈피하고자 다양한 재료기법에서의 실험을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작가로서의 투철함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그의 면모가 궁극적으로는 삶에 늘 가깝게 가려는 자세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벽화 작업의 주요 기법인 프레스코 방식으로 익명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나, 이번 전시처럼 X-선 사진을 통한 정형(整形)적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삶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그가 겪었던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전신을 깁스한 상태로 1년 반의 회복기를 지낸 경험이 이번 작업과 무관한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의 삶도 정형의 기술로 지탱하는 것이며, 뼈와 뼈를 이어주고 맞춰주는 정형의 기술과, 없어진 뼈를 대체할 이물질과 따뜻하게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하지 않는 한, 그 삶이 어렵다는 사실을 작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모든 삶이 어떤 의미에서 정형의 기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삶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이미 정형이라는 인위의 조건 속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삶에 반하는 것들과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뢴트겐의 정원은 아름답다. ■ 박신의

Vol.20021223a | 한기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