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외침

안해룡 다큐멘터리 영상展   2002_1228 ▶︎ 2003_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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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아트하우스 미디어 갤러리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내 Tel. 02_2002_7777

『침묵의 외침 _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목소리』展을 열며 ● 일제 시기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한국의 어린 처녀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찢어진 자신의 육신을 보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켠으로 죽음이 되어 현지에 묻히거나 더러워진 자신의 육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고향에서 멀어진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온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결코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 그들은 고난과 고통을 혼자 몸으로 인내하며 50여 년 세월을 침묵으로 살아왔다. 그들은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이 각인의 세월을 세상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피눈물을 씻어내며 말하기 시작한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은 일본이 은폐하고 있는 추악한 전쟁과 식민지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분연한 용기였다. ● 그들은 50여 년의 침묵을 깨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제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이제 그들의 피젖은 육체와 정신에 대한 육성의 증언을 담아 역사의 기록으로 담아 세상과 새로운 방식으로 또 다양한 공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기억과 소중한 꿈들은 처참하고 처절하게 짖밟혔다. 소중했던 기억들이 피눈물로 지워졌다. 상처들. 이 상처들은 침묵의 상처로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묻혀버리지 않았다. 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과 당당함이 은폐시켜 놓았던 역사의 흔적을 드러냈다. 50여 년의 침묵과 침묵을 박차고 일어선 외침이다.

안해룡_침묵의 외침-김복동_2002

텍스트의 해체와 배열, 결합, 그리고 새로운 소통의 발견_작업에 대하여 ● 이것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매체에 대한 고정 관념이나 관습에 도전하고 도발하는 작업이다. 사진은 정사진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비디오나 필름은 동영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상식과 충돌하려는 시도이다. 필름과는 다르게 비디오는 특별한 장비의 부담 없이 기록하는 순간 이미지와 소리를 함께 담는다. 영상 텍스트와 음성/소리 텍스트가 함께 기록되는 것이다. ● 이렇게 함께 기록되어 있는 두 가지의 텍스트를 전통적인 인쇄 매체의 텍스트, 즉 정적인 이미지와 문자 텍스트로 배열이 되면 기존의 비디오를 가지고 기록한 텍스트는 전혀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갖게 된다. 전혀 색다른 통로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색다른 소통의 방식을 제안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은 각각의 매체가 가지는 특성과 성격에 관한 고정 인식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성이 없다는 문제 제기이다.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표현의 궁극적 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자유롭게 사용하고자 하는 일종의 제안인 것이다. ● 이러한 선언적 작업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 비디오 텍스트를 기초로 했다. 우리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두들 알고 있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실체는 모르더라도 막연하지만 상식적인 인식의 범주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제 다소는 낡은 이야기가 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표현과 소통 채널을 만들어낸다면 이 낡은 이야기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 실험과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 기본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 비디오에 담겨진 영상 텍스트와 음성 텍스트를 철저하게 해체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동영상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평면에 배치한다고 기본적인 텍스트가 해체되거나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비디오 영상에 담긴 화면 그대로의 전환이나 이동이 아니라 전체 화면에서 일정한 부분을 응시하는 시선에 주목하고, 그 부분을 다른 시각적 전개를 위해 뜯어내고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음성 텍스트는 문자 텍스트로 옮겨져 동영상에서 정사진의 이미지로 변화되어 있는 전체 안의 한 '부분'과 만난다. 귀로 들었던 음성 텍스트를 시각적인 인식을 전제로 하는 문자 텍스트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 장면에, 그 음성일 필요는 없다. 인식 속에서는 시각적인 텍스트를 새롭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자유스러운, 그리고 자유분방한 운동을 보장한다. ● 텍스트의 해체와 배치를 통해서 기존의 관습과 관념에 도발을 해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해체의 시도는 디지털 기술의 진전이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매개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특별한 첨단의 영역이 아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프로그램의 운용을 통해서 기존의 관념체계와 인식체계에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낡은 인식을 새로운 소통 수단과 공간을 통해 '변혁'하려는 선언이다.

안해룡_침묵의 외침-김복동_2002

'상용화된' 디지털 기술을 기초로 한 문제제기_작업의 영역에 대하여 ● 이 작업은 결코 한 사람의 인식과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할머니들을 선택하고, 비디오로 취재하고, 편집하고, 정지 화면을 잡아내고, 트리밍하고, 음악을 만들고, 배열과 배치를 하는 각 과정의 단계마다 끊임없는 판단과 선택을 필요로 했다. 각 과정의 판단과 선택은 사실 전혀 다른 감성을 가진 작업자들의 인식과 표현을 전제한 것이다. 하나하나의 작업단계마다에는 작업자의 개성과 감성이 배여 있다. 이 작업은 촬영, 디자인, 영상 편집, 사진 편집, 증언의 선택 등 각 단계 작업자의 선택을 기초로 토론을 통해 이해를 구하고, 배치와 배열을 통해 논리를 세워 정리한 것이다. 모든 작업은 이미 상용화되고 보편화된 초보적인 디지털 기술을 기초로 하고 있다. ● 이 작업은 세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 하나는 비디오의 영상 텍스트와 음성 텍스트를 분리해 인쇄매체의 시각 텍스트로 전환시켜 비디오 매체가 주는 결합의 인식을 해체하고 우리들의 자유로운 인식 체계를 통해 재배치되고 재배열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는 작업이다. 비디오 영역의 영상과 음성을 정사진과 문자 텍스트로 전환해 평면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동영상의 포착은 우리들의 시선이 주목하는 부분에 맞추어 잘라내고 확대하여 시선을 단순화하고 강조한다. 비디오 화면의 한 '부분'에 주목하는 우리들 시선의 움직임에 착안해서 이미지의 첨가가 아닌 생략을 통한 단순화로 새로운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문자 텍스트는 음성 텍스트의 단순한 평면 전개가 아니라 선택과 재배치를 통해 정리된 문장으로 우리들의 인식 체계와 조응한다. ● 둘은 전통적인 평면 배치에 쓰여진 텍스트를 디지털 공간, 즉 웹 공간으로 이동시켜서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방식을 능동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하나'의 작업에서 선택된 이미지 텍스트와 문자 텍스트는 웹 공간의 '제한'을 새로운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는다. 아직도 다소 일방적인 기능을 담고 있지만 적극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부여하여 소통의 차원을 확대하고 확장한다. ● 셋은 주어진 영상 텍스트와 음성 텍스트를 기초로 이를 분리하고 텍스트의 원형을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의 첨가나 문자 텍스트의 첨가를 통해, 그리고 음악의 첨가를 통해 기존의 고정된 텍스트의 관념을 흔들어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디지털 비디오 작업의 형식으로 표출되지만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을 평면적으로 편집하여 배치한 것이 아니다. 이 공간을 평면적으로 배치 배열되어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들에 움직임을 주고 생명력을 주어 살아 숨쉬게 한 작업이다. ■ 안해룡

Vol.20021228b | 안해룡 다큐멘터리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