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 poison)

김태은 영상.설치展   2003_0101 ▶︎ 2003_0107

김태은_13時_16mm 컬러 단편영화_00:17:45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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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101_수요일_05:0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물질 문명의 질곡 속에서 강박관념처럼 쫒기는 개인의 실존과 자아의 정체성을 묻는 『시각적 봉입장치』展에 이어 이번 전시는 『독(毒)』展이다. ●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각적 봉입장치'와 'influenza'를 통해 논리로써 해명될 수 없는 어떤 심리적인 의식작용을, 그러나 그것은 예고도 없이 작가 자신의 문을 끝임 없이 두드리는 현상을 영상화하고자 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이러한 현상은 작가 자신에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일종의 병리적인 증상이며, 치명적인 독(毒)인 것이다. 독은 일반적으로 물리·화학적 반응을 통해서 생리적으로 해로운 작용을 일으키며, 신체리듬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뜨려 혼수상태를 겪게 한다. 작가는 일상의 삶에서 어느 순간 신체에 독을 투여한 것과 같은 의식 상태를 화랑 벽면을 바라보고 있는 영상 속에 주인공의 원근법적인 시선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김태은_동형수렴장치(同形收斂裝置)_10×15×50cm_4장의 사진인화 설치_2002
김태은_벽면좌표(壁面座標)_11×15×16cm_종이에 드로잉, 사진설치_2002

작가가 영상 속에서 표현하는 의식상태는 신체에 독을 투여해 의식이 완전히 잠드는 상태가 아니라 클로드 본느화(C.Bonnefoy)가 자신의 체험을 「살인자(Killer)」라는 소설 속에서 재구성하여 이야기한 의식상태와 같다. ● "6월의 한낮이었다. 나는 무척이나 조용한 이 마을의 한 거리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가 뒤로 물러서는가 하면 동시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차라리 세계가 내게서 멀리 사라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난 전혀 다른 세계 안에 들어가 있었고,.......이미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내가 거리를 지나갈 때 집 마당의 개들이 짖어 댔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갑자기 달콤하게 혹은 마치 아득히 멀어지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김태은-영상설치 「독毒」을 위한 드로잉 1_사진, 종이에 펜, 색연필_15×20cm_2002
김태은_영상설치 「독毒」을 위한 드로잉 2_사진, 종이 위에 펜, 색연필, 콜라주_20×25cm_2002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러한 공간은 객관적인 공간이 아닌 주관적 인식의 공간이다. 이 순간은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같이 선적으로 흐르는 시간, 유비나 유추의 작용을 통해 작동하는 사유의 순간이 아니라 디지털적인 방식과 같이 일상의 의식이 도약하여 새로운 의식의 순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순간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현존재로서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시(詩) 앞에서 명상을 통해 획득하는 존재의 세계라기 보다는 데리다가 말하는 인식을 통해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온몸을 전율하는 의미의 차연의 세계와 같다. 빨려 들어가면 모든 것을 무화시켜버리는 블랙홀과 같은 그러한 의식의 순간에서 작가는 무엇을 찾는 것일까? 영상이미지와 음향이 끝나는 순간의 짧은 침묵 속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 "그 순간 모든 관습의 무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 같았다. 이런 체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 근본적인 진실을 이해했다고 느꼈다"고 클로드 본느화가 그 순간의 기억을 고백하고 회상하듯이 작가는 중독증상과 같이 찾아오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 물질문명이 극단으로 치달려 그 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부유하는 듯한 자신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조관용

Vol.20030103a | 김태은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