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인간과 자연

유승재 채색展   2003_0103 ▶ 2003_0109

유승재_연주_비단에 채색_260×324cm_200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송은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유승재는 국내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중국 노신미술대학에서 5년간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화가이다. 중국에서는 공필화를 공부하였고 그간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한차례씩 개인전을 열었다. ● 그의 그림은 여러가지로 분류된다. 인물, 꽃그림, 산수, 들풀을 그린 평면회화 등등.. 종전의 구체적으로 혹은 간략하게 압축하여 사물을 묘사하던 데서 근래에는 이미지를 더욱 축약하여 그리거나 재질감을 강조하는 등 추상화시키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 인물이나 꽃그림의 경우 사물의 꼼꼼하고 신중한 묘사에 치중되어 있다. 인물과 꽃그림이 대상묘출 위주라면 근래에 제작한 산수나 평면회화는 이미지를 농축시켜 처리한다. 종전에 비해 훨씬 단순해졌다. 그림이 단순해지는 것이 쉬운 것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같다. 어느 부분도 흠없이 해야 하고 동기나 취지도 분명해야 한다. 쓸데없는 것을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남긴다는 얘기다. 그림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고 명료해져야 가능하다. ● 어떤 그림에서는 붓질 하나하나에다 신경을 써 흐트러짐을 허용치 않는다. 붓을 놀릴 때 흡사 호흡을 정지하고 그은 것처럼 신중성을 감지할 수 있다. 「묵(墨)」 시리즈는 세필 위주로 가느다란 선이 화면을 주름잡는다. 꼬불꼬불한 선이 흡사 여인의 목선처럼 섬세하다. 어떤 선은 워낙 가늘어 가냘 퍼 보인다. 실처럼 가늘기 때문에 먹을 풀어 물맛을 내거나 자연스런 농담을 준 그림에서 전달받는 서글서글한 맛은 느낄 수 없다. 바탕과 이미지는 따로 분리되고 그런만치 형태가 반듯하게 드러난다.

유승재_바이올린과 여인_비단에 채색_194×100cm_1999

후자의 경우도 물론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형태감각이나 부분묘사는 좀 빠지지만 즉흥적 감각이나 자연스러운 표면이 강화되었다. 화면에는 몇그루의 나무가 제시된다. 잎사귀나 줄기 따위는 생략되고 몸통과 전체적인 윤곽만 보일 따름이다. 앞의 그림과 같이 선 중심이되 산뜻한 색점을 가볍게 채색해 화면을 장식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홀로 서있는 나무를 묘사한 것도 있다. 한쪽에서 빗줄기가 퍼붓는데 한쪽에서는 꽃을 피운다. 희비가 엇갈리는 우리 삶을 형용한 것같기도 하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그림이 장식성을 가지면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준법은 여릿하면서도 정교하며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볼 때처럼 순진하고 투명한 마음을 읽게 해주는 것같아 즐겁다. ● 요사이 제작된 그림중에 검은 바탕에 식물을 새겨넣은 세점의 그림이 있다. 모두가 바탕이 시커멓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엇을 그렸는지 분간이 잘 안된다. 이 그림들은 살아 있는 식물들을 그린 것이다. 어떤 것은 이미지가 뚜렷하게 포착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어렴풋이 형체가 가려져 있다. 드러난 형체이든 잠복된 형체이든 식물을 그린 것은 동일하다. 그림을 보면서 언젠가 읽은 고흐의 편지가 떠올랐다. ● "모든 자연은 말하고 있는 것같다. 왜 모든 사람이 보거나 느끼지 않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자연은 눈과 귀와 깨닫는 마음이 있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있다."_반 고흐 ● 자연은 우리에게 꾸준히 무언가를 말한다고 고흐는 말하였다. 모든 자연물들은 소망을 말한다. 땅에 뿌려진 작은 씨앗들은 다가오는 추수의 커다란 소망을 지니고 있고 참새들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을 소망을 품고 있으며 골짜기 사이로 흘러가는 시냇물은 바다와 만날 소망을 품고 있다.

유승재_연_비단에 채색_각 138×37cm_2001

유승재의 그림에서도 그런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어두운 화면에 가리워져 있지만 식물은 고통스런 나날을 잊고 다가오는 봄의 소망으로 부풀어있는 것같다.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봄의 소망을 지니기 때문에 겨울을 날 수 있다. 겨울을 지내야 싹을 튀우고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다. 만약 겨울의 추위가 없다면 봄의 환희도 기대할 수 없다. ● 살아 있는 것에는 소망이 있으며 이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소망이 없는 것은 생명이 끊겼다는 것을 말하며 소망은 존재를 지탱하고 연속시키는 힘이 된다. 이외에도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 생명력, 신비로움, 잔인함 등등. 이것들 역시 중요한 부분이겠으나 소망만치 자연의 본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부분도 없을 것이다. ● 유승재가 그런 자연의 본성을 잘 이해하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기량을 넘어서고 수법을 넘어서며 또한 종래에 해오던 그림이란 틀에서 벗어나 '본질적 실재'를 응시할 때 더욱 잘 자연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번 전시는 유승재가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한 관문으로 생각하며, 이와 함께 전도가 양양한 그가 더욱 정진할 것을 기대해마지 않는다. ■ 서성록

Vol.20030108a | 유승재 채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