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길 찾기

성영미 회화展   2003_0115 ▶︎ 2003_0121

성영미_숲속에서 길 찾기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2

초대일시_2003_0115_수요일_05:30pm

삼정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22_9883

처음 좋아했던 것은 길이었다. 항상 열려있고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길옆을 보게 되었고, 길옆에 서 있는 나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무는 여전히 본인의 작업에서 바질 수 없는 소재이다. 틀려진 것은 예전의 나무는 외적인 미의 나무였고, 지금의 나무는 나무를 의인화하여 많은 의미를 심었고 내적인 미의 나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엔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힘과 에너지는 있었지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다라 그 힘과 에너지는 사람광의 관계와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길옆에 있는 사물이 좀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던 것이다.

성영미_서른 잔치는 끝났다-생일 축하한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2

길을 그릴 때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 모든 사물의 외적인 면만을 그렸던 것이다. 보이는 것만 그리고 그것만을 믿었다. 차츰 지나면서 생각과 시각이 많이 변하게 되고, 한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에 의지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다 실패하였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모든 방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다라 세상은 달라 보인다'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겨우 터득한 것이다. 이 마음가짐으로 길옆의 사물이 완전히 나의 이야기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그리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와 느낌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본인 도한 이 시대에 같이 어울리며 사는 현대인이고 지구인디아. 외계인이 아닌 것이다. 이는 곧 나의 이야기를 표현한 작품을 보는 이들도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영미_파랑새는 자유를 찾아 날아갔다_캔버스에 유채_73×90cm_2002

그림을 보았을 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나게끔 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의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하여 과감하게 단순화로 바꾸었다. 작품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실화보다는 좀더 많은 가지를 쳐야했기 때문이다. 장욱진의 예술이 부담 없이 모든 이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은 아마추어적인 심성에 연유한다. 누가 보아도 어렵지 않은, 누구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나 또한 그런 것이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 가능한 한 군더더기 없는 에센스를 뽑아내고 싶은 것이다. 돨 수 있는 한 꾸미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드러내지 않고 솔직하게 정제된 세계를 지향하려고 한다. 단순화로 대변되는 절제의 세계는, 그러나 결코 단조롭지 않다. 단조로운 것은 내용이 비어 잇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단순화는 무수한 다듬음의 과정을 거쳐 남아난 결과로서 풍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음을 뜻한다.

성영미_나_캔버스에 유채_117×73cm_2001

그래서 오래도록 음미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작품으로 남고 싶음이 나의 소망이다. 또한 그림일기를 그리는 본인은 웃음, 자유, 어린아이의 순진 무구함을 추구하고 싶다. 삶 자체가 생활예술로, 그리고 그림일기를 썼던 그 시절의 눈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 성영미

Vol.20030112a | 성영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