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파워_ELECTRIC POWER

책임기획_ 김영민 / 최금수   2003_0117 ▶ 2003_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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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117_금요일_03:00pm

김주호_김준_안광준_안상진_이기일_이용백_이재훈 장지아_정인엽_최우람_최종범_홍지연_백남준

텍스트_조관용 최금수 / 디자인_문승영 / 사진_오철헌 / 진행_유희원 인쇄_월드 프린팅 / 제작_ne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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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일렉트릭 파워』展은 오늘날 예술가들의 상상과 표현의 폭을 확장시켰던 전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획전입니다.

김주호_유쾌한 날_나무, 모터, 센서, 오브제_110×58×33_2001

김주호 ● 조각가 김주호는 1949년에 태어나 1986년 이후 10여 회의 개인전을 비롯,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로고스와 파토스」 「한국 형상조각의 모색과 전망」 「동학 100주년 기념전」「민중미술 15년」「일러스트 조각」「흙의 정신」「미스터 킴을 위하여」 「시대의 표현-눈과 손」「한국 미술의 자화상」 「2002 광주비엔날레」 「서랍」「정치와 미술」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며 소박한 우리 주변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정겹고 다양한 이웃의 일상을 빚어내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김주호는 나무와 철판, 합성수지 등 일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들로 인물 조각을 만들고, 센서를 이용하여 관람객이 다가서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움직이는 조각을 보여준다. 김주호의 움직이는 조각들은 자칫 냉소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테크놀로지 아트를 따스하고 생기 있게 만들고 있다. ■

김준_장미클럽_영상설치_00:04:00_2000

김준 ● 영상작가 김준은 1966년에 태어나 금호미술관, 살바 등에서 『The Hair』, 『Tattoo』등을 주제로 8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SELF GROW」 「공산미술제」 「신체없는 기관, 기관들」 「얼터너티브 드로잉전」 「한국미술 신세대 흐름」 「삼백개의 공간」 「인간과 인형」 「2000 광주비엔날레」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을 통해 독특하고 표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김준은 술자리에서 노래를 빼는 이를 장난스럽게 부추기는 노래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요(아~~~ 미운사람)"을 단순하고 속도감 있는 음향으로 처리하고, 이에 맞추어 다이나믹한 2D 애니메이션 영상 작품을 함께 보여준다. 검은 양복을 입고 어깨에는 장미꽃 문신을 새겨 넣은 남자들의 도상은 도시의 획일화된 화이트컬러들의 일상과 그 일상의 이면에 숨겨진 야성미 또는 게걸스런 장난기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

안광준_객체_가상현실 입체영상_영상설치_가변크기_2002

안광준 ● 안광준은 1959년에 태어나 원자력공학을 공부한 뒤 미술 쪽으로 전환하여 2001년 이후 인터레이싱 방식에 의한 3차원 입체 애니메이션 「5개의 공간 드로잉」을 발표하고, 「PC를 이용한 산업용 입체영상과 가상현실 시스템」전과 「페이지플리핑에 의한 VRML 가상현실 아트 "사이버제네틱스」 전 등을 통해 산업용 입체영상과 가상현실시스템에 대한 연구와 그 성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안광준은 스크린에 레이저빔을 투사하여 가상현실 컨텐츠를 구현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비치된 입체안경을 착용한 뒤 자유롭게 공간을 걸어다니며 가상현실을 체험하면서, 첨단 테크놀로지가 미술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시·공간의 개념을 얼마나 큰 폭으로 변화 또는 확장시킬 수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안상진_달리기를 위한 장단_키네틱 조형물_220×195×200cm / 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3:20_2001

안상진 ● 작가 안상진은 1966년에 태어나 『도시유감 』 등을 주제로 4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신세대 한국성의 모색전」 「청년작가 초대전」 「정체성에 관한 소고」 「아! 대한민국전」 「릴레이릴레이」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도시의 구조와 도시인의 감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안상진은 사이보그처럼 움직이는 로봇이 큰북과 작은북을 차례로 연주하는 영상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사람 키만한 큰북의 표면에는 영상이 투영되는데,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큰북의 표면은 마치 달표면과 같이 원초적이면서도 자연과학적인 경외의 느낌을 자아낸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연출된 안상진의 작품은 원시적 감성과 기계적 메커니즘이 결합되어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

이기일_프로파겐더_철 프레임에 채색과 조명_750×460×380cm_2002

이기일 ● 조각가 이기일은 1967년에 태어나 『걸음의 무게』, 『프로파겐더』 등을 주제로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동아미술제」 「소리」 「2000 광주비엔날레」 「공원 속의 미술과 사람」 「도시와 영상」 「거북이와 로봇이 만났다」 「coming to our house 전」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거대화된 현대사회의 여러 양상들을 견고하고 탄탄한 구조물로 구축하는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이기일은 커다란 고압선 전신주에서 영감을 받아 7미터 높이의 로봇을 제작하여 야외에 설치하며, 더불어 전시장 내부에는 작가가 직접 고안하여 제작한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슬라이드 프로젝트를 이용한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이기일은 유년기의 꿈과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로봇 조각을 통해 오늘날 '전기'가 가져다 준 문명의 이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씁쓸함을 정제된 감성으로 전달하고 있다. ■

이용백_Stimming Out_2채널 비디오 영상설치_00:07:35_2002

이용백 ● 영상작가 이용백은 1966년에 태어나 『촉각적 다큐멘타리』 『비-마테리알』등을 주제로 서울과 독일에서 3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소음/OUT」 「황금사과」 「시각문화 세기의 전환」 「가상공간의 샤머니즘」 「무서운 아이들」 「미디어_시티 2000」 「서울국제행위예술제」 「2002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결합을 다각도로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이용백은 하이 테크놀로지 영상기법을 사용하여 양복을 입고 바닷 속을 걸어가는 셀러리맨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양복차림의 남자는 약간의 위기감과 약간의 성취감의 반복 속에서 망망대해와 같은 현대사회의 구조망들을 헤쳐 나아가고 있다. ■

이재훈__man-deform_단채널 3D 컴퓨터 그래픽 영상설치_2001

이재훈 ● 1973년에 태어나 뉴질랜드에 유학중인 이재훈은 『Transform』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Alive!」 「Kiosk」「Physical」 「common and uncommon」 등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신체와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유기적인 형상의 작품들을 출품해 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이재훈은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인간의 골격을 만든 후 확대하거나 흐트러트리는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인간의 신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이재훈의 영상작품은 중심을 이루는 것과 주변을 이루는 것의 경계를 사고하게 만든다. 특히 인간의 외곽을 이루는 마치 등고선처럼 처리된 입체의 선들이 흐트러지면서 도시의 야경 또는 유기체적 원형질과 흡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

장지아_Wonderful Happiness Insurance_인터렉티브 설치_200×400×400cm_2002

장지아 ● 작가 장지아는 1973년에 태어나 2001년 이후 『What's the Matter?』등을 주제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제전자음악제」 「Beyond Origin」 「인디비디오 페스티발」 「불온한 경계」 「Micro Movie Festival」 「서울 독립영화제」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을 통해 영상과 설치미술을 오가며 사회의 제도들이 자아내는 갖가지 상황들을 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투영해내는 작업을 펼쳐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장지아는 관람자가 밟는 자전거 페달에 의해 얻게되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관람자의 힘이 가해지면 전광판에 조명이 켜지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단순히 센서에 의해 움직이는 작품에 비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이 작품은 개인과 개인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낼 수 있는 꿈과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인엽_원 그리기_거울틀, 물, 자석, 바늘_가변크기 설치_2002

정인엽 ● 작가 정인엽은 1971년에 태어나 『흔들기, 흔들어보기,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기』를 주제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BOILING POINT」 「동물원」 「아트 메트로 프로젝트」 「공장과 비디오」 「미메시스의 정원」 「나비 도상」 「공동묘지 프로젝트」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기억, 흔적, 그리움 등을 투명하고 감성적인 기법으로 풀어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정인엽은 거울 아래 숨겨진 전자석을 이용하여 실에 묶인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키네틱 아트를 출품한다. 특히 물이 고여있는 거울 표면을 조명으로 비추어 그 그림자가 벽면에 아른거리도록 설치한 이 작품은 원초적인 움직임과 빛, 그림자 등을 함께 어우러지게 연출하고 있다. ■

최우람_Ultima Mudfox (성체)_철, 전동장치, 조명_160×340×160cm_2002

최우람 ● 조각가 최우람은 1970년에 태어나 3차례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삼백개의 공간」 「미메시스의 정원」 「도시와 영상」 「예기치 않은 방문」 「인공생명」 「Working Degree Zero」 「곤충의 행성」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을 통해 생명체의 미세한 움직임을 정교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구현하는 독특하고 다양한 실험들을 꾸준히 펼쳐 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최우람은 기계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을 그 테마로 한 작품을 보여준다. 각각의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최우람의 작품은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접점에서 살아있는 또 다른 생명체의 가능성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

최종범_2th-sound-space_비닐에 음향장치, 혼합재료_지름 270cm_2002

최종범 ● 작가 최종범은 1972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사운드 아트를 전공하였다. 「ICAF L.A 한국 작가」 「Visual Rave」 「리얼_인터페이스」 「Visual Performance 57」 「미디어_시티 서울 2002」 등 국내외를 오가며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가하여 영상과 사운드를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퍼포먼스 작업 등을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최종범은 테크놀로지 아트의 가장 진보된 형태인 사운드 아트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에서 최종범은 270cm의 거대한 공 속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관람객이 공의 표면에 손을 대고 소리의 물리적인 진동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시각과 청각, 촉각을 종합한 공감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전기로부터 확장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만나게 될 것이다. ■

홍지연_oasis_아크릴릭과 사진 패널, 조명_300×300×300cm_2000~3

홍지연 ● 작가 홍지연은 1971년 태어나 『20세기 토탈 박제쑈』, 『믹쓰믹쓰』등을 주제로 4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여성 남성 거꾸로 보기」 「삼백개의 공간」 「호부호형」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광주비엔날레」 「재현의 재현전」 등 다수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하여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발상으로 공간을 연출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홍지연은 화려한 꽃이 그려진 회화작품과 더불어 조명을 이용한 입체작품을 출품한다. 과장된 꽃문양과 함께 어우러지는 다소 키치적인 싸구려 가짜꽃과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조명등은 얽키고 설킨 사람들 사이에서 부풀려진 인관관계를 은유한다. 특히 가볍고 화려한 오아시스 정원은 작가 홍지연의 회화적이고 연극적인 연출감각이 백열전구의 힘을 빌어 더 강렬하고 유혹적인 공간으로 꾸며졌다. ■

백남준_TV 첼로_비디오 영상과혼합재료_164×70×42cm_1999

백남준 ●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1932년에 태어나 1959년 뒤셀도르프에서 가진 첫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독일, 뉴욕, 일본, 한국 등을 오가며 현대미술의 커다란 흐름을 일구어낸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퍼포먼스로부터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예술로 만들어낸 그는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기도 한다. 비디오 아트라는 쉽지 않은 장르를 예술로서 구축할 수 있었던 작가라는 것 이외에도 인간 또는 삶 그리고 개별화된 일상들이 접목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이들 세계가 모니터라는 번쩍이는 네모 안에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유포시켰다는 것은 더 큰 업적이라고 생각된다. 백남준의 작품은 단순한 미디어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서의 예술의 영역에 대한 발언이 담겨 있기에 더 크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 『일렉트릭 파워』전에서는 박영덕 화랑의 협찬으로 「TV 첼로」가 출품되었다. ■

일렉트릭 파워展을 기획하며 ● 현실의 변화는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 한다. 이 경험들은 시각 이미지 생산자의 상상력과 작품에 빠른 속도로 밀착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이 낯설은 경험들도 결국에는 일상에 널브러진 식상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새로움의 현실적응과정은 예술과 일상의 느슨한 경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새로움의 강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현실적응과정의 속도이다. 특히 테크놀러지/미디어 아트에 있어서 새로움의 강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현실적응과정의 속도는 예술로 자리잡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유행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함수값으로 작용한다. ● 20세기라는 야만의 세기를 살아온 우리에게 있어 새로움의 충격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남한 사람들의 무서운 현실적응능력은 굳이 과거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남한에서 예술의 축적이 가능할 수 있을까가 의심된다. 예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란한 일상의 속도는 모든 예술의 유통기한을 너무나도 짧게 설정하여 낙인찍거나 한물 간 것으로 판단하여 추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빛과 움직임 그리고 상상 ● 테크놀러지 아트의 기본은 빛과 움직임이다. 그리고 움직임에서 파생된 소리 또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굳이 산업혁명의 선언문인 미래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공의 동력에 의한 현란한 경험들은 괴팍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심하게 자극하였다. 그리고 전기의 힘은 곧바로 예술작품으로 들어와 갖가지 엉뚱한 시각실험을 하곤 했다. 키네틱 아트와 라이트 아트 등 지금 보기에 싸구려 전파사에서 제작한 것 같은 조악한 작품들이지만 당시의 시점에서는 최첨단 예술로서 물질과 기술이 집약되지 않으면 힘든 하이 테크놀러지 아트였을 것이다. 이미 소설에서는 로봇들이 등장하여 인간을 괴롭히고 멜리에스 영화(1902년 『A Trip to the Moon』)에서는 로켓을 타고 달나라를 몇 번이고 왔다갔다하던 20세기 초반의 일이다. 그 이후로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인간을 달나라에 보내고 로봇을 공장에 취직시켰다. ● 지금은 전기가 신기한 시대도 아니고 전자마저도 식상해진 21세기이다. 과학의 힘은 중세 종교의 힘처럼 커져서 이제는 로봇과 사이보그가 아니라 복제인간을 만들고 있다. 솔직히 21세기 들어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현실의 상상을 뛰어넘기에 버거워하며 헐떡대고 있다. 21세기 벽두에 맨해튼의 거대한 쌍둥이빌딩이 단 몇분만에 먼지로 사라지는 일상을 경험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그 보다 더한 상상을 실현해내기란 아무리 허무맹랑한 예술이라 하여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 적응과정을 잃어버린 남한 테크놀러지 아트의 속도 ● 『일렉트릭 파워』전은 테크놀로지/미디어 아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획된 전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눈요기로 번득이는 빛과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력장치로 공간과 시간을 현혹시키려는 그런 전시도 아니다. 한국전력에서 마련한 『일렉트릭 파워』전은 남한 시각 이미지에 있어서 전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기획전이다. ●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면서 인류의 일상에 들어온 전기는 조선에 1887년 3월에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셈을 해보면 고작 8년 차이로 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1900년 종로에 3개의 가로등이 점등되면서 일상에 파고들었다. 물론 1980년대 초반까지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찌되었건 일상의 문제는 한국전력이 맡을 것이고 『일렉트릭 파워』전에서 되새겨보자는 것은 예술이다. ● 남한 미술에 있어 테크놀러지/미디어 아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전기가 발명되고 110여년이 훨씬 지나서의 일이다. 그 이후로도 테크놀러지 아트는 곧바로 미디어 아트와 영상미술 그리고 넷아트 등으로 전이되면서 그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하기야 1980년대 초반에 컬러티비와 함께 보급되었던 비디오카메라가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의 도구로 자리잡는데 15년 정도가 걸리는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남한의 시각 이미지의 속도는 현실의 변화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찌보면 그 속도 뿐만 아니라 방향마저도 가늠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 서구의 경우 백열전구의 발명과 함께 생활과 예술에서 전기를 활용한 도구 및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었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변화시킨 원동력으로서 전기의 위치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남한의 경우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현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고 곧바로 하이 테크놀러지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잃어버린 중요한 무언가가 바로 현실적응과정이다. 그래서 방향과 속도를 모두 생략하고 축적될 수 없는 테크놀러지/미디어 아트라는 허상만 부풀려지고 있는 것 같다. ● 문제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운영체계/컨텐츠의 변화이다. ● 그래서 『일렉트릭 파워』전에서는 단순한 조명과 전동기를 이용한 작품부터 복잡한 컴퓨터 영상과 가상현실를 연출하는 작품까지 광범위한 포진을 하였다. 이는 남한 시각 이미지들로부터 테크놀러지/미디어 아트라는 것을 추출하려는 목적보다는 전기로 말미암은 현실과 시각 이미지 생산의 변화를 챙겨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 다시말해서 눈요기를 제공하는 값비싼 기자재와 높은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급하더라도 전기로 인해 업그레이드 되는 그 사회의 운영체계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라는 컨텐츠의 변화를 함께 읽어보려는 생각인 것이다. ■ 최금수·neoart.com 이미지올로기연구소장

시각적 이미지에서 비젼으로 ● 불의 발견이 인간에게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면, 전기의 발견은 인류로 하여금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전기의 기원은 BC 600년경 그리스의 탈레스에서 의해 호박(琥珀)을 마찰하면 대전(帶電)하여 가벼운 물체를 흡인한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엘렉트론(electron)'이 전화(轉化)되어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가 되었다. ● 방전현상으로 일어나는 번개의 작용이나, 유리 막대기를 적당히 헝겊에다 문지르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전기에너지는 열을 일으킬 수 있는 물체들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에나 두루 퍼져있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함께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 석탄, 석유, 수력 발전을 이용하여 생산되는 전기는 오늘날 원자에너지의 이용으로 무한한 양의 동력과 열, 그리고 빛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 이러한 전기에너지를 기초로 급속한 산업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다른 제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술분야에서도 많은 변화를 야기하였다. 캔버스로 표현되던 회화는 다기능적인 매체를 이용한 영상이미지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대리석과 돌, 브론즈로 표현되던 조각품은 알루미늄, 철, 플라스틱 등과 같은 산업재료를 이용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 미술의 흐름에서 전기는 '빛과 움직이는 물체가 작품을 창조한다'는 이론에 기초한 1920년대에서 시작하여 1960년대에 절정에 이른 키네틱 아트(Kinetic Art)와 네온이나 형광등 같은 인공의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Light Art), 그리고 비디오, 컴퓨터, 홀로그램 등을 이용한 예술작품을 생산해내는 주된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영상이미지들의 합성과 변조를 통해 산출된 예술작품은 과학적 상상력에 일조를 하며, 과학의 발전과 그 궤도를 같이 할 수 있다는 담론들의 배경이 되고 있다. ● 이렇듯 전기는 과학의 전위에 서서 실생활은 물론 인간의 감정을 꽃피우는 예술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며, 과학은 근대 이후 제반 학문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불의 무서움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불을 쥐어 주는 것과 같이 과학적 사유는 제반 학문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그 한계에 고뇌하고 있다. ● 1, 2차 세계대전과 히로시마의 원폭투하의 참상을 보면서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1892-1987)는『물리학과 미시물리학(Physics and Metaphysics,1955)』에서 "가솔린, 석탄, 수력발전 등으로 움직이는 기계들, 잠재적 에너지를 동력으로 바꾸는 기계들은 우리 생명체에게 무섭고 막대한 힘을 주었다. 그러나 정신은 옛날 그 모습대로 남아있기에 너무 연약하며 육체를 움직이게 하거나 다스리지 못했다. 정신적 성장을 기다리는 이 비대해진 육체에게, 우리는 영성을 함양시켜 주어야 한다."는 앙리 베르그송의 저술을 재인용하면서 과학과 함께 인류가 반드시 동반해야할 과제를 지적하고 있다. ● 과학은 자신의 길에서 이러한 문제를 예감하고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인가?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 dinger, 1887-1961)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은 음악이 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지 알지 못하며, 옛 노래를 들을 때 왜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지 말하지 못한다. 과학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시계와 유사하게 의식, 의지, 노력, 고통, 기쁨, 책임감-실제로 이런 것은 존재한다-이 없이도 그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 뿐이다. 눈물에 대해서는, 압축 팽창하는 음파가 우리 귀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눈물선에서 짭짤한 액체를 눈에 분비하는 순간까지,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원리적으로는 상세히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 수반되는 육체적 기쁨과 슬픔, 푸름과 붉음, 쓴맛과 단맛에 관해서 단 한마디도 말하지 못한다. 또한 미추, 선악, 신과 영원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다." ● 그렇다면 마법사의 지팡이 같은 과학적인 사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루이 드 브로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생존과 적응을 위해 자연현상을 견뎌내면서 배워왔으며, 물질계의 위협에서 서서히 논리와 추론의 법칙을 습득해 왔으므로, 물질계로부터 이끌어낸 논리와 추론의 법칙으로부터 과학이 발전해 왔다는 생각은 오류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꾸준히 적응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애초부터 존재했었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 "시간과 공간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단지 우리의 심상일 뿐이다. 경험을 통해서는 버클리가 알고 있었던 존재의 심상 이외의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슈뢰딩거의 말을 다시금 음미해보더라도 과학은 이제 자연현상으로부터 남다른 통찰을 가지고 논리와 추론을 이끌어내어 발전해간다는 생각에서 점차 벗어나 "물질계와 마음의 상호관계"로 그 시선을 돌리며 과학적 사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 밀물이 밀려오면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바닷가 위에 모래집을 짓고 노는 아이들처럼 미술을 비롯한 제반 예술은 과학이 이룩해놓은 마당 위에서 뛰놀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상상력에 기대지 않고 예술은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1861-1925)가『색채의 본질』에서 지적했듯이 색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기쁨과 슬픔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때 과학에 짊어진 빚을 갚는 것이고,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관용·미학

Vol.20030117a | 일렉트릭 파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