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기

신주혜 개인展   2003_0121 ▶︎ 2003_0128

신주혜_사람들Ⅱ_컬러인화_60×40cm×28_1999_부분

초대일시_2003_0121_화요일_05:00pm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1

진행하는 적극적 생명력 : 신주혜 매체가 드러내는 것 ● 이 전시회는 신주혜가 전문 미술가로서의 훈련을 마친 2000년 전후 2년간의 제작들을 요약하고 있다. 이 기간에 제작된 대부분의 버전들에서 곤충과 번데기에 대한 생태학적 관찰의 결과나 인물에 대한 다양한 표정의 섬세한 변별 그리고 제조된 인공물들에 대한 미세한 주목과 같은 미시적 방식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와 함께 그의 버전들은 제작자와 관람자의 위치를 모호하게 할 정도로 공간으로 확대되어 있고 심지어 변화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의 개입도 서슴치 않는 거시적 방식도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을 통해 그 이전 마르세이유 시절에서부터 신주혜는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대해 엄격한 눈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개발해온 것으로 보인다. ● '변태 M tamorphose' 버전에서 신주혜는 점액질의 표면으로 고착된 번데기 형태들을 화랑공간 바닥과 벽 그리고 유리창에 점점이 뿌려놓듯 나열한다. 미술가에 의하면 그것들은 곤충의 생애에서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 사이의 한 과정이라고 한다. 과정은 변화하는 중이고 복합적이기에 인간의 의식으로는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곤충의 생애가 갖는 단계적 변화에 인간의 그것이 갖는 애매한 변화를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생애가 결국 노년이라는 소멸을 향해 있고 이것이 인간이 인지하는 자연이라고 지적한다. 신주혜는 인간의 의식으로는 감지되기 힘든 생애의 흐름을 번데기의 형태를 한 자신의 매체를 통해 인간의 생애 속에 면면히 유지되는 변화를 주목하도록 한다. 또한 그는 번데기 속에다 자신의 사사로운 기록을 단어들이나 기억의 이미지 혹은 경험한 환경의 한 부분으로 넣는다.

신주혜_변태_라텍스, 일상의 오브제_가변크기_1999

'변태' 버전이 화랑 공간의 삼면을 다 활용하여 설치하는 반면 '사람들(II)' 버전은 관람자가 곳곳이 직립해서 바라보는 벽면이나 유리면에 부착되거나 걸리기에 다소 전통적 포맷을 유지한다. 이 버전은 사진을 찍을 때 정면을 향해 정지된 순간의 인물 형태들 각각에 다양한 이미지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정형화된 인간형태와 변화하는 이목구비간의 충돌을 통해 신주혜의 매체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인식론적 오류를 거론한다. 이 버전은 타인에 관한 인지란 외관에 대한 착각에 다름 아닐 것이고 따라서 대상의 내면에 진행되는 유동에 주목하라고 한다. 결국 자신에 관한 인식이 타인의 반영을 통한 것이라면 자아란 변화하는 그 유동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신주혜가 자신의 매체를 대상과 자신을 인식하는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 '변태' 버전이 곤충이라는 자연대상의 생명체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II)' 버전에서 타인을 통해 자기를 각성하는 경로를 갖고 있다면 '해체-다시 읽기' 버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대상을 통한 자각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버전은 잡지나 신문 등의 인쇄물을 여러 크기로 오려 말아서 화랑의 바닥에 진열된다. 그것은 중력을 견디며 하늘로 향해 자라는 식물을 닮아 있다. 그 표면의 문장들은 읽혀지지 못한 채 관람자에게 교란을 안겨준다. 익숙한 현대문명의 매체가 한순간 생소한 생명체로 변형되어 보인다. 신주혜는 변태를 각성하지 못하는 일상의 수동적 습관들과 변화를 인지하고 도전하는 생명의 적극적인 의지, 이들 양자간을 공존하게 하는 것에 자신의 공간을 새롭게 한다. 문명을 대리하는 문장들이 기존의 서술적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시각적 특성만으로 공간을 재창조하는 점에서 나는 이 버전이 이룩하는 의미론적 반전을 목격한다.

신주혜_땅콩_잡지, 인쇄물, 혼합재료_가변크기_1999_부분 확대
신주혜_땅콩_잡지, 인쇄물, 혼합재료_가변크기_1999

비교적 서술적이고 그리고 사사로운 일상의 관찰이 치밀해 보이는 것이 '땅콩' 버전이다. 미술가에 의하면 땅콩으로부터 연상되는 태아나 배아와 같은 생태학적 형태가 그것을 자신의 재료로 채용하게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알맹이를 감싸는 테두리가 마치 외부로부터 고립된 개별체로 비유되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버전은 제작과정에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과 그 껍질 내부에 이미지를 고착하는 것 사이의 틈을 갖는다. 그 틈은 미술가의 생활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제작공정이 연속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개입하는 휴식과 기다림은 매체와 제작자의 삶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연속과 단절, 그리고 알맹이의 고립과 경계는 바로 생명단위인 세포와 비유된다.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물리적 요소이자 타인과 구별짓는 것은 바로 막이라는 경계이다.

신주혜_해체-다시읽기_책, 잡지, 신문, 노트, 영수증..._가변크기_2000

신주혜는 이 막의 내부에 목사, 범죄자, 운동선수, 농부, 유명인, 무명인 등의 다양한 개별체들을 동등한 여건으로 통합한다. 이는 '변태' 버전에서 번데기 내부에 기록되는 미술가의 사사로운 이미지를 통합하는 것과 동일하다. 결국 이 버전은 상반되고 충돌하는 개별적 성격들이 변화와 진행의 막을 통해 드러날 때 적극적인 생명력이 읽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 신주혜의 버전들을 관류하는 생명과 변화에 관한 시각의 적극적인 주장은 미술이 자연, 인간,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의 창출임을 논증한다. 제한된 여건에서 신주혜의 작품들에 대한 충분한 관찰이 내게 없었음에도 나는 그의 매체들이 갖는 대립적 속성들과 그것들을 종합해 가는 경로들을 볼 수 있었다. 관람자는 각각 자신의 의식으로 신주혜가 제시하는 충돌과 교란을 종합하고 정리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한 관람자의 조건을 매체에서 실현하는 한 최근 목격되는 무분별하고 감정이 과잉된 몇몇 설치물들로부터 신주혜의 공간은 구별되게 할 것이다. 화랑공간에는 세 종류의 보는 이가 있다. 작품을 보지 않은 채 일상의 삶처럼 레이블만 보는 방관자, 자신의 모든 의식과 충돌시키면서 매체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관람자 그리고 자신의 의식을 내버린 채 마비되는 몰입자가 있다. ■ 이희영

Vol.20030125a | 신주혜 개인展